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을 달고 사는 제러미 본더맨은 ‘인버티드 W’ 투구폼을 지니고 있다. AP/연합뉴스
류현진을 보는 많은 야구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투구폼이 부드럽다. 때문에 부상을 입을 확률이 낮다”라고 말한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런 평가는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투수의 숙명인 걸까. 아무리 ‘괴물’이라고 불리는 류현진 역시 부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류현진은 토미존 수술을 받았고, 오랜 시간 공 한 번 만지지 못한 채 재활에 매달려야 했었다. 류현진 외에도 정상급 국내 선수들 가운데 토미존 수술을 받은 선수들로는 오승환, 봉중근, 임창용 등이 있다.
이처럼 투수들의 팔이 부상에 쉽게 노출되어 있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투수들이 마운드에서 와인드업을 하거나 릴리스하는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라. 어딘가 기묘한 데가 있지 않은가. 공을 던지는 순간을 정지해서 보면 투수의 팔은 더욱 기괴하게 보인다. 이는 마치 농구선수가 발목을 접질리거나, 혹은 축구선수의 무릎이 뒤틀릴 때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공을 던지는 순간, 투수의 팔꿈치는 소름끼칠 만큼 뒤틀려 있다.
“머리 위로 공을 던지는 투수의 피칭 동작은 매우 비정상적인 동작이다.” 전 뉴욕 메츠 투수이자 현 MLB 네트워크 애널리스트인 알 라이터의 말이다. 현역 시절 ‘이닝 이터’로 유명했던 그는 심지어 뉴욕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9회 투아웃까지 142개의 공을 던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심각한 팔꿈치 부상을 입었고, 3년간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팀 린스컴 투구 동작. 팀처럼 폼이 복잡할수록 부상 위험이 크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이에 대해 <뉴욕 매거진>은 “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사실 정확히 모른다”고 말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모든 야구팀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어떤 유형의 투수들이 부상을 적게 당하는지 관찰하고, 또 가급적 부상을 당하지 않도록 최대한 보호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워싱턴 내셔널스의 스타 플레이어인 스티븐 스트라스버그(24)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200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역대 최고액인 1510만 달러(약 168억 원)를 받고 전체 1순위로 워싱턴에 지명됐던 그는 시속 161㎞를 넘나드는 불꽃 강속구를 자랑하는 선수다. 지난해 15승을 올리면서 꼴찌팀이었던 워싱턴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장본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부상에 취약한 투구폼과 너무 약한 팔꿈치가 바로 그랬다. 전문가들은 조심하지 않으면 선수 생명이 짧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고, 이런 경고는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다. 2010년 팔꿈치 인대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던 그는 결국 토미존 수술을 받았고, 2년 동안 재활에 매달려야 했다.
그 후 복귀에 성공했지만 워싱턴은 구단의 보호 방침에 따라 그가 던지는 이닝 수를 연 159이닝으로 제한했다. 실제 그는 지난해 9월 7일, 정확히 159.1이닝을 던진 후 다시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으며, 결국 포스트시즌에서도 단 한 번도 등판하지 않았다. 지구 우승의 주역인 스트라스버그를 포스트시즌에서 볼 수 없게 된 건 분명 팬들로서는 매우 아쉬운 일이었을 터. 하지만 구단의 방침은 단호했다. 선수 보호가 우선이라는 것이었다(결국 워싱턴은 카디널스에 패해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투수들의 부상이 왜 점점 증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이론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혹사다. 4일 혹은 5일 등판 간격을 무시한 채 자주 마운드에 오르거나, 혹은 무리하게 많은 공을 한꺼번에 던질 경우 투수들의 팔이 고장 날 위험은 증가한다.
일례로 천재 투수로 불렸던 알 라이터는 지나치게 공을 많이 던져 부상을 당한 대표적인 경우다. 한번은 무려 163개의 공을 던진 적도 있었다. 결국 부상자 명단에 올랐던 그는 잦은 부상에 시달리면서 3년 동안 총 여덟 경기에 드문드문 출전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세 번의 수술을 받은 후 1993년에야 다시 정기적으로 마운드에 오를 수 있었던 그는 “그건 학대였다. 나는 팔을 거의 들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내 선수생활 전체가 망가졌다”고 푸념했다.
왼쪽부터 마크 프라이어,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사정이 이러니 어릴 때 부상을 당하는 비율이 프로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는 비율만큼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미 스포츠의학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12세 때 공을 던지는 어린이들 가운데 5%가 22세가 되기 전까지 심각한 팔 부상으로 수술을 받거나 혹은 야구를 그만두게 된다.
