성추행 의혹으로 전격 경질된 윤창중 청와대 전 대변인은 인수위 시절에도 잡음을 일으켰다. 박 대통령으로부터 인수위원 임명장을 받고 함께 포즈를 취한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5일,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가진 첫 언론사 정치부장단 만찬에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사태에 관해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다. 13일 사과 때와 다르게 윤 전 대변인을 ‘성추행’이라는 단어와 연결시켜 말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 자리에서 누가 윤창중 전 대변인을 인선했는지에 관한 문답이 오가지는 않았다.
윤창중 전 대변인은 박근혜 정부의 1호 인선이었다. 18대 대선 나흘 뒤인 지난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전야에 박 대통령은 윤 전 대변인을 인수위원회 수석대변인으로 임명했다. 이는 친박계 일부 의원들조차 “너무 극우적인 성향”이라며 반대했을 정도로 의견이 엇갈렸다. 인수위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도 윤 전 대변인은 평가가 후하지 못해 ‘2개월용’이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윤 전 대변인은 여봐란 듯이 청와대 대변인으로 직행했다.
그렇다면 윤 전 대변인을 천거해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부 첫 번째 방미 성과마저 무너뜨린 ‘X맨’은 과연 누구일까. 해프닝에 그쳤지만 정치권에서 제일 먼저 거론됐던 이는 박 대통령의 친동생인 박지만 EG그룹 회장이었다.
윤 전 대변인의 인선 소식이 알려진 다음 날,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지난 총선 전에 누굴 통해 문제의 윤창중을 만났더니 대뜸 나에게 박지만이와 친하니 한번 만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거다. 파시스트 윤을 추천한 인사가 누군지 금세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밝혀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윤 전 대변인은 “박지만 씨와는 일면식도 없고, 전화통화를 한 적도 없다”고 반박했고 김 부소장 역시 “제 착각”이라고 사과하면서 ‘박지만 천거설’은 수그러들었다.
비슷한 시기,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의 오랜 정치적 동지이자 친박연대를 이끌었던 서청원 새누리당 상임고문이 심심찮게 거론됐다. 서청원 고문이 오래전부터 윤 전 대변인과 친분이 두터웠고, 윤 전 대변인 역시 자신의 칼럼을 통해 “서청원 구속은 정치보복의 희생양”으로 표현하는 등 각별한 인연을 이어왔다는 게 근거가 됐다. 하지만 서 고문은 논란 당시 “0.1%의 가능성도 없는 이야기”라며 “당선인(박근혜 대통령)에게 사람을 추천한 일이 전혀 없다”며 논란을 일축한 바 있다.
윤 전 대변인이 인수위에서 청와대로 가는 데는 친박계 원로 모인인 ‘7인회’ 입김이 작용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인수위 두 달 내내 잡음이 끊이지 않아 대통령 측근들조차 다른 인물을 추천할 정도였지만 7인회 출신 인사들이 “윤창중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며 박 대통령을 압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7인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서병수 사무총장은 “한마디로 실체가 없다”며 7인회 존재 자체를 부인했다.
최근 성추문 사태 이후 새롭게 떠오른 X맨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 윤 전 대변인이 이회창 대표 시절부터 정치권과 교류하기 시작했고, 대선 막바지 새누리당에 입당해 박 대통령 당선에 일조한 이 전 대표 측이 윤 전 대변인을 배려했다는 것이다. ‘이회창 사람’으로 분류되는 황우여 대표 역시 지난 14일 기자간담회에서 “(윤 전 대변인은) 이회창 후보 대선 때부터 같이했다. 그때는 그럴 사람으로 안 보였는데. 괜찮아 보였는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윤 전 대변인 인선에 관해 제각기 다른 주장들이 나오면서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선택한 인물이었다는 주장에도 무게가 실린다. 박 대통령은 현역 의원 시절 보좌관들이 스크랩한 칼럼 읽기를 즐겼는데, 그 중 윤 전 대변인 칼럼을 눈여겨봤다고 한다. 인수위 대변인 임명이 당선 이후 단행한 첫 인선이었던 만큼 주변 의견이나 체계적 검증 없이 임면권자로서의 감각에 의존해 자충수를 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인선에 관여했던 민주당 관계자는 연이은 박근혜 정부의 ‘인사 참사’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청와대 입성 후 존안 자료를 찾았다는 것부터가 잘못된 태도다. 존안 자료는 공식 인사자료가 아니라 정권 차원에서 요주의 인물을 사찰할 목적으로 만들어 그 내용이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때문에 참여정부 당시 존안 자료를 대부분 없애고 인사를 상당 부분 시스템화시켰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용도폐기 돼 버렸다”며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을 자를 게 아니라 각계각층의 반발에도 윤 전 대변인을 추천한 이가 누구였는지 공식적으로 언급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