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 상인 상당수는 은행의 대출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일수를 쓰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재래시장.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비가 내리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곤 “오늘도 장사 공쳤다”며 삼삼오오 모여 술잔을 기울이던 상인들에게 기자의 등장은 그리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일수 쓰는 분을 찾고 있다는 말에 “안 쓰는 사람 찾는 게 더 어려울 것”이라고 답하던 그들에게서 비교적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채는 목돈을 빌린 뒤 매달 일정 금액의 이자를 더해 갚는 것을 말하지만 일수는 말 그대로 매일 원금 일부와 이자를 갚은 것을 뜻한다. 일수는 최소 10만 원부터 많아야 1000만 원까지 거래되는 탓에 목돈을 빌릴 능력이 되지 않는 영세 상인이나 유흥업소 여성들이 주로 이용한다.
서울 서대문구의 재래시장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 아무개 씨는 “장사를 위해서는 매일 새로운 반찬을 만들어야 하나 매출이 시원찮은 날에는 재료비도 마련하지 못한다. 이런 날이 반복되다 결국 일수를 썼는데 100만~200만 원씩 총 3곳을 이용하고 있다”며 “하루 일수만 14만 원씩 찍어야 하는 형편인데 장사로는 도저히 충당이 안 돼 야간 대리운전까지 하고 있다. 처음엔 장사를 하기 위해 일수를 썼는데 이젠 일수를 위해 장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잡한 이자계산법 때문에 섣불리 일수를 썼다가 고통에 시달린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김 씨가 건넨 일수 홍보전단지에는 ‘월 1%의 이자가 붙는다’는 설명과 함께 ‘도움을 드립니다. 힘들다 느끼실 때 전화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하지만 월 1%의 이자는 세상어디에도 없다는 게 경험자들의 말이었다.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또 다른 김 아무개 씨는 “500만 원을 빌리면서 하루 5만 5000원씩 100일을 갚은 조건으로 상담을 마쳤다. 하지만 막상 계약서를 작성하려고 하니 이자가 하루 이틀 밀려도 사정을 봐줄 테니 6만 원씩 상환하자고 하더라. 여기에 출장비 20만 원은 별도고 선이자, 공증, 수수료 명목으로 50만 원을 제했다. 결국 내 손에는 430만 원이 쥐어진 셈인데 100일 동안 갚은 돈은 600만 원에 달했다”고 말했다.
하루 5500원의 푼돈에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버린 경우도 있었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이 아무개 씨는 지난해 여름 화상사고를 입어 급전이 필요했다. 이 씨는 “매달 자릿세를 줘야 장사를 할 수 있는데 사고를 당해 2주 정도 돈을 벌지 못했다. 결국 일수를 통해 100만 원을 채워 넣었다. 주민등록등본, 인감, 가족증명서, 가족 연락처, 신분증까지 넘겨야 하는 게 찜찜하긴 했어도 매일 5500원씩 200일만 내면 된다기에 빌렸다. 하지만 상처가 깊어 장사 못하는 날이 길어지고 연체가 시작되자 일수업자들이 가족들까지 들볶기 시작했다. 끝내 딸은 집에서 나가버렸고 아내와 둘이서 아픈 몸을 끌고 나와 장사를 하며 돈을 갚고 있다”고 털어놨다.
일수의 특성상 매일 업자와 얼굴을 맞대야 하기 때문에 연체가 되면 엄청난 압박에 시달린다고 한다. 보통 일수 수금은 방문을 통해 이뤄진다. 계약서를 작성함과 동시에 손바닥 만한 일수종이를 주는데 돈을 갚을 때마다 업자가 도장을 찍어준다. 이를 정해진 날짜까지 찍으면 상환이 완료된 것. 꾸준히 거래를 맺어온 사람과는 온라인으로 돈을 받기도 한다. 채무자가 통장을 개설하고 체크카드를 만들어주면 업자가 그 카드를 통해 돈을 빼가는 형식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위험부담이 커 대부분 직접 수금을 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어쨌든 매일 방문수금을 당하는 채무자 입장에서는 업자가 달가울 리 없다. 앞서의 포장마차 주인 이 씨는 “그나마 배려를 해준다고 손님이 있을 때는 전화로 불러내 가게 밖에서 돈을 받아간다. 하지만 연체가 되면 이판사판이다. 돈 없으면 술을 내놓으라고 훼방을 놓고 손님들을 위협하기도 한다. 매일 자정 무렵에 돈을 받으러 오는데 그 시간만 다가오면 가슴이 먹먹하고 심장이 빨리 뛰어 칼도 못 잡는다”고 말했다.
