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검사 프린세스>의 한 장면. 사진제공=SBS
발신인은 전부 익명이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논란의 중심에 선 장본인은 전직 검찰총장의 손녀 A 씨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로스쿨 출신 검사의 피의자 성추문 사건이 법조계에 큰 논란을 일으킨 바 있는데 임용 특혜 의혹까지 사실로 밝혀질 경우 로스쿨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추락할 수 있다. <일요신문>이 ‘로스쿨 출신 신임검사 임용 특혜 의혹’의 진상을 단독으로 추적했다.
지난해 법조계는 사상 처음 배출된 1기 로스쿨 출신 신임검사의 성추문 사건으로 큰 곤욕을 치렀다. 2012년 11월 한 새내기 검사가 검찰청사 집무실에서 여성 피의자와 성관계를 맺다가 발각된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던 것. ‘성추문’ 논란 당시 석동현 서울동부지검장, 오영근 한양대로스쿨 원장이 감독 소홀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는 등 법조계는 한바탕 큰 홍역을 치렀다. 그런데 이번엔 로스쿨 1기 출신 신임검사 임용 과정에서 전직 검찰총장 손녀의 특혜 임용 의혹이 제기되면서 또 다른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서울 소재 명문 로스쿨 1기 출신인 전직 검찰총장의 손녀 A 씨는 2012년 검찰이 처음 발탁한 로스쿨 출신 신임검사 42명에 당당히 그 이름을 올렸다. A 씨는 임용 당시 모교에서 작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2년 로스쿨 1기 검사 42명중 85.7%(36명)가 이른바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학부 출신이었다. 이에 반해 A 씨는 비 ‘SKY’ 학부 출신인 데다 ‘의사’, ‘회계사’와 같은 특출 난 자격증도 없었기 때문에 당시 A 씨가 몸담았던 로스쿨 내부에서도 A 씨의 신임 검사 임용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런 저간의 의혹에 대해 A 씨와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그의 대학동문 B 씨는 사석에서 “A 씨가 검사 된 과정을 알고 있다. 아무 일 없어야 하는데…”라며 ‘뭔가가 들통날까봐’ 걱정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반복했다. A 씨 검사 임용을 둘러싸고 말 못할 속사정이 있다는 암시였다. A 씨의 검사 임용 과정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법조계 한 관계자에 따르면 A 씨의 검사 임용을 둘러싼 여러 의혹들이 그의 임용 직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 내용은 △A 씨의 외조부가 검찰 고위 공직자라는 것 △A 씨의 부모와 고모부가 검사라는 것 △‘귀족형’ 검찰 가족이기 때문에 신임검사 채용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것 등이 주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요신문> 취재 결과 A 씨를 둘러싼 의혹의 일부분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A 씨의 외조부가 전직 검찰총장이라는 사실은 맞았지만, A 씨의 부모는 검사가 아닌 서울소재 대학병원의 교수인 것으로 확인됐다. A 씨의 고모부는 한 법무법인의 대표변호사로 활동 중이었다. 그러나 전직 검찰총장의 손녀라는 타이틀이 검사 임용에 있어 전혀 영향력을 끼치지 않았다고 확정짓기도 애매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A 씨와 함께 같은 로스쿨에서 수학한 지인들 중 다수가 그의 임용에 대해 ‘찜찜한 구석이 있다’는 식의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A 씨의 로스쿨 후배 C 씨는 “(A 씨에 대해) 심증은 있지만 확증이 없다. A 씨는 로스쿨 입학 초 때부터 ‘검사 한 자리쯤은 맡아놓았다. 공부 안 해도 손쉽게 갈 수 있을 것 같다’며 본인 스스로 항상 자신만만해 했다”고 말했다. 이어 C 씨는 “A 씨가 평소 동기들에게 ‘외조부가 검찰 최고위층이었다’고 자랑하면서 ‘나도 외조부처럼 검사가 될 것’이라는 말을 자주했다”며 “지난해 A 씨가 검사에 임용되자 고개를 갸우뚱하는 학우들이 많았다. 일부 애들은 외조부 ‘백’으로 들어갔을 거라고 거의 확신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대검찰청 전경.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그럼에도 법조계 주변에서는 이번 A 씨의 임용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을 보였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엘리트 의식이 강한 검찰은 상명하복을 중시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SKY’ 출신의 남자 지원자를 선호한다(2012년 검찰은 로스쿨 검사로 남성 29명, 여성 13명을 선발했다). 그런데 여자면서 비‘SKY’ 학부, 비 ‘SKY’ 로스쿨 출신에 별다른 경력, 자격증조차 없는 A 씨가 검사에 임용된 건 어떻게 보면 예외적인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며 의아함을 표했다.
