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 및 탈세 수법이 속속 드러나면서 검찰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이상민 인턴기자
지난 21일 아침 6시 30분 검찰은 CJ그룹 본사와 CJ경영연구소, CJ그룹 임직원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이 잡은 혐의는 탈세. CJ그룹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 해외 조세피난처를 통해 70억 원의 소득세를 탈세했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를 지켜본 재계 관계자 중에는 깜짝 놀란 사람이 적지 않았다. 우선 검찰의 압수수색이 기업의 경우 대개 업무시간 중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볼 때 아침 6시 30분은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또 그동안 재계에 알려졌던 검찰 내사 기업 중에는 CJ가 포함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던 터다.
재계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검찰의 수사 속도와 범위다. CJ그룹을 압수수색한 바로 다음날인 22일 검찰은 2008년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차명 재산에 대해 세무조사를 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을 전격 압수수색해 관련 자료를 입수했다. 연이어 23일에는 이재현 회장과 이미경 CJ E&M 총괄부회장, 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를 비롯해 혐의가 있는 전·현직 임직원들을 출국금지시켰다.
검찰은 또 22~23일에는 관련 인물들을 소환, 조사하면서 그야말로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였다. 일부에서 ‘전광석화’로 칭할 정도로 검찰의 수사 속도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빨랐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전 같으면 압수수색과 출국금지, 관련 인물 소환조사 등 2~3주 정도 걸릴 일을 단 이틀 만에 해치운 셈”이라며 “수사 방식이 새로운 것도 아닌데 이처럼 숨 가쁘게 몰아붙인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재계는 CJ에 대한 검찰 수사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수사 속도도 그렇지만 수사 범위가 ‘융단폭격’ 수준으로 갈수록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출발은 70억 원대 탈세 혐의였지만 불과 며칠 사이 혐의가 비자금 조성과 편법 증여 등으로 확대됐고 자금 규모는 수천억 원대로 불어났다. 이 회장을 비롯해 누나인 이 부회장, 동생 이 대표 등 오너 삼남매를 출국금지 조치하면서 검찰의 칼끝이 오너 일가로 향하자 재계가 허투루 보아 넘길 수 없게 됐다. 더욱이 CJ그룹은 지난 19일 “비용 절감과 근무시간 엄수 등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겠다”고 밝힌 직후 검찰 수사가 이뤄져 그 충격이 더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CJ를 본격적으로 수사하게 된 계기가 금융정보분석원(FIU)의 통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CJ가 버진아일랜드의 ‘페이퍼컴퍼니(실체는 없고 서류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통해 70억 원을 조성한 것을 알아낸 금융정보분석원이 검찰에 이 자금의 흐름이 수상하다고 통보해 그동안 내사하던 검찰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는 것.
검찰은 CJ가 홍콩의 스위스계 은행 비밀계좌에 숨겨둔 비자금을 버진아일랜드와 홍콩의 특수목적법인(SPC)에 투자하는 식으로 세탁한 후 국내로 들여왔다고 파악하고 있다. 이재현 회장 등 오너 삼남매가 여기에 관여했다는 것이 이들을 출국금지한 이유다.
CJ그룹 비자금 혐의는 지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이재현 회장의 개인 자금을 관리해온 이 아무개 씨가 살인청부 혐의로 재판받는 과정에서 비자금 이야기가 나왔던 것. 당시 국세청은 CJ에 대한 대규모 세무조사를 진행해 이재현 회장의 4000억 원대 차명재산을 확인, 1700억 원을 추징한 바 있다.
검찰 쪽에서 보면 수천억 원의 차명재산이 나왔음에도 국세청이 검찰에 고발하지 않은 것이 의문일 수밖에 없다. 그 정도 규모라면 고의적으로 탈세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이 지난 22일 국세청 조사4국에 협조를 구한 게 아니라 아예 압수수색한 이유다. 국세청 관계자는 “표현만 압수수색이지 협조나 다름없다”며 “영장이 없으면 자료를 보여주지 않기에 영장을 가져온 것일 뿐”이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이재현 회장
한편 CJ그룹이 MB정권 때 여러 차례 법망에 걸렸지만 무사히 넘어간 것에 대해선 사정기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들이 많다. 이 회장이 고려대 출신으로 MB정권 실세들과 교분을 나눴고 그중 일부 인사들이 검찰이나 국세청에 입김을 넣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때문에 검찰의 수사칼날이, 이 회장의 방패막이가 돼줬던 MB정권의 핵심 실세로 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이 지난 5월 초·중순 두 차례에 걸쳐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를 소환조사한 것도 CJ그룹 비자금 수사와 관련이 있다. 검찰은 홍 대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CJ그룹이 홍 대표를 통해 해외 고가 미술품 등을 1400억 원어치 사들인 사실을 포착했다. 가격을 부풀리는 등의 방법으로 자금을 빼돌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검찰은 현재 CJ가 홍콩이나 버진아일랜드 등 해외에 설립한 특수목적법인 등을 통해 자금을 빼돌린 정황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자금을 빼돌렸는지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93개인 이 회장의 차명계좌로 주식거래를 해 부당이득을 챙겼는지에 대해서도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자사주를 매매하면서 자금을 챙겼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검찰이 CJ와 오너 일가에 혐의를 두고 있는 점은 소득세 탈세, 부당이득, 차명재산 규모와 편법 증여, 비자금 조성 등이다. 