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이 소속팀 QPR과의 이별이 기정사실화된 가운데 어디로 이적할지 여러 가지 추측이 나돌고 있다. AP/연합뉴스
# 예고된 이별
박지성의 유럽 생활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PSV 에인트호번(네덜란드)을 거쳐 유럽은 물론, 세계에서도 최고로 통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에서 많은 우승을 경험했다. 벤치에 머물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감격의 순간에는 그라운드에 있었다.
얼마 전 맨유에서 박지성을 애지중지했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27년간의 ‘원 클럽 사령탑’을 마치고 고독한 승부의 세계를 떠났을 때, 국내 축구계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퍼거슨 감독이 은퇴하는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할 이는 가가와 신지(일본)가 아닌, 박지성이다”라고.
TV 중계 화면에서 퍼거슨 감독이 동고동락해온 많은 제자들을 일일이 안아주고, 등을 두드리며 격려해주는 모습은 QPR에서조차 그라운드가 아닌, 벤치에 앉아 있던 박지성의 모습과 묘하게 오버랩됐다. 특히 박지성의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맨유가 영입한 일본 축구스타 가가와 신지가 퍼거슨 감독과 기념 촬영을 한 것을 놓고 팬들은 더욱 배 아파 했다.
박지성은 작년 여름 일생일대의 큰 선택을 했다. 7년을 함께한 맨유가 아닌, 새로운 곳에서 마지막 발자취를 남기기를 바랐다. 행선지는 런던에 연고를 둔 소규모 클럽 QPR이었다. 당시 QPR은 풍부한 재정을 자랑했다. 세계적인 기업으로 올라선 저가항공사 에어 아시아의 말레이시아 국적의 토니 페르난데스 회장은 구단 마케팅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풀었다. 그 과정에서 박지성이 ‘맨유맨’ 타이틀을 뗐다. 2년 계약. 이를 다 채우고 명예롭게 현역 시절을 마치겠다는 선수 본인의 의지가 컸다.
사실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마크 휴즈 전 감독 휘하에서 박지성은 주장 완장을 찼고, 준수한 실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팀이 문제였다. 높은 이름값에 걸맞지 않는 스타(정확히 표현하자면 ‘스타 출신’) 플레이어들의 이기적인 행동에 팀은 금세 분열됐다. 도무지 좋은 성적이 나올 수가 없었다. 겨울 이적 시장에서도 페르난데스 회장은 몇몇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위기를 타개하려 했지만 여기에 자신밖에 모르는 사령탑이 있었다. 바로 해리 레드냅 감독이었다. 포츠머스 사령탑 시절, 영국 검찰로부터 비리 혐의를 받고 자택 급습까지 받았지만 무혐의로 풀려났던 과거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레드냅 감독은 위기에서도 뛰어난 (그것도 자신만을 위한) ‘생존본능’을 발휘했다. QPR에서도 마찬가지. 자신의 지도력에도 문제가 있다는 걸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전임자 휴즈 감독으로부터 큰 신뢰를 받았던 박지성을 벤치워머로 돌리면서 한국 내에 ‘안티 레드냅’ 팬들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렸다.
해리 레드냅 감독
하지만 박지성은 단 한 번도 불만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벤치 생활이 길어져도, 자신의 진가를 몰라줘도 한결같았다. 조금이라도 아쉬움이 있으면 속내를 가감 없이 표출하는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이적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QPR과의 이별은 기정사실화됐다. 축구계에서는 박지성 잔류 여부를 놓고 레드냅 감독이 반대, 페르난데스 회장이 찬성표를 던진다고 바라보지만 에이전트 업계 일각에서는 오히려 레드냅 감독이 박지성을 잔류군으로 구분한 반면, 사업 확장과 마케팅에서의 박지성의 역할이 끝났다고 판단한 페르난데스 회장이 내치기를 희망한다고 주장한다.
영국 소식에 정통한 한 에이전트는 “페르난데스 회장은 철저한 기업가 마인드다. 선수도 하나의 상품이다. 상품성이 떨어졌다고 판단되면 손해 보지 않는 한도 내에서 새 길을 열어주려고 하는 게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페르난데스 회장은 7월 예정됐던 경남FC와의 방한 경기를 일방적으로 취소하면서 “구단의 마케팅에 주력한 결과, 인지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비시즌 투어를 하는 것보다는 팀을 성장시키는 게 먼저”라고 설명했다.