투구폼 가운데 부상에 가장 취약한 자세로는 악명 높은 ‘인버티드 W’ 즉, ‘뒤집힌 W’가 있다. 이는 팔꿈치가 어깨보다 지나치게 높이 올라가는 자세로, 팔에 엄청난 무리가 가는 동작이다. 스트라스버그 역시 ‘인버티드 W’ 투구폼을 구사하기 때문에 부상을 입을 확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인버티드 W’로 가장 유명한 선수라면 단연 마크 프라이어를 들 수 있다. 고교 시절부터 빼어난 실력을 자랑했던 그는 신장 198㎝의 좋은 체격조건과 150㎞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던지면서 메이저리그의 스타가 될 자질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인버티드 W’로 잦은 부상에 시달렸던 그는 구속도 떨어지고 자신감도 줄어들면서 현재 마이너리그와 독립리그를 전전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인버티드 W’가 투수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가 하는 분석은 야구광이자 웹사이트 운영자인 크리스 올리어리라는 남성이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자세히 소개해 놓았다. 어린 시절 팔꿈치 부상을 당했던 그는 어느 날 수백 편의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동작이 담긴 영상을 분석하던 도중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부상을 당하지 않는 선수들과 부상을 자주 당하는 선수들 간에 어떤 차이가 있나 조사하고 있었던 그는 존 스몰츠, 마크 프라이어, 제레미 본더맨 등 끊임없이 부상을 달고 다니는 선수들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로 ‘인버티드 W’ 투구폼이었다. 올리어리는 “이런 자세는 토미존 수술을 받게 되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불행하게도 이 투구폼을 어린 투수 지망생들에게 가르치는 곳이 많다는 데 있다. 특히 키가 아주 크지 않거나 힘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인버티드 W’ 동작으로 힘을 더 실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올리어리는 “솔직히 말하면 이런 체격 조건의 선수들은 140㎞ 이상 던질 수가 없다. 억지로 힘을 싣기 위해서 ‘인버티드 W’ 동작을 취할 경우, 결국 선수생활이 짧아질 수밖에 없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투수들을 부상에서 해방시키려면 철저한 선수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 선수를 관리하는 방법은 각 구단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뉴욕 양키스의 경우에는 선수들을 마치 서러브레드(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경주마의 일종)처럼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트레칭 횟수부터 운동 방식, 아이싱 횟수 등 하나부터 열까지 정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경우에는 마이너리그 투수들에게 컷패스트볼 금지령을 내렸다. 어린 시절 너무 빨리 커터를 연마할 경우 패스트볼의 구속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부상의 위험이 크다는 것이 이유다.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선수들의 부상이 적은 팀으로 유명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일절 비밀에 부치고 있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세 번째로 투수들의 부상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투구수 및 이닝 제한이 있다. 경기 때마다 투수들의 투구수를 세심하게 따지는 것은 부상을 예방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 됐다. 과거에는 투수들이 150개 이상의 공을 던지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오늘날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던지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2005년 리반 에르난데스가 9이닝 동안 150개를 던진 바 있으며, 가장 최근에는 2010년 에드윈 잭슨이 노히트 기록을 세웠던 경기에서 149개를 던진 게 최고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 ‘미스포츠의학협회’ 리서치 디렉터이자 투수 부상 연구 분야의 선두주자인 글렌 플레이시그는 “사실 정확히 투수들에게 얼마만큼의 휴식 기간이 필요한가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투수들이 부상을 당하지 않는 방법이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도 “이 문제를 평생 연구해온 사람으로서 단언컨대, 그런 마법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금까지 여러 분야에서 발전이 있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수들은 부상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저 위험을 줄이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구속 증가’ 입증 안됐다
오늘날 투수들 사이에서 마법과도 같이 여겨지고 있는 토미 존 수술은 LA 다저스 소속의 주치의였던 프랭크 조브 박사가 처음 고안한 방법이었다.
1974년 다저스의 선발 투수였던 토미 존은 마운드에서 내려온 후 팔꿈치에 심각한 통증을 느꼈다. 면도칼로 베는 듯한 기분 나쁜 통증이었다. 그는 ‘팔꿈치 척골 측부인대 파열’ 진단을 받았고, 그렇게 선수 생명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에 빠졌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조브 박사로부터 다른 부위의 힘줄을 떼어내서 부상당한 팔에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던 그는 1년 반 동안의 재활을 거쳐 1976년 다시 복귀전을 치를 수 있었다.
이처럼 허벅지나 팔뚝, 발바닥 등 다른 부위의 힘줄을 팔꿈치에 이식하는 토미 존 수술은 오늘날 많은 투수들 사이에서 (통과의례까지는 아니더라도)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 메이저리그에서도 토미 존 수술을 받는 선수들은 점차 증가 추세에 있다. 현재 메이저와 마이너를 모두 합쳐서 매년 최소 40명 정도가 이 수술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토미 존 수술을 받을 경우 재활 기간은 최소 1년이며, 얼마나 재활을 성공적으로 했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전문가들은 대부분이 복귀에는 성공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구속이 더 오르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수술을 받으면 구속이 3~4㎞ 늘어난다’는 주장은 사실 입증된 바가 없다는 것이다. 가령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존 스몰츠의 경우에는 수술 후 구속이 올랐지만,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프란시스코 리리아노의 경우에는 오히려 수술 후 구속이 떨어졌다.
수술 후 구속이 오르는 경우 재활 기간 동안 충분히 쉬면서 근육을 단련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