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포문을 연 쪽은 KT다. 지난 14일 KT는 “재벌이 시장을 독식하려는 꼼수”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KT가 비난한 재벌기업은 물론 경쟁사인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다. KT가 목소리를 높인 것은 올 초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새로운 주파수 할당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연합해 KT를 견제한 탓이다.
당시 방통위는 주파수 할당 문제를 ‘다음 정부’(박근혜 정부)로 넘길 것을 시사했기에 KT로서는 “경쟁 입찰과 그 결과에 따라 할당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미래부로 이관된 주파수 할당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자 KT가 선수를 친 것.
통신 3사 간 싸움을 야기한 주파수는 1.8㎓ 15㎒ 대역이다. KT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1.8㎓ 대역과 인접한 대역으로서 만약 이 대역을 KT가 할당받을 경우 KT는 2배 빠른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다. LTE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KT가 최고 품질을 무기로 업계 1위로 치고 올라갈 수도 있는 것.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품질”이라며 “SK텔레콤이 오랫동안 1위를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도 품질”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인접대역이므로 시설투자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그 비용을 대신 마케팅에 투자한다면 효과는 배가된다.
LTE에서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KT로서는 반전이 절박하다. 2011년 SK텔레콤과 벌였던 ‘1조 원 무한경쟁’에서 중도포기한 후 시간이 갈수록 경쟁업체들을 따라잡기는커녕 기회마저 잡지 못하고 있다. 이석채 KT 회장의 라이벌 이상철 부회장의 LG유플러스에도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래저래 ‘통신공룡’의 체면이 말이 아닌 셈이다. KT가 “현재 우리가 불리한 상황임에도 경쟁사가 인접대역 할당을 반대하는 것은 KT에게 이동통신 사업을 접으라는 말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KT의 주장과 경쟁사 비판이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은 데다 그 수위가 너무 높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KT가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를 겨냥해 ‘재벌기업’이라는 표현을 쓴 까닭이 최근 사회 분위기를 이용해 보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구심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석채 회장 취임 이후 빠르게 재벌화돼가고 있는 KT가 재벌기업을 들먹인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미래부에서 진작 통신 3사에 ‘입조심’을 당부했음에도 KT가 이를 무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KT의 비난을 받은 경쟁사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당장 KT에 맞받아쳤다. 특히 LG유플러스의 반박 수위는 깜짝 놀랄 만큼 높았다. LG유플러스는 KT를 향해 “특혜를 바라지 말고 정정당당히 승부하라”고 경고했다. 심지어 ‘기업의 기본 자질’, ‘주인 없는 회사’, ‘낙하산’ 등 원색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으며 KT가 아파할 수 있는 부분을 건드리기도 했다.
미래부와 최문기 장관의 경고로 통신사들의 격화된 감정은 일단 진정된 분위기다. 하지만 불안함은 내재돼 있다. 통신업계 다른 관계자는 “아직 최종안이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통신사들 간 싸움은 소모적일 뿐”이라고 말했다. 싸움이 과열되자 미래부가 조정하고 나섰다. 최문기 미래부 장관 역시 통신사들의 과열양상을 지적하며 “이상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미래부가 주파수 할당과 관련한 기존의 세 가지 방안 외에 ‘제4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KT가 원하는 1.8㎓ 대역 15㎒를 KT에 주고, 1.8㎓ 주파수 35㎒ 대역을 SK텔레콤에 할당하며 LG유플러스에는 SK텔레콤이 보유하고 있는 2.1㎓ 20㎒ 대역을 양도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주파수가 할당될 경우 통신 3사는 모두 광대역화를 이룰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여전히 KT에 1.8㎓ 대역 15㎒를 할당한다는 이유에서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래부 최준호 주파수정책과장은 “4안에 대해서는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부인했다. 최 과장은 “통신사들 입장과 통신시장을 고려해 효율적인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며 “기존의 세 가지 방안 외에도 여러 가지를 검토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지금으로선 주파수 할당 문제가 원만히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KT 입장에서는 꼭 1.8㎓ 대역 15㎒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KT 관계자는 “이 대역을 할당받지 못할 경우 사업이 매우 어려워진다. 할당받는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경쟁사들은 KT가 결코 이 대역을 가져가서는 안 된다며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미래부 조정으로 잠시 수면 아래 내려간 주파수 할당 문제는 언젠가 다시 터져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 시각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KT “재벌 독식 꼼수” LG “낙하산 비효율”
지난 14일 KT는 “재벌기업이 시장독식을 위해 KT를 모바일 사업에서 몰아내려 한다”며 “현재의 주파수 보유 체제 자체가 불공정해 경쟁사가 할당을 반대하는 것은 재벌이 시장을 독식하려는 꼼수”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KT가 비난한 재벌기업은 물론 경쟁사인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다.
이에 LG유플러스는 “비난하지 말고 스스로 기업의 기본 자질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며 “세칭 ‘낙하산’이라 불리는 외부 인재들을 다수 영입했음에도 KT의 전략수립 과정이 효율적이지 못한 것 아닌가 의심된다”고 날을 세웠다. KT뿐 아니라 이석채 회장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KT 관계자는 “우리는 회사에 대해 언급했는데 경쟁사는 경영진을 걸고넘어진 것”이라며 “도가 지나치다”고 말했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KT에서 먼저 억지를 쓰고 비난한 것에 대한 답변”이라며 “한쪽에 몰아주는 것이 아닌 공정한 경쟁을 강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