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 10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동남아 4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 김포공항 귀빈실에 앉아있는 모습. 원 안은 쌍용그룹이 서울 중구 저동 쌍용양회공업(주) 창고에 보관해오다 96년 검찰에 의해 발각된 전 전 대통령 비자금 61억여 원. 일요신문 DB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전두환이 박정희 정권의 비자금 규모 전반을 확인하고 그것을 통째로 접수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전재국 씨의 페이퍼컴퍼니도 그 ‘시드머니’가 박정희 정권 비자금의 일부인지, 아니면 전두환의 통치 비자금인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 수법과 관리, 운용 등의 ‘노하우’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전두환 비자금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해 생각해볼 수 있다. ‘전임’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물려받은 ‘금고’와 자신의 재임 시절에 조성한 통치 비자금으로 나눌 수 있다.
전두환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갑자기 사망함에 따라 그 권력의 공백기를 갑자기 메울 수밖에 없었고, 박 전 대통령과 그의 부하들이 광범위하게 운영하던 ‘비자금’의 실체를 전부 파악한 뒤 그것을 고스란히 ‘접수’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운영했거나 중앙정보부 등을 통해 간접 관리했던 스위스 은행의 비밀계좌자금이다. ‘코리아게이트’로 불리며 한미 정가에 큰 파문을 일으켰던 박동선 로비 사건을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스위스 은행 비자금 실체 일부가 드러났다. 당시 박 씨는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19만 달러(현재 가치 100억 원 추정)를 받았다”라고 밝혔는데, 그때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이 그 송금 ‘주체’로 여겨질 만한 증언을 한 것이다. 특히 박 씨가 19만 달러를 받은 돈의 송금지가 스위스 취리히 소재 한 은행으로 돼 있었던 게 드러나면서 처음 박정희 정권의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는 그가 급서함에 따라 그 행방도 역사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전두환이 박정희 피격 사건을 수사하는 것을 명분으로 박정희 정권 차원의 전반적 비자금 실체와 규모를 확인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럼에도 그 비자금의 규모와 실체는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 뒤 전두환이 재판 과정에서 청와대에서 금고를 발견했는데 열어보니 9억 원이 들어있었고 그 가운데 6억 원을 유족인 박근혜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전두환이 청와대 금고 9억 원 실체를 밝히는 것으로 박정희 정권의 비자금 규모 일체를 ‘퉁 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전두환이 박정희 정권의 비자금을 자신의 통치자금으로 운용했는지, 아니면 주변 핵심들에게 일부 나누어준 뒤 자신의 주머니 속으로 넣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앞서의 스위스 은행 비자금의 경우 그 실체 규명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그가 재임 기간 조성한 통치 비자금은 그동안의 재판과 조사를 통해 어느 정도 그 실체가 드러난 바 있다. 전두환은 7년 재임 동안 재계로부터 9500억 원의 비자금을 거둬들인 것으로 파악된다(12·12 및 5·18 특별 수사 자료에 근거). 이 중 5774억 5000만 원을 정치자금으로 사용했고 검찰은 전체 비자금 가운데 43개 업체로부터 받은 2295억 5000만 원을 뇌물로 인정해 기소, 1997년 4월 대법원 확정 판결에 따라 2205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은 바 있다.
전두환 정권 때는 청와대의 명령을 받은 ‘기업조사팀’이 삼청동 뒷산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기관은 기업비리 조사를 구실로 비리 혐의가 있는 기업인들을 호출했는데 이 과정에서 비리를 약점으로 잡아 비자금을 받아내는 수법을 썼다고 한다. 당시 불려간 기업인들은 속으로 “돈을 불렀지, 나를 불렀겠어”라며 씁쓸해했다고 한다. 전두환 정권 말기 때는 본인이 아예 직접 나서서 모금을 하기도 했다. 집권 말기 전두환은 수시로 기업인들을 청와대로 초청했다고 한다. 재일 동포 기업인들도 불렀다. 기업인들은 의례적인 얘기가 끝난 뒤 조용히 ‘정산’을 하고 청와대를 나왔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재계에서는 “전 전 대통령은 돈을 적게 내거나 내지 않으면 국제그룹처럼 기업을 공중분해시켜버리는 위협적인 방법을 동원했기 때문에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돈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가 한창 나돌기도 했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지난 14대 대선 당시 “전 전 대통령에게 해마다 두 차례씩 20억~30억 원을 정치자금으로 헌납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런 행태에 대해 전두환은 지난 1996년 2월 재판에서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내가 돈을 받지 않으면 기업인들이 되레 불안을 느꼈다. 기업인들은 내게 정치자금을 냄으로써 정치 안정에 기여하는 보람을 느꼈을 것”이라는 일방적인 진술을 해 국민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전두환은 노태우 정권 시절 ‘이원조’라는 ‘중간책’이 비자금을 모금 관리하는 방식과는 달리 본인이 재벌들을 직접 상대하며 정치자금을 거뒀다고 한다. 그래서 씀씀이도 상당히 컸던 것으로 알려진다(박스 기사 참조).
