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역사왜곡대책위 회원들과 광주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6월 10일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부패재산 추징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추징금은 벌금과는 차이가 있다. 벌금이나 과태료는 어떠한 불법행위에 대한 형벌의 성격으로 부과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추징금은 범죄행위 또는 이로 인해 취득한 물건이나 대가로 얻은 물건의 전부 또는 일부가 소비됐거나 분실 기타의 이유로 몰수할 수 없게 된 경우 그 물건에 상당한 가액을 징수하는 것을 뜻한다.
집행에 있어서도 벌금을 내지 않으면 강제노역 등으로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를 수 있게 하지만 추징금은 그렇지 않다. 만약 재산을 은닉했다면 직접 그 증거를 찾아 강제 징수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추징금은 세금 등과 달리 시간이 흘러도 가산되지 않는 특징도 있다. 또한 3년이 지날 때까지 아무런 추징 소득이 없으면 시효가 만료돼 일명 ‘버티기’ 수법을 쓰는 이들이 적지 않다.
현재 고액 추징금 명단에 올라와 있는 13명도 ‘묻지마’ 버티기 작전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다. 법무법인 청호의 남오연 변호사는 “오래전에 추징금을 선고 받았더라도 3년 내에 일부 금액이 납부되면 자동으로 시효가 3년 연장된다. 또한 국가가 재산을 강제 집행에 들어갔을 때도 시효가 정지되는데 이를 반복하다 보니 10여 년 전의 추징금도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추징금 미납자 명단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꼽히는 이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다. 김 전 회장은 2005년 대우그룹의 분식회계 책임을 물어 전직 임원 7명과 함께 총 23조 358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분식회계뿐 아니라 사기대출 및 재산 국외도피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 전 회장은 2008년 특별사면을 받았으나 22조 9460억 원의 추징금은 여전히 쌓여있는 상태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 임준선 기자
그러나 김 전 회장의 차명재산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어쨌든 ‘돈 없는’ 김 전 회장은 현재 베트남에서 한국 청년들의 해외창업 강사로 변신해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며 지내고 있다.
김 전 회장을 제외하면 조 단위의 추징금을 미납한 사람은 없다. 그 다음 순위는 1962억 원의 추징금을 미납하고 있는 김종은 신아원 전 회장이다. 김 전 회장은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과 연대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1999년 김 전 회장은 최 전 회장이 국내 4개의 은행에서 대출받은 1억 8000만 달러(2359억 원, 당시 환율 1310원으로 계산) 가운데 1억 6000만 달러(2097억 원)를 미국으로 빼돌리는 과정에서 공모한 혐의로 추징금 1964억 원을 선고 받았다. 이어 법원은 2006년 공동 피의자인 최 전 회장과 함께 추징금을 내도록 했으나 현재까지 겨우 2억 원만 납부한 상태다.
서울중앙지검에 특별수사팀까지 꾸리게 만든 장본인인 전두환 전 대통령이 추징금 미납자 3위다. 전 전 대통령은 1996년 뇌물수수와 군 형법상 반란 등의 혐의로 기소돼 무기징역과 함께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재산을 차명으로 하는 바람에 막상 집행된 금액은 533억 원에 불과하다. 현재 그는 해외여행 등의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면서도 전 재산이 29만 원밖에 없다며 추징금 변제를 외면하고 있다.
이처럼 추징금 집행에 어려움을 겪자 검찰은 고액 벌금 및 추징금 미납자 증가에 대처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검찰청에 고액 벌과금 집행팀을 구성하고 일선청에 집중 행정반을 설치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그 결과에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정태수 부자 1·3위 ‘불명예’
정태수 전 한보 회장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누적 체납액을 기준으로 하면 금액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뿐더러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인물들이 줄줄이 나온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누적 체납액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다. 올해 91세인 정 전 회장은 1997년 이른바 ‘한보 비리’ 사태로 징역 15년을 선고받는 등 모두 5차례 징역형을 선고받은 화려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후 정 전 회장은 2002년 12월 31일 특별사면을 받고 출소해 재기를 노렸다. 그러나 세금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정 전 회장은 출소 직후부터 차명으로 보유한 재산을 현금화하려 했지만 번번이 국세청과 부딪쳤다. 지금까지 정 전 회장이 체납한 세금만도 2225억 원에 이르니 국세청도 단단히 그를 벼르고 있었던 것. 국세청은 무려 30년 동안 미등기 상태로 숨겨놓은 180억 상당의 부동산도 찾아내 등기촉탁을 위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한 정 전 회장의 삼남인 보근 씨도 644억 원의 세금 체납액을 기록해 누적 체납액 3위를 차지하고 있어 국세청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다.
정 전 회장의 뒤를 잇는 인물은 추징금 미납 명단에서도 이름을 올렸던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이다. 그는 종합소득세 등 1073억 원의 세금을 체납해 매년 고액 세금체납명단에 오르내리고 있다.