일수에서도 보증인을 세우는 경우가 있는데 이로 인해 연쇄 고통을 당하는 이도 있다. 동대문구의 또 다른 포장마차 운영자 김 아무개 씨는 “아는 지인은 일수 보증을 섰다가 가게를 날렸다. 500만 원짜리 보증을 섰다는데 친구가 잘 갚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모양이더라. 그 뒷날부터 업자들이 지인을 찾아와 협박을 하더니 사무실에 끌려가기까지 했다. 장사도 못하게 만들면서 매일 이자는 늘어가고 끝내 가게를 팔아 빚을 갚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수 때문에 하루하루가 괴롭다는 이들도 “그래도 일수 없으면 살 수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서대문구 재래시장에서 만난 김 씨는 “장사를 하다보면 10만 원, 50만 원, 100만 원씩 급하게 필요할 때가 있다. 신용등급이 나쁘기도 하지만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면 복잡한 서류를 준비해야 하고 대기시간도 필요하지 않느냐. 하지만 일수는 전화 한 통이면 자금 융통이 가능하다. 먹고 살려면 쓸 수밖에 없다. 이런 서민들의 사정을 높으신 분들은 알려나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수금 못채워 일수 쓰는 일수쟁이도
일수는 목돈을 빌릴 수 없는 영세 상인들이 주로 이용한다. 드라마 <돈의 화신>의 한 장면.
이를 방지하고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업을 시작하기 전 다른 업자 밑에서 1~2년 동안 ‘일수쟁이’로 지내며 일을 배운다. 전단지를 뿌리는 일에서부터 상담, 대출, 수금까지 몸으로 부딪치며 터득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전시간은 주로 전단지 배포로 보내는데 영세 상인이 몰려있는 시장, 유흥업소가 몰려있는 골목,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지하철 등이 주요 활동 영역이다. 간간이 상담전화를 받고 직접 대출 적격 판단을 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노련미가 드러난다.
일수쟁이들도 나름의 진상손님을 골라내는 방법이 있다. 매출장부 작성 여부, 돈의 사용처, 구비서류의 상태, 말투, 복장 등을 총체적으로 보고 판단을 내린다.
서울 강남구에서 일수쟁이로 활동하고 있는 장 아무개 씨는 “가게 계약서 같은 서류가 지저분하면 이미 다른 일수업자에게 돈을 빌려봤다는 증거가 된다. 업자를 바꿨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거래가 좋게 끝나지 않았음을 뜻하기에 신중하게 판단한다. 또한 수수료, 이자와 상관없이 무조건 대출허가가 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사람들도 진상손님이 될 수 있는 여지가 높다”며 “일수를 사용하는 것을 꺼리고 우리를 경멸하듯 보는 이들이 오히려 돈을 꼬박꼬박 갚는 일등급 고객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나름 까다로운 조건을 통해 돈을 빌려줘도 수금이 완벽히 진행되지 않아 애를 먹는다. 작정을 하고 돈을 빌린 뒤 야반도주를 하는 악덕 채무자도 적지 않다. 고의적으로 일수쟁이의 심기를 건드려 불법채권추심을 유도해 경찰에 신고하는 채무자도 있다고 한다.
앞서의 장 씨는 “일수하는 사람 중에서 돈 안 떼먹힌 업자는 없다. 다른 사채에 비해 액수가 적다보니 일을 크게 만들지 않는 것일 뿐이다. 한번은 연체금을 받기 위해 가게로 찾아갔더니 여자 사장이 다짜고짜 옷을 벗으며 돈이 없으니 죽이라고 하더라. 이런 경우 잘못 휘말리면 불법채권추심은 물론이고 성추행으로도 잡혀갈 수 있어 우리도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당한 사건에 휘말려 돈을 떼이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아내 몰래 일수를 쓰면서까지 바람을 피우던 남편이 결국 꼬리가 잡혀 간통죄로 감옥살이를 하는 바람에 돈을 받지 못한 일화는 업계에서도 유명하다.
