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이런 변수들은 해당 마필의 경주력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 많은 변수를 정확히 캐치하기는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많은 경마팬들은 자신만의 노하우로 몇몇 변수만 중점적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거기엔 다 그럴듯한 근거가 있다. 그런데 자신이 중시하는 변수에 너무 집착해 더 큰 변수를 놓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10여 년 이상 마사랑을 드나든 상당히 오래된 팬들도 이런 오류를 범하곤 한다. 이번 주에는 ‘경마변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지 말라’는 주제로 무시해도 좋을 변수와 꼭 체크해야 할 변수에 대해 알아본다.
지난달 25일 서울경마장 토요경마 마지막 경주에서는 인기순위 10위마인 ‘경희만세’가 일반의 예상을 깨고 기습선행 후 버티기에 성공, 2위를 차지하면서 배당을 터트렸다. 그동안의 경주편성에 비해 어떤 점이 달라졌기에 이 같은 이변이 가능했을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최근에 부진한 경희만세가 직전 경주 대비 부담중량(부중)도 비슷하고 선수도 다부진 김정준에 비해 오랜만에 경주로에 돌아온 부민호로 교체됐기 때문에 입상 가능성을 매우 낮게 평가했다. 하지만 이 마필에 주목한 전문가들도 더러 있었다. 이 말은 그동안 차분하게 선행이나 선입을 갔을 때 곧잘 입상을 했고, 특히 선행을 받아냈을 땐 딱 한번 실패했을 뿐 대부분의 경주에서 입상에 성공했다. 다소 결과론적인 얘기가 될 수도 있지만 이 경주마에게 가장 큰 변수는 선행 여부였던 셈이다.
이 경주에서 선행마는 최고탄생 한 마리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고탄생은 선행마이긴 하지만 그리 빠른 말이 아니었다. 선행을 잡은 뒤 차분하게 레이스를 이끌어 입상하는, 느린 유형의 선입형 선행마였다. 그에 비해 경희만세는 스타트 능력은 최소한 최고탄생 이상이었고, 이후 가속력은 최고탄생보다 분명 한수위였다. 맘만 먹으면 선행이 유력한 편성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경마의 변수는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결정적인 변수가 되기도 한다. 각자의 경마관이나 분석능력에 좌우되는 경향이 많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작은 변수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점이다. 지나치게 현미경을 갖다대고 들여다보면 좋은 결과를 얻기도 힘들다.
예컨대 55kg의 부중을 달고 2마신 정도 이긴 말이 다음 경주에서 57kg을 달고 나오면 산술적으로 1kg에 2.5마신을 곱해서 5마신 정도 늦게 결승선을 통과할 것으로 계산해 동일부중으로 출전한 상대마에게 이기기 힘들다고 판단하는 것은 지나치게 현미경 분석이다. 경주마는 대체로 자신이 짊어질 수 있는 한계치에 도달하기 전에는 경주력에 큰 변화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체중이 적게 나가는 암말일 경우 부중에 더 민감하다).
5월 25일 서울경마장에서 열린 마지막 경주에서 경희만세(원안)가 선행 후 버티기에 성공했다. 이날 비인기마였던 경희만세가 2위에 입상을 한 건 선두력이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다. 사진제공=KRA
출주주기가 한두 주 정도 늦춰진 경우에도 지나친 확대해석은 금물이다. 마방에 따라선 충분한 휴식을 주기 위해서 출주를 늦추기도 하고 또 출마투표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 별 의미가 없는 선수교체, 마방의 상금 여부, 선수 상호간의 친소관계, 선후배 관계 등에 얽매이는 분석도 작은 변수에 집착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상금을 많이 먹은 마방이나 마주가 월말에도 몰아치기를 하는 경우가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큰 변수는 어떤 것이 있을까. 지난달 26일 부경 3경주에서 입상에 실패한 인기마 윈드레토의 경우를 보자. 암말인 윈드레토는 직전에 편안하게 선행을 나선 뒤 우승을 차지했던 말이다. 느리게 전개를 하면서 중반에 힘 안배를 했음에도 끝걸음에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날은 부담중량이 무려 4kg이나 늘었고 선행도 불가능한 편성이었다. 마필상태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선입작전으로도 3착은 했지만 압도적인 인기에 걸맞은 성적은 아니었다. ▲선행 불가능(전개가 불리해짐) ▲부중 대폭 증가, 이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경주력을 떨어뜨렸던 것이다.
배당판의 인기도 중요한 변수다. 모든 경주에서 배당판을 다 읽을 수는 없지만 때로는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결정적인 정보가 함축돼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4~5개월 만에 출전한 휴양마를 보자. 예상지에는 입상후보로 이름을 올리지도 못한 말인데, 엄청난 예매가 실리면서 압도적인 인기마로 팔리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엔 배당판의 흐름에 편승하든지 자기가 본 마권을 꺾고 베팅을 포기하는 것이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다. 휴양마임에도 불구하고, 예상지들이 무시함에도 불구하고, 허접한 선수가 탔음에도 불구하고 배당판을 압도하고 있다면 이 마필은 복귀전을 위해 완벽한 준비를 마쳤다고 인정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법이다.
그밖에 주요 질병에 걸린 말이 훈련내용도 부실한 경우, 휴양마인데 훈련일수도 짧고 조교강도가 현저히 약한 경우, 능력형 기수가 쥐어짜내 겨우 입상한 마필이 부진형 기수로 바뀐 경우 등도 중요변수에 해당한다. 이런 경우는 거의 대부분 출전수당을 먹기 위해서 혹은 경주로 적응에 중점을 두고 출전했다고 봐도 크게 무리가 없다.
김시용 프리랜서
주말만 되면 경마장으로 향하는 골수팬들은 대부분 경주마 이름만 보고도 과거에 얼마 만큼 뛰었던 말인지 잘 기억해낸다. 경마는 ‘기억과의 싸움’이라 할 만큼 과거 경주능력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과거의 기억이 독이 될 때도 많다. 과거에 잘 뛰었던 기억이 머릿속에 자꾸만 어른거리고, 배당의 유혹에 못이겨 이런 말에 베팅을 하곤 한다. 그러나 이유없이 미련을 갖는 베팅이야말로 하수의 베팅이다. 간과해선 안되는 점은 과거의 능력이 곧 현재의 능력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에 잘 뛰었던 말이 최근 몇 개월 동안 부진했다면 분명 그 원인이 있을 것이고, 그 원인이 해소됐을 때에 비로소 과거의 능력을 현재의 능력으로 대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이 훈련내용을 살피고 현장에서 마필상태를 한번 더 확인하는 것이다.
직전 경주에서 진로가 막힌 말도 마찬가지다. 이런 말만 나오면 ‘묻지마 베팅’을 하는 것보다 진로가 막히지 않았다면 얼마만큼 더 뛸 수 있었을까를 분석하는 게 올바른 자세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그 경주에서 입상한 마필이 이 경주에 나오면 과연 될 수 있을지를 간접 비교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김시용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