4위를 차지한 인물은 사상 최대의 다단계 사기극의 장본인 주수도 제이유개발 전 대표다. 그는 법인세 등 총 40건에 대한 세금 570억 원을 체납한 상태다. 주 씨가 제이유네트워크 회원 등 9만 명에게 다단계를 통해 1조 8400억 원의 부당이익을 취한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발톱의 때’만도 못한 수준이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1000억대 체납자도 있다
고액 추징금 체납 리스트에는 비단 유명인들만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톱3을 제외한 나머지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일반인이나 전직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들이 체납하고 있는 추징금액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
일반인 중에서는 딱 한 명이 유일하게 1000억 원대의 추징금을 체납하고 있다. 지난 2003년 관세법 위반으로 무려 1280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은 정 아무개 씨다. 정 씨는 추징금을 선고받은 이후 단 한 푼의 돈도 내지 않고 있다.
그 다음 순위인 김 아무개 씨는 지난 1999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농·축협 비리에 연루된 인물이다. 중소무역업체인 삼산을 운영했던 김 씨는 축협대출금과 회사 돈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로 2003년 추징금 967억 원을 선고 받았다. 당시 김 씨는 680억 원의 축협대출금 중 대부분을 부동산 매입 등으로 유용했으며 회사공금 97억 5000만 원으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생활비 등 개인용도로 횡령한 혐의를 받았다. 또한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도 돈을 빼돌려 총 967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고 지금까지 단 2억 원만 납부한 상태다.
7위와 8위를 기록한 인물은 공교롭게도 같은 범죄행위로 추징금 체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어마어마한 추징금인 만큼 범죄 스케일도 남달랐다. 그들이 택한 범죄는 금괴밀수. 먼저 단일 밀수사건 사상 최대의 추징금을 선고받은 박 아무개 씨는 630억 원어치의 금괴와 금화를 밀수입해 판매했다.
1996년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는 오스트레일리아산 금덩이를 밀수입 또는 수입해 팔면서 세금을 떼먹은 혐의 등으로 박 씨를 포함한 9명에게 각각 징역 5년에서 1년 6월과 함께 벌금과 추징금 1276억 원을 선고했다. 박 씨 등은 1994년 11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13차례에 걸쳐 홍콩에서 들여오는 은덩어리에 금을 숨기는 수법으로 금 1610㎏을 몰래 들여와 미국 등지에서 금화를 수입 판매했다. 이 과정에서 박 씨는 친척명의를 빌려 소규모 금은출입업체를 세워 과세특례 혜택으로 불법감세를 받다 결국 경찰에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또 다른 금괴밀수 사건을 일으킨 강 아무개 씨는 1214㎏의 금괴(시가 548억 원)를 밀수출하거나 하려 한 혐의(관세법위반 등)로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강 씨는 공범 3명과 함께 조직적으로 금괴밀수에 나섰다. 이들은 2010년 2월부터 11월 초까지 서울 종로에 있는 금은방에서 암거래로 대거 금괴를 사들여 부산과 일본을 오가는 여객선 선원을 통해 밀수출을 시도했다. 선원들에게 금괴를 숨길 수 있는 특수제작 조끼를 입혀 1명당 24㎏씩을 옮기게끔 했다.
강 씨 일당은 일본이 ㎏당 금괴의 가격이 한국보다 300만 원가량 비싸다는 점을 악용해 상당한 시세차익을 얻었다. 그러나 일본으로 금괴가 밀수출 된다는 첩보를 받은 부산경남본부세관 단속팀이 현장에서 그들을 검거하며 범죄의 막을 내렸다. 결국 밀수총책을 맡았던 강 씨는 2011년 1월 31일 부산지법 형사5부로부터 징역 2년 6월과 벌금 548억 원, 추징금 537억 원을 선고받고 여전히 복역이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아들에게 추징금 875억 남기고 떠나
그러나 박 씨의 수감생활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1978년 1월 간암 등으로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되더니 또 한 번 사기본능을 발휘한 것. 당시 치료를 위해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한 박 씨는 유령회사를 설립해 수 개의 금융기관에서 2억 1000만 원을 부정 대출 받기에 이른다. 또한 1981년에는 1억 원 상당의 타인 대출금을 빼돌린 것이 밝혀져 이듬해 2월 재수감됐다.
2001년 9월 박 씨는 총 22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고 출소한 직후 ‘피날레 사기극’ 펼쳤다. 이번엔 두 아들도 함께였다. 박 씨는 미국에서 고가의 아가리쿠스 버섯을 수입해 가공 후 역수출하면 투자액의 5% 이상을 수익금으로 돌려준다며 돈을 뜯어냈다. 박 씨는 추가로 투자받은 돈을 먼저 투자한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1000억원 상당을 손에 쥐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로 박 씨의 사기극은 들통 났고 2005년 9월 또 다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돼 징역 7년에 추징금 1183억 원이 선고됐다. 당시 71세의 나이로 고령이었던 그는 결국 2007월 7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이름으로 875억 원의 추징금이 남은 채였다.
현재 그 추징금은 공범으로 나란히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박 씨의 아들(3남)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으나 여전히 갚지 않고 있어 박 씨의 아들이 매년 고액 추징금 체납자 톱10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