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 | ||
일요일인 지난 21일, 청와대 이병완 홍보수석은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홍보수석실 비서관 회의를 하면서 (앞으로) <동아일보>의 취재에 일체 응하지 말라고 얘기했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특정언론사의 취재거부 의사를 표명한 것은 사상 유례없는 일. 청와대의 이 같은 결정은 <동아일보>가 지난 19일과 20일자에 대서특필한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의 부산 장백아파트 분양권 미등기 전매 의혹’ 관련 기사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었다.
이날 간담회 자리에 있던 <동아일보> 기자 두 명이 번갈아가며 질문을 던졌으나, 이 수석은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고 짧게 답변해 썰렁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동안 청와대가 언론의 오보에 대해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거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특정 언론사의 취재에 불응하겠다고 공식 천명한 것은 처음.
청와대의 <동아일보> 취재 거부 파문의 가장 큰 이유는 지난 5월 이미 <세계일보>에 보도됐던 내용을 다시 <동아일보>가 언급한 것은 다른 저의가 있다고 판단한 때문. 청와대측은 “권 여사는 아파트를 미등기 전매한 것이 아니라 97년 미분양 아파트의 분양권을 담보로 제공받은 것에 불과하다”라며 “장백건설은 권 여사에게 담보로 분양권을 제공했던 아파트를 99년 7월 다른 사람에게 판 뒤 99년 9월 토지 잔금 5천만원을 권 여사에게 지급했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권 여사의 아파트 미등기 전매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19일자 1면 머리와 3면 머리에 게재했다. 또 98년 노 대통령의 국회의원 재산 등록 때 이를 누락했다는 기사를 20일자 1면 중간에 실었다. 이에 대해 이병완 홍보수석은 “5월 말에 (<세계일보>에) 나왔던 기사를 표절하다시피 해서 똑같은 내용으로 (썼다)”며 “이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에 대한 저주와 적대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그는 “(노무현 대통령을) 대통령 떨어뜨리기에 실패한 데서 비롯된 적대감의 발로가 아니라면 대통령을 폄하해 상처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 동아일보 | ||
이 같은 청와대와 <동아일보>의 논쟁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언론계 안팎에서는 청-동 전쟁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됐던 일’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예전에 “과거 군사 독재 시절에는 <동아일보>를 좋아했다”고 호감을 표시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른바 ‘조중동’으로 불리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의 논조가 노 대통령의 ‘코드’와 맞지 않으면서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4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노무현 후보는 취중에 ‘메이저 신문 국유화’ ‘<동아일보> 폐간’을 발언했다”는 기사를 보도하자 노무현 후보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노 후보는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언론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청와대 기자실의 브리핑실 전환과 출입기자 등록제를 시작으로 전 부처에 개방형 브리핑제도를 확대하기로 하는 등 기존 언론시스템을 바꿨다. 그러자 보수성향의 신문들은 새 정부의 공보정책을 강도높게 비판하고 나섰고, 여기에 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언론 발언을 일부 신문이 호도한다”며 반박했다. 결국 노 대통령은 기존 언론을 상대로 ‘오보와의 전쟁’까지 선포했다.
이때부터 청와대와 <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과의 전쟁은 본격화했다. 청와대는 지난 4월6일 대통령직 인수위 기간 동안의 오보(誤報) 사례를 담은 <오보백서>를 배포했다. 백서에 실린 ‘문제 기사’는 <조선일보>가 10건이었으며, 다음으로 <동아일보>와 <문화일보>가 각각 8건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청와대와 <동아일보>의 신경전이 항상 청와대의 승리로 끝난 것은 아니다. 지난 5월에는 문재인 민정수석이 나라종금사건과 관련한 자신의 발언을 강도높게 비판한 6개 일간지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에 정정보도를 청구했으나 <동아일보>에 대해선 취하를 했다. “정정보도나 반론보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게 중재위의 결정 때문이었다.
청와대와 <동아일보> 사이에는 이후에도 껄끄러운 관계가 계속 유지됐다. 그러던 중 지난 7월16일자 <동아일보> 1면에 ‘굿모닝시티 윤창렬 대표로부터 거액의 로비자금을 받았다’며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 등 청와대 고위인사와 정치인들의 실명이 게재돼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에 문 실장을 즉각 <동아일보>를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 <동아일보>가 9월19일자 1면 머리로 ‘권양숙 여사 미등기전매 의혹’을 보도(위)한 데 이어 20일자 1면 중간에 ‘공직자 재산등록 때 이를 누락’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 ||
이후 청와대의 언론을 향한 ‘칼날’은 더욱 예리해졌다. 청와대는 “비판의 범위를 넘어 비방의 목적이 분명한 악의적 보도는 언론중재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언론중재위 청구와는 별도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8월11일)며 <동아일보> 등 4개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특히 <동아일보>의 경우 ‘대북송금 비자금에 연루된 김영완씨의 도난채권 사건 청와대 편법 처리’ 기사에 대해 양인석 사정비서관이 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던 것. 여기에 노 대통령은 지난 8월13일 자신과 자신의 형 건평씨의 재산과 관련된 의혹을 제기한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과 이를 보도한 <조선> <중앙> <동아> <한국> 등 4개사(각사별로 5억원씩)를 상대로 모두 30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본인 명의로 제기했다.
현직 대통령이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이로써 <동아일보>를 상대로 제기된 소송은 노 대통령(5억원)과 문희상 실장(10억원), 양인석 비서관(2억원) 등을 합쳐 모두 17억원에 달한다. 언론사 중에서 가장 많은 소송 액수가 청와대와 <동아일보>간에 걸려 있는 셈이다.
양측의 ‘앙숙 관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8월25일에도 청와대는 <동아일보> 7월10일자 ‘정부-청와대, 기업-노사정책 엇박자’라는 기사에 대해 문희상 비서실장 등의 명의로 서울지법에 반론보도 청구소송을 냈다. 그리고 지난 21일에는 급기야 <동아일보>의 취재에 대해서 일체 응하지 않기로 함으로써 양측은 극한 대결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이들의 대결이 어디까지 갈 것이며, 결말이 어떻게 될지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