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사가 건설한 방파제 위 콘크리트 구조물. 해돋이 관람을 방해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정동진은 원래 어민들이 모여 사는 작은 포구에 불과했다. 물론 지금도 이곳에는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어민들이 조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벌써 몇 년째, 강릉시와 정동진 주민 사이에서는 갈등의 골이 깊어가고 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정동항 개발 사업. 1995년, 낙후된 포구시설 탓에 어민들의 수고를 덜기 위한 어항 개발 사업으로 수립됐지만, 우선 투자 순위에서 밀리면서 사업은 지연됐다.
그렇게 사업이 지연되던 2008년 갑자기 관광항으로의 용도 변경과 민자 개발 사업 얘기가 나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강릉시는 그 해 3월, 정동진 어촌계원들이 직접 건의해 민자를 유치한 관광항으로 용도변경을 실시했고 10월과 11월 사업보고회를 열어 주민들을 상대로 용도변경과 민자유치사업에 대해 설명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동진 어촌계원들의 입장은 다르다. 이종길 정동진 어촌계장은 “현재 강릉시가 내밀고 있는 당시 건의서는 조작된 것”이라며 “문제의 건의서는 당시 재직 중이던 전직 어촌 계장이 임의로 서류를 꾸며낸 것이다. 나를 포함해 계원들의 서명이 건의서 뒤에 첨부됐지만, 이는 다른 명목으로 모인 회의에서 작성한 사인을 꾸민 서류에 붙인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종길 계장은 사업설명회에 대해서도 “주민들이 보고회에 참석한 것은 사실이지만, 민자유치나 용도변경에 대해서는 일절 들은 바 없다”고 반박했다.
주민들은 강릉시의 용도변경 및 민자유치 추진이 “최종 사업자로 선정된 특정업체를 밀어주기 위한 술책”이라고 주장했다. 강릉시는 2009년 2월 민자사업자로 S 사를 선정했고 그 해 9월 공사를 시작했다.
양진석 주민대책위원장은 “S 사를 포함해 3곳의 업체가 사업을 지원했지만, 애초부터 사업자는 정해져 있었다”며 “사업자 모집 요건 중 하나가 ‘인접 토지 소유자에게 토지 사용 승락을 받아 공모할 수 있는 자’였다. 주변 토지를 점유하고 있는 S 사 이외에는 사업권을 따낼 수 없었던 셈이다. 결국 강릉시가 S 사를 밀어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강릉시는 인접 토지를 이용하지 않으면 사업 달성이 어렵기에 내세운 요건이지 특정인을 밀어주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후 주민들은 기나긴 투쟁에 들어갔다. 2009년 2월 정동어촌계원들과 주민대책위원회가 민자유치 반대를 수차례 건의했지만, 강릉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해 주민들은 행정소송까지 제기했지만, 법원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각하’ 처리하며 강릉시와 S 사의 손을 들어줬다.
정동항 구석에 조성된 포구. 작고 부실하다는 평가다.
석연찮게 용도가 변경돼 공사가 진행된 탓에, 정작 포구의 주인들이라 할 수 있는 어민들은 뒷전으로 밀렸다. 대체 방편으로 정동항 구석에 포구 공사가 진행됐지만 20여 척에 달하는 어민들의 어선을 대기에는 턱없이 작은 공간이었다. 3~5톤 규모의 어선은 진입조차 힘들어 아예 옆 동네 포구를 빌려 쓰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나마 완성된 작은 포구도 제대로 파도를 막지 못할 정도로 부실하다고 한다.
벼랑 끝에 몰린 주민들은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했다. 감사원은 수차례 현지 감사를 실시한 끝에 지난 2월, 주민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뜻밖의 여러 가지 사실을 밝혀냈다. 우선 감사원은 강릉시 담당 공무원이 불·편법을 동원해 S 사의 총사업비와 시설가액 계산을 조작했고, S 사의 무상사용·수익기간을 20년에서 30년으로 무상 연장해준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담당 공무원들은 건물이 지어지는 방파제의 대지면적에 공유수면을 끼워 넣어 건축물 허가 면적과 용적률을 높여줬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것들은 다 차치하고서라도 어항법상 애초부터 방파제 위에 콘크리트 영구 구조물을 짓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는 것이 감사원의 지적이다. 강릉시는 이 건축물에 요식업 허가까지 내줬다. 감사 결과 S 사 역시 시설물 무상사용·수익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총사업비 명세서와 증빙서류를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감사원이 강릉시에 요구한 조치는 담당 공무원의 징계와 명세서를 조작한 S 사 대표를 고발하라는 것뿐이었다. 정작 불법 허가로 지어진 건축물들에 대해서는 철거는커녕 그저 “차후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라”며 주의를 주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일요신문> 확인 결과 강릉시와 강원도는 최근 감사원이 요구한 담당 공무원에 대한 징계를 마무리하고 S 사 대표에 대해서도 고발 조치해 감사원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와 만난 담당 공무원은 “우리로서는 이미 할 일을 다했다”며 “감사원 요구대로 조치사항들을 진행했으며 이미 감사원에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설명이었다.
그러나 정동진 주민들 입장에서는 문제만 확인했을 뿐,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다. 이종길 계장은 “16일 밤, 주민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며 “문제점이 드러났음에도 솜방망이 조치를 내린 감사원도 이해할 수 없다. 앞으로 국민권익위원회 신고를 포함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겠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성수기 일출 시야를 방해하는 S 사의 불법 건축물을 철거하고 원안대로 어항 개발을 실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동진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기세남 민주당 강릉시의회 의원은 “오는 27일, 강릉시장을 상대로 정동항 개발 사업과 관련해 시정 질의를 할 계획”이라며 “이 문제는 정동진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릉=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