전두환은 자신이 직접 정치자금을 받았기 때문에 스스로 자금을 관리하는 동시에 친인척과 최측근들에게도 나눠서 관리를 맡겼던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2004년 검찰은 전두환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장해석 김철기 손삼수의 금고지기 3인방 실체를 확인하기도 했다. 당시 그들은 비자금으로 여겨지는 자금 106억 원을 관리했다고 밝혀졌다. 검찰이 계좌추적 등을 통해 공식적으로 밝힌 액수만 100억 원대였기 때문에 그것보다 훨씬 많은 자금이 금고지기 등을 통해 관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차남 전재용 씨는 지난 2004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관리하던 채권 170억 원 가운데 73억 5000만 원이 전두환 비자금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구속되었다. 그리고 부인 이순자 여사의 동생인 처남 이창석 씨를 통해서도 비자금을 관리했다. 이 씨는 지난 2003년 11월 전 전 대통령 부부의 연희동 자택 중 일부인 별채가 법원 처분으로 경매에 넘어가자 자신이 감정평가액의 2배가 넘는 금액을 제시해 낙찰 받았다. 이후 이 씨는 아무런 재산권을 행사하지 않고 종전과 다름없이 전 전 대통령 부부를 그대로 거주하도록 했다. 이밖에도 이 씨는 주로 전두환의 소유로 의심되는 부동산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거액을 현금화 해 비자금을 관리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 씨의 부인 홍 아무개 씨는 ‘오공녀’ 또는 ‘공아줌마’로 불렸다고 하는데 5공 비자금 관련 채권을 명동 사채시장에서 현금으로 바꾸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해외 골프여행·거액 기부·통큰 세뱃돈…
12·12 및 5·18사건 선고공판 법정에 출두한 전두환 전 대통령.
빈곤한 전 전 대통령의 취미는 골프다. 돈은 없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골프를 즐긴다는 전두환은 지난 2006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주간에도 어김없이 골프장에 모습을 드러내 국민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최근까지도 그의 골프사랑은 식지 않고 있는데 지난해 8월에는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에 위치한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하고 수백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종업원들에게 수십만 원씩 팁을 건네고 양주파티까지 즐긴 것으로 밝혀져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골프여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전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면세 등의 각종 특권 행사가 가능한 외교관 여권을 사용해 해외를 돌아다녔다. 지난 2001년 12월 중국을 시작으로 이듬해 캄보디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4개국을 포함해 2007년까지 밝혀진 것만 해도 총 7차례 출국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록 추징금을 낼 돈은 없어도 ‘베푸는 삶’을 살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6월 전 전 대통령과 그의 부인 이순자 여사 등은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육사발전기금 200억 원 달성’ 기념행사에 초청됐다. 1000만 원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진 전 전 대통령은 500만 원 이상 기금 출연자 160명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 생도들의 퍼레이드를 감상하고 자리를 떠났다.
앞서 2005년 새해 첫날에도 전 전 대통령의 큰 씀씀이가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전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 및 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과 함께 서울 금천구의 한 보육원을 찾아 원생들로부터 세배를 받았다. 초·중등학생 15명이 시민단체의 주선으로 전직 대통령과 국회의장에게 세배를 한 것인데 이 자리에서 전두환은 전 재산의 세 배가 넘는 100만 원을 세뱃돈으로 내놓았다.
또한 전 전 대통령은 손녀의 초호화 결혼식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6월 손녀 수현 씨가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하객이 600여 명에 달했다. 전 전 대통령의 ‘사람들’도 대거 참석했음은 물론이다. 이후 결혼식 비용이 최소 1억 원이라는 얘기가 나오자 여전히 호화로운 삶을 살고 있는 전 전 대통령 및 가족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노태우에 대선자금 1500억 전달”
87년 6월 10일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노태우 대표의원이 전두환 대통령의 손을 잡고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의리의 돌쇠’라 불리는 전 경호실장 장세동 씨는 각종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해결사 노릇을 자처하며 수감생활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때마다 전 전 대통령은 장 씨에게 큰돈을 줬다. 대표적으로 1990년 일해재단 비리로 복역한 뒤 출소한 장 씨에게 전두환은 위로금 명목으로 18억 원을 건넸다. 이후 감옥에 장 씨가 들락거릴 때마다 전두환은 하사금을 줬고 이 금액이 총 30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장 씨의 뒤를 이어 경호실장 자리에 올랐던 안현태 씨도 전두환의 비자금 조성에 깊숙이 관여하며 상당한 ‘콩고물’을 받아먹은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이 전두환의 비자금을 추적하는 중 전두환이 1991년 8월 안 씨에게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라”며 10억 원을 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율곡비리 혐의로 구속됐던 이종구 전 국방부 장관도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거액의 금액을 받았음을 실토했다. 이 전 장관은 1993년 ‘율곡사업’ 관련해 7억 8000만 원의 뇌물수수 혐의로 고발되자 그중 7억 원은 장관직을 그만둘 때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전별금’ 명목으로 받은 돈이라고 해명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전 전 대통령의 ‘은혜’를 입은 사람 중 하나다. 1987년 전 전 대통령은 곧 있을 대선을 위해 대규모 선거자금 모으기에 돌입했다. 그렇게 모아진 돈은 약 2000억 원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1500억 원이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에게 전달됐다고 한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