개중에는 악덕사장을 만나 ‘일수를 쓰는’ 일수쟁이가 되는 처지가 되기도 한다. 할당된 수금을 채우지 못하면 개인 돈으로 막아야만 하는데 당장 돈이 없으니 사장으로부터 일수를 써가며 갚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흘러가면 마치 유흥업소 여성들처럼 빚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올 수 없어 영원히 무보수 일꾼이 되고 만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발목 잡힌 스타들 ‘꼭두각시’ 노릇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채시장에서도 연예인들을 전문으로 하는 업자들이 생겨났다. 전문 브로커를 고용해 업자와 연예인을 연결시켜주는 방법이 보편적이며 주로 사채를 썼던 동료로부터 소개를 받는다고 한다.
연예인 사채의 또 다른 특징은 억 단위의 큰 금액이 오간다는 점이다. 일반인보다 씀씀이도 클뿐더러 대체로 도박이나 사업운영을 위해 사채를 쓰기 때문에 금액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자체계는 일반 사채와 비슷하다. 돈을 빌릴 때 수수료와 선이자 명목으로 10~15%가량을 제하고 빌려준 뒤 이를 되돌려 받을 때 또 한 번 원금의 10% 이상의 이자를 받아 챙기는 방식이다.
문제는 아무리 수입이 대단한 연예인이라도 워낙 거액의 금액이 오가는데다 고리로 사채를 쓰기에 돈을 갚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해당 연예인은 사채업자의 ‘종업원’이 되고 만다. 만약 돈을 빌려준 연예인에 대해 사채와 관련된 루머가 퍼지거나 물리적인 해를 가할 경우 오히려 돈을 회수할 방법이 없기에 ‘연예인 사용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채업자의 손아귀에 넘어간 연예인들은 원치 않는 각종 지방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채업자의 개인적인 스케줄에도 동행하며 돈벌이에 이용된다. 개인 소유의 고급차량이 분해돼 팔리는 일도 다반사며 사정이 악화되면 연예인 손길이 닿았던 칫솔, 옷, 가재도구까지 팬들에게 값비싼 가격에 팔려나가기도 한다.
스포츠선수도 연예인과 다를 바 없다. 연예인과 스포츠선수를 동시에 취급하는 사채업자나 스포츠선수만을 전문으로 상대하는 업자들이 있는 것. 스포츠선수들도 대부분 도박이나 개인품위 유지를 위해 사채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 역시 돈을 갚지 못하면 조직폭력배를 동원한 불법추심에 시달리기도 하는데 견디다 못해 승부조작에 가담하거나 각종 행사에 얼굴마담으로 출연하는 등 굴욕을 당하기도 한다.
성형사채도 여전히 암암리에서 행해지고 있다. 가진 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형을 꿈꾸는 이들에게 사채는 달콤한 유혹이다. 대체로 성형수술비와 함께 회복기간에 필요한 생활비까지 포함해 돈을 빌린다. 성형외과가 밀집돼 있는 서울 강남에서 주로 행해지며 제2, 3금융권도 있지만 신고하지 않은 불법 사채업자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보통 성형사채업자들은 직접 영업을 뛰지 않는다. 거래하는 몇몇 성형외과에서 돈이 부족한 환자들이 있다고 연락이 오면 그때 움직이거나 인터넷 광고를 통해 ‘손님’을 만난다. 상담을 통해 신용, 담보, 수입 등을 고려해 돈을 빌려주는데 보통 1000만 원 이상이 거래된다. 이자에는 병원 소개비까지 포함돼 있어 상당한 금액을 부담해야 한다.
성형사채를 이용하는 사람 중에는 유흥업소 종사자도 포함돼 있는데 이들은 얼굴이 중요 담보가 된다. 사채업자들이 직접 얼굴을 보고 대출금액을 책정하는데 성형수술 효과가 뛰어나겠다는 판단이 서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기도 한다. 자신을 실장이라 칭하는 사채업자 장 아무개 씨는 “딱 봐서 사이즈가 나오겠다 싶으면 원하는 대로 수술을 시켜준다. 성형을 받으면 상당기간 일을 할 수 없어 연체가 생기기 마련이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시키는 업소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업소에서는 늘 A급 아가씨가 부족하니 이런 방법도 생겨나는 것”이라며 “예쁘게 잘 키워서 (업소로)시집보내는 식”이라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