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직원의 미숙한 업무수행을 꾸짖는 방식도 대사관을 통해서 했어야 할 일이지 직접 할 성격은 아니고, 꾸짖은 것을 다독이려고 술을 샀다는 것은 더욱 한심한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잘못된 처신에 대해 응분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봐야 한다.
마녀사냥은 죄 없고, 힘없는 사람에게 가해진 무고한 박해다. 왕이나 교회와 같은 절대 권력이 다중을 교화하고 겁박하기 위해 저지른 범죄다. 강물에 던져진 ‘마녀’에 대한 범죄 입증 방식은 ‘죄가 없으면 가라앉고, 죄가 있으면 떠오른다’였다. 살아날 수가 없었다.
힘과 지위가 있다는 사람들이 마녀사냥을 입에 올리는 것은 인터넷 시대의 아이러니요 신 풍속도이다. 이 시대에서 마녀사냥의 피해자는 연예인 중에 많다. 그 피해가 치명적이기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그 충격으로 자살한 경우도 있다.
가수 타블로에 대한 마녀사냥의 가해자들은 법에 의해 단죄됐으나 그와 그의 가족들에겐 회복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 ‘국물녀 사건’이나 ‘채선당 사건’에서처럼 선량한 시민이 마녀사냥에 걸렸다가 무고함을 입증해 겨우 빠져 나온 경우도 있다.
윤창중 사건은 대한항공 승무원을 폭행한 ‘라면 상무’ 사건, 영업사원이 대리점 주인에게 한 욕설이 문제 된 남양유업 사건과 함께 최근 유행하는 이른바 ‘갑을 관계’의 사건이다. 이들 사건은 지위와 권력의 오남용에 관한 문제라는 점에서 연예인에 대한 마녀사냥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대중들이 지위와 권력을 오남용한 ‘진상’들을 인터넷 공간에다 폭로해서 다중의 힘으로 응징하는 ‘진상 사냥’이다.
권력은 크건 작건 휘두르려는 속성을 갖는다. 특히 공권력은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고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주어진 것임에도 대개는 자신이 남보다 우월해서 주어진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끊임없는 국민의 감시 대상이 돼야 할 이유다.
그 점에서 ‘진상 사냥’은 민주주의 진화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 민주주의 시대에서 네티즌들은 인터넷과 SNS를 통해 서로를 일깨우고, 연대하고, 행동한다. 그들을 행동하게 하는 원동력은 부당하게 당하는 사람이 자기일 수 있다는 자각이다.
그러나 인터넷 민주주의는 모자이크 민주주의다. 사실과 허위, 루머와 억측, 왜곡과 편파가 범벅이 돼 있는 공간에서 자기의 입맛에 맞는 정보들을 짜깁기해 현상을 판단하기 쉽다. 그것은 사실에 입각한 정확한 사태 파악을 어렵게 한다.
‘천천히 서둘러라’는 로마 속담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실 바탕으로 현상을 판단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것이 인터넷 민주주의를 성숙한 민주주의로 만드는 길이다.
한남대 교수 임종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