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가 중단된 ‘일간베스트저장소’ 화면 캡처.
지난 21일 종편채널인 <채널A>는 종합뉴스를 통해 사과방송을 내놨다. “방송 내용으로 마음을 다친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와 광주시민, 시청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제작진은 방송 과정에서 부족했던 점을 엄밀하게 검증해 시정해 나가겠다”고 밝힌 것이다.
문제가 된 방송은 지난 15일에 방송된 <김광현의 탕탕평평>에서 다룬 ‘5·18 특집’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프로그램은 1980년 5월에 광주에 남파됐다는 탈북자 김명국 씨(가명)의 주장을 여과 없이 보도하며 5·18 북한군 특수부대 투입설을 입증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방송이 나간 후 <김광현의 탕탕평평>은 5·18 관련 시민단체들의 항의와 <채널A> 및 <동아일보> 기자들의 문제 제기까지 한 몸에 받아야 했다. “엄중한 사안에 비해 주장만 있고 검증은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채널 A>가 사과방송을 한 시점에 ‘일베’는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채널A가 좌빨에게 굴복했다”, “언론 탄압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던 것. 심지어 몇몇 일베 회원들은 5·18 당시 희생자들의 관이 안치된 사진을 두고 ‘홍어 택배’라고 칭하거나, 광주 시민들이 학살된 사진을 두고 “홍어 좀 밖에 널어라” 등으로 비하한 사실이 밝혀져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밖에도 5·18을 빗대 ‘홍어무침’이나 ‘홍어국 독립운동’ 등이라고 일컫는 일베 유저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쏟아졌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을 ‘중력절’이라 부르며 카톡 프로필 사진을 거꾸로 올린 모습. 일베 홈페이지 캡처
일베의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목소리가 커지는 등 급성장한 시기는 지난 대선 정국인 2012년 말로 꼽힌다. 2012년 초 월간 일평균방문자 수가 72만 6000명이었던 반면에 2012년 말에는 그 세 배가량인 219만 명으로 치솟은 것이다. 경희사이버대학교 사이버사회연구소장 민경배 교수는 “골방에 있던 하위문화가 선전선동을 통해 대중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대선 과정에서 끌어올려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일베 회원 다수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공개 지지하며 스스로를 ‘애국보수’라 칭하기도 했다. 이때 ‘산업화’라는 용어가 인터넷에서 회자되기 시작했는데, 산업화란 보수의 논리로 진보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를 게시글이나 댓글로 제압하는 것을 일컫는 일베 용어를 뜻한다. 당시 위세를 떨쳤던 활약 때문인지 새누리당 선대위 안형환 대변인은 “일베는 순수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공간으로 유명하다”며 치켜세우기도 했다.
현재 일베는 ‘일간베스트’, ‘정치 일간베스트’, ‘걸그룹, 연예인 게시판’, ‘고민상담 게시판’ 등 다양한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다. 이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일간베스트’와 ‘정치 일간베스트’ 게시판이다. 일베 게시물 사이에서도 ‘베스트’로 꼽히는 게시물이기 때문이다. 각종 논란의 중심지도 바로 이곳이다. ‘특정 지역(전라도) 비하’, ‘5·18 폭동설’,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 찬양’,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조롱’ 등이 단골 인기 메뉴로 꼽힌다. 한 일베 회원은 “노찡(노무현 전 대통령을 일컫는 일베 용어)은 우리의 영원한 마스코트”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밖에도 일베는 ‘여성혐오’, ‘인종 차별주의’, ‘패륜과 엽기’ 등의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몇 달간 꾸준히 일베를 분석했다는 한 여성 네티즌에 따르면 “일베에서 여자를 여자로 불리면 까인다. 일단 여자는 모두 ‘XX’로 통칭된다”며 “다른 남초 사이트도 겪어봤지만 제가 최소한 여자가 아닌 구멍 취급당한 건 일베가 처음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각종 성 관련 스캔들이 터졌을 때 항상 상상할 수 있는 이상의 반응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여제자와 성교를 했던 남선생 이야기가 올라오면 댓글에 ‘야 거기 초등학교 어디냐, 앞으로 거기 남교사 지원율 쩔겠다’ 등의 식으로 얘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베의 이러한 현상에 대해 진보진영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태다. 