탈세 혐의로 시작한 수사 범위가 무한 확장되고 있는 것. 재계 고위 관계자는 “탈세는 보통 금융조세조사부에서 하는데 탈세 혐의만으로 금조부가 아닌 특수부에 배정하겠느냐”며 “출발부터 비자금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검찰이 특히 집중하고 있는 것은 해외 비자금 조성이다. 검찰은 버진아일랜드와 홍콩 등에 있는 페이퍼컴퍼니, 위장계열사들을 추적하고 있다. CJ그룹이 홍콩에 두고 있는 계열사는 모두 7개. 대한통운 물류유한공사, CJ GLS 홍콩법인, CJ차이나, CJ글로벌홀딩스, CGI홀딩스, CMI홀딩스, UVD엔터프라이즈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대한통운 물류유한공사와 CJ GLS 홍콩법인을 제외한 나머지 5곳의 주소가 모두 홍콩 완차이 지역 한 빌딩의 같은 층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검찰 수사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5개 계열사 중 ‘홀딩스’로 명명된 회사들이 페이퍼컴퍼니로서 CJ가 이 페이퍼컴퍼니들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CJ그룹 관계자는 “법인마다 사업 성격이 분명하다”며 강력 부인했다. 페이퍼컴퍼니라는 혐의에 대해서도 “엄연히 분명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페이퍼컴퍼니로 규정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현지에 관련 인력이 있는지에 대해 묻자 “확인하기 힘들다”며 “조세 회피를 위한 페이퍼컴퍼니가 아니라는 의미”라고 말을 바꿨다. 5개 회사가 같은 빌딩의 같은 층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홀딩스라는 회사 특성 때문”이라며 비자금 조성과 연관 짓는 것을 억울해 했다.
국세청과 관세청도 CJ를 겨냥하고 나섰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CJ푸드빌은 지난 4월부터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관세청도 CJ가 해외 고가 미술품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외화밀반출 혐의를 포착하고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CJ그룹으로서는 사업계획 등이 ‘올스톱’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9월 이재현 회장은 해외사업, 특히 중국사업에 대해 “성과가 없다”며 경영진을 강하게 질타한 후 CJ푸드빌, CJ CGV 등을 중심으로 중국을 비롯한 해외사업에 대대적인 투자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CJ의 해외사업 차질과 이 회장의 사법처리 가능성까지 점치고 있는 실정이다. 박중선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재현 회장이 사법처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CJ푸드빌이 매년 700억~1000억 원을 해외에 투자할 계획이었지만 비자금 의혹으로 투자가 지연되거나 취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박 연구원은 또 “비자금 의혹 속에 해외 투자를 공격적으로 할지도 의문”이라며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CJ그룹은 애써 태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CJ그룹 관계자는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소명할 것은 적극 소명할 것”이라며 “아직 혐의들만 갖고 몰아붙이지 말아 달라”고 전했다. 그러나 CJ그룹 본사와 직원들은 침통한 분위기다. 다른 대기업들 역시 검찰 수사가 곱게 넘어갈 것으로 보고 있지 않다. 앞의 재계 고위 관계자는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수 확보가 절실한 현 정권에서 CJ가 첫 번째 타깃이 됐다”며 “이를 계기로 다른 대기업에도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 아니겠느냐”고 관측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겁 없는’ 케이블방송 탓?
tvN ‘SNL 코리아’ 방송화면 캡처.
재계 관계자는 “꽤 설득력 있게 퍼지고 있는 소문”이라며 ‘설’을 전했다. 그러나 재계 다른 고위 인사는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소문이 사실이라면 CJ도 삼성의 아픈 부분을 많이 알 텐데 가만히 있겠느냐”며 의문을 품었다. 삼성그룹 관계자도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검찰이 국세청을 압수수색한 배경에도 소문이 스며들어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힘이 잔뜩 실린 국세청이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자료를 통해 검찰까지 견제하려 했다는 것. 이에 검찰이 선수를 친 것이라는 얘기다. 2008년 일을 이제 와서 압수수색 형식으로 자료를 입수했다는 사실도 그렇거니와 2008년 당시 국세청이 검찰에 고발도 하지 않은 채 세금 1700억 원을 받고 사건을 무마해줬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이유도 검찰의 ‘국세청 때리기’라는 것.
일각에서는 또 박근혜 정부가 재벌에 사인을 보내는 시범 케이스로 CJ를 타깃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당초 검찰이 내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H그룹과 또 다른 H그룹, 그리고 L그룹은 지금 시기에 부적절하다는 것. CJ그룹의 경우 유통업과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데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쥐락펴락하고 있어 파급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더욱이 CJ가 갖고 있는 케이블방송 채널 tvN의 일부 방송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것도 독이 됐다는 후문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