검찰은 2012년 로스쿨 신임 검사 임용 당시 지원자들의 로스쿨 성적, 실무실습 평가, 전문 자격증 보유 및 관련 기관 근무 경력 등을 고려해 다각적인 평가를 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의 당초 예고대로 A 씨가 포함된 로스쿨 1기 검사들의 경우 의사, 약사, 변리사, 특허 보유자, 경찰간부, 법조기자 등 다채로운 경력자들이 대거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실제로 웬만한 ‘화려한’ 이력이 없으면 검사 임용 합격이 어려웠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서울지방변호사회의 한 관계자는 지난 5월경 사석에서 기자에게 “A 씨와 관련된 ‘투서’가 많이 온다. 검사 임용건과 관련된 투서가 변호사회로까지 전해질 정도면 사태가 꽤 심각하다는 것 아니겠는가. 검찰 쪽 인사 관련 일이다 보니 우리 측이 구체적인 액션을 취하긴 어렵겠지만 로스쿨 출신 특혜 채용과 관련한 모든 의혹에 대해 전반적으로 주시를 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런 의혹의 눈초리에 대해 당사자 A 씨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출신 로스쿨에서 (상위) 10% 안팎의 성적으로 졸업했다. 특히 검찰실무성적 및 검찰심화실습성적은 물론 서면심사와 면접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뒀기 때문에 검찰 신임 검사 임용에 합격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처음부터 검사가 되고 싶어 로스쿨에 입학해 거기에 맞춰 공부했다”고 해명했다.
또한 A 씨의 임용 특혜 의혹에 대해 전 법무부 인력 담당 출신 검찰 고위 관계자는 “검찰은 세간의 주목을 받는 공무원이다. 채용 과정은 언제나 투명하게 이뤄졌다. 더군다나 새 정권을 앞두고 검찰이 쓸데없이 ‘무모한’ 일을 벌일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강하게 반박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귀족’ 자녀엔 “합격 때까지 기다릴게”
“취업은 99%의 인맥과 1%의 성적으로 결정된다.” 우스갯소리로 여겨지던 법조계의 풍문이 기정사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귀족’ 로스쿨 출신 자제들의 유명 대형로펌 변호사 채용 과정을 지켜본 ‘평민’ 로스쿨생들의 박탈감이 커져가고 있다. 이른바 ‘SKY’ 출신과 출신성분이 좋은 ‘가족 가계도’가 주요 채용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일부 로스쿨생들의 주장이다. 2013년 국내 10대 대형로펌에 채용된 로스쿨생 중 SKY 출신이 전체의 72%를 차지했다. 채용 과정에서 스카이 출신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게 바로 ‘가족 가계도’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가 있는지 알아봤다.
# 전직 경찰청장의 따님은? 국내최대로펌 ‘김앤장’ 행
차명계좌 발언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가족들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 조현오 전 경찰청장. 최근엔 딸 조 아무개 씨(29)도 법조계 관계자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일을 겪었다. 의과대학 출신으로 서울대 로스쿨에 합격한 재원인 조 씨는 ‘SKY 출신’이라는 훈장 덕분인지 ‘든든한’ 아버지 덕분인지 모르지만 국내 명문 로펌 ‘김앤장’에 당당히 입성했다. 당시 조 씨의 김앤장 합격 소식에 일각에선 “변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하기도 전에 경찰청장의 따님을 ‘모셔갔다’”는 설이 파다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조 씨는 변호사시험의 턱을 넘지 못했다. 로펌엔 채용됐으나 정작 변시에선 떨어지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돼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몇몇 로스쿨 생들은 “사법연수원 최상위권만 지원할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한 김앤장이 경쟁률 1.13대 1인 변호사시험에 탈락한 조 씨를 채용했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며 사실상 대형로펌들이 ‘집안배경’을 고려해 ‘입도선매’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 ‘체면’ 놓은 대형로펌, “변호사시험 붙을 때까지 기다릴게”
국내 10대 대형로펌 중 한 로펌에선 로스쿨 출신 신입 변호사들을 선발한 후 ‘이상한’ 첫 소개를 해 화제가 됐다고 한다. 담당 ‘사수’가 로펌의 파트너급 변호사들의 방을 차례로 방문해 신입 변호사들을 소개하는 모습까진 자연스럽다. 문제는 소개 내용이다. “이 분은 OOO 의원님의 자제분이십니다”, “이 분은 OOO 판사님의 따님이십니다”는 식으로 ‘집안 배경’ 위주의 소개를 했다는 후문.
이를 지켜본 이 로펌의 한 변호사는 “귀한 집 자제만 뽑는 건 아니지만 그런 집 자제들을 우대하는 분위기인 건 확실하다. 실력 있는 로스쿨생들이 괜한 차별을 당할까봐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이 변호사의 주장처럼 실제로 국내 대형로펌 15위권 내에 소속된 J 법무법인과 W 법무법인은 자사가 지난해 채용한 로스쿨생이 나란히 변호사시험에 탈락했지만 “1년 후 시험에 꼭 합격해서 오라”며 합격을 유예시켜주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한 법무법인의 관계자는 “어느 로펌이 변호사시험에 떨어진 변호사를 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기다려주겠는가. 기다릴 만큼 ‘남모를’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라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서울지방변호사회 관계자는 “대형로펌의 ‘있는 집’ 자식을 입도선매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나 로펌도 사기업인 만큼 실리를 추구하는 곳이라 우리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노릇이다”라며 기존의 대형 로펌들이 귀족 자제들에게 ‘통 큰’ 제안을 하고 있는 실정을 일정 부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그러나 간과해선 안 될 것은 소수의 케이스가 로스쿨 전체를 반영하진 않는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