지난 22일에는 일베에 링크된 광고가 모두 중단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온라인 광고대행사 ‘리얼클릭’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제휴매체 일간베스트에서 역사 인식을 왜곡하는 것은 물론 유해 정보가 많이 올라오고 있어 광고주와 인터넷 유저를 보호하기 위해 리얼클릭 광고 노출을 차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민주통합당이 일베 운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로 결정한 것과 더불어, 방통위에서도 “일베를 유해매체물로 지정해 달라”는 네티즌의 청원이 빗발쳐 일베와 관련한 광범위한 조사를 착수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일베 운영진은 이러한 여론 악화와 관련해 “특정 게시글과 댓글 탓에 언론 매체 등의 주목을 받고 있고 이로 인해 수사기관의 게시자 정보 요청이 끊임없이 접수되고 있다”면서 “일베를 운영해왔던 것에 대한 후회는 없으며 현 상황에 대한 책임도 일베가 짊어질 것”이라고 일베 게시판을 통해 밝혔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페북’선 ‘넌 일베충이니’ 운동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의 일베 인증샷. 트위터 캡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에서 일베는 보수 성향의 커뮤니티로는 독보적이었다. 대부분의 인터넷 커뮤니티가 진보 성향을 띠기 때문이다. ‘오늘의 유머’, ‘SLR클럽’, ‘MLB파크’ 등은 일베와 각을 세우는 대표적인 진보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다.
한편 페이스북에서는 반 일베 운동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는 자게이다’, ‘너 일베충이니’ 페이스북이 유명하다. 1만 3000여 명이 받아보고 있는 ‘너 일베충이니’ 페이스북 운영자는 “일베의 반사회적인 문화를 고발하고, 그 이용자들의 위험성에 대해 공감하기 위해 만든 페이지”라고 밝힌 바 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10대 후반~20대 남성들 주축
일베가 극우 성향을 띠게 된 계기는 의견이 다양하다. 대표적으로는 이전 진보정권의 정책실패가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88만 원 세대의 좌절이 인터넷을 통해 분출됐다는 것이다.
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지난 22일 M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적으로 진보정권들의 정책실패가 초래한 어떤 경제위기, 여기에 대한 반발로 젊은 우익들이 등장하게 된다”며 “일본 같으면 넷우익, 유럽 같은 경우에는 네오나치들이 그런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주로 일베에서 그런 경향들이 나타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일베 현상을 심리적인 현상으로 보는 분석도 있다. 문화사회연구소 상임위원 권경우 문화평론가는 “청소년기 학업 경쟁으로 약육강식의 세계를 접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힘에 대한 동경, 경외심이 있다”며 “때문에 박정희, 전두환 등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던 이들이 떠받들어지고 약자에 대한 공격은 ‘여성혐오’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일베 회원들은 이러한 분석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모습이다. 100만 명에 달하는 일베 회원들을 어느 하나로 분석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수개월 동안 일베를 이용했다는 한 네티즌은 “단순한 재미로, 혹은 정치 성향이 맞아서 등등 일베 유저들이 일베를 찾는 이유는 수십 가지일 것”이라며 “콘텐츠가 선정적이지만 퀄리티와 기막힌 발상 하나는 일베를 따라갈 커뮤니티가 없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일베 회원은 “좌파의 이중성을 따져보면 한두 가지가 아니다”며 “일베는 항상 팩트로 승부한다”고 자신만만해 했다.
일베 현상을 두고 정치권과 언론에서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오히려 일베가 알려지고 새로 유입되는 사람이 더욱 늘어났다는 것이다. 경희사이버대학교 사이버사회연구소장 민경배 교수는 “일베에 대한 내적 동력을 오히려 외부에서 키우는 측면이 있다”며 “일베를 다뤄줄수록 응집력은 더욱 커지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