# 향후 거취는?
수많은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영국 현지 언론들도 끊임없이 박지성과 관련한 거취 보도를 양산하고 있다. 매체들이 전망하는 행선지 역시 제각각이다. 박지성이 ‘QPR 벤치맨’이 돼 버린 지난 시즌 후반기 무렵을 기점으로 중동-중국-미국 등지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적어도 중동-중국-미국 등지로 갈 확률은 ‘제로(0)’에 가까워 보인다. 아버지 박성종 씨를 비롯한 측근들도 “어차피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마당에 주변에서는 중동과 중국을 행선지로 추천하는 분들이 많지만 (박)지성이의 성격상 그런 데(중동) 갈 것 같진 않다. 물론 그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지성이가 중동과 중국에서 아름다운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성이 입장에선 돈만 보고 이적했다는 오해도 사기 싫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중동과 중국은 엄청난 자금을 앞세워 각국 스타들을 수집하는 데 열을 올려왔고, 또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중동에서는 오일(Oil) 머니를 손에 쥔 왕족들이 주로 축구단을 운영하고, 중국은 신흥 부동산 부호 출신 구단주들이 많다. 돈에 있어서는 결코 아쉽지 않은 이들이기에 박지성에 책정됐다는 이적료나 연봉 규모 역시 엄청나다.
유럽에서 명성을 떨친 선수들이 종종 안착해온 미국의 경우, 연봉에 한계를 두는 샐러리캡 제도가 있지만 일부 스타급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고 있다. 박지성은 당연히 ‘예외 선수’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딱히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에인트호번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이영표(밴쿠버 화이트 캡스)처럼 축구 행정이나 스포츠 마케팅 공부에 뜻을 두지 않고 있어 역시 현실성이 없다. K리그 진출도 마찬가지. 수원 출신이라는 점에서 수원 삼성이 ‘한국행 전제 하에’ 유력한 곳으로 점쳐지지만 정황상 크게 가능성은 없다.
프리미어리그 내에서는 새 시즌부터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한 카디프시티가 거론되지만 역시 동남아 출신 기업가가 운영하는 구단이라는 점이 껄끄럽다. 말레이시아 구단주에 이미 한 번 아픔을 겪은 마당에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으로 가는 건 거의 모험에 가깝다. 더욱이 지난 시즌 박지성이 남긴 발자취가 깊지도 않다.
결국 유럽 내 제3지역이 유력한데, 이 경우에는 QPR도 어느 정도 이적료만 채워주면 크게 주저하지 않고 풀어줄 확률이 크다. 맨유도 작년 여름 박지성이 “뛰고 싶다”는 의지 속에 이적을 요청했을 때 “다른 국가 프로리그로 가면 이적료를 크게 낮춰줄 수 있지만 프리미어리그 내 이적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실제 이적료를 많이 깎아주지 않았다.
잠재적인 적이라는 소지를 미연에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독일과 네덜란드, 스페인 등이 거론되지만 일단 박지성을 영입하면 되팔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야 하므로 행선지 찾기에는 약간의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긴 계약기간이 이적 ‘걸림돌’
사진출처=QPR 홈페이지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이는 역대 최악의 선택이었다는 시선이 절대적으로 많다. QPR에서 윤석영의 존재는 완전히 잊혀졌다. 다른 동료들이 이적설에 휘말리지만 윤석영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윤석영도 자신의 처지에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미 새로운 기착지를 알아보고 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그러나 지나치게 긴 계약기간이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입단 후 반 년이 흐른 현재, 3년이나 남았다. 더욱이 그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있었다. QPR과 함께 풀럼FC가 영입전을 벌였지만 최종 선택은 QPR이었다. 풀럼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한 반면, QPR은 강등됐다.
나란히 올림픽에 출전한 김보경은 빅(Big) 리그 직행이 아닌 챔피언십 카디프시티에 입단하며 주변에 충격을 안겼지만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라는 기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같은 시기, 윤석영은 완전히 반대의 상황에 놓였으니 더욱 뼈아플 수밖에 없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박주영 ‘막다른 골목’에…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이때 답답한 기다림의 시간을 달래주는 게 선수 이적시장이다. 유럽도 여름과 겨울, 두 차례 이적시장을 개장하는데 급한 불을 끄는 쪽에 포커스를 맞추는 겨울보다 새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폭 전력 보강에 임하는 여름이 훨씬 규모가 크다.
그런 면에서 올해 여름은 기대해볼 만 할 것 같다. 특히 한국 선수들의 대규모 이동이 예상된다. 잔류가 확실한 기성용(스완지시티)-김보경(카디프시티), 성공적인 독일 생활을 이을 가능성이 큰 손흥민(함부르크SV) 등을 제외하고 유럽 무대에 머물고 있는 상당수 한국 선수들이 불편한 상황에서 새로운 둥지를 찾아야 한다.
왼쪽부터 기성용, 김보경, 손흥민
구자철-지동원(이상 아우크스부르크) 역시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나름 좋은 활약을 했으나 역시 껄끄러웠던 원 소속 팀(각각 볼프스부르크-선덜랜드)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 그래도 쫓겨나듯 떠나는 게 아니라 그나마 환영할 만하다.
잔류할 경우, 다음 시즌에도 챔피언십에 머물러야 하는 이청용(볼턴)도 스토크시티 등 여러 팀들의 오퍼를 받지만 잔류에 대한 볼턴의 의지가 강하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