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장마철엔 앞선에서 뛰는 선행형 질주습성을 가진 말들이 유리하다는 게 불변의 진리로 통한다. 물기를 먹은 모래 위를 달리기 때문에 말이 덜 지치고 스피드도 더 나온다는 게 그 첫째 이유고, 두 번째는 앞에서 뛰는 말은 흙탕물을 뒤집어쓰지 않는다. 앞에서 뛰는 말이 지치지 않으니 뒤에서 뛰는 말이 추월하기도 그만큼 힘들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일요신문 경마팀이 지지난해와 지난해 장마철에 포화·불량주로에서 뛴 경주마들의 입상유형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이론은 실전에서도 적용이 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최단거리인 1000미터 경주는 분석에서 제외했음). 다만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이 기간에 포화·불량 주로에서 입상한 총 420두의 마필 중 선행은 101두(24%), 선입은 175두(41%), 중간에서 따라오다 추월한 마필은 102두(24%), 후미에서 따라오다 입상한 마필은 26두(6%), 꼴찌로 따라오다 역전한 마필은 9두(2%), 후미에서 따라오다 중간에 강력한 추월을 시도한 무빙은 7두(1%)였다. 앞선이나 최소한 중간에는 붙을 수 있는 마필의 점유율이 91%인데 반해 스타트가 느린 말은 거의 입상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장마철 입상마는 일반주로에 비해 선행의 경우 2%포인트 정도, 선입은 4%포인트 정도 더 높았고, 중간은 2%포인트 정도 낮았다. 앞선이 유리하고 중간에서 흙탕물을 맞고 따라가는 말이 불리하다는 베팅이론이 그대로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장마철엔 외곽주행 입상도 평소보다는 조금 높게 나타났다. 인코스에서 뛰는 말보다 외곽주행을 하는 말들이 흙탕물을 덜 맞게 되고, 체력소모도 평소보다는 적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불량주로 선행마 입상률이 일반주로에 비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선수(기수)들의 적극적인 대처가 차이를 좁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경마전문가 이병주 씨는 “주로가 물기를 먹으면 앞서 가는 말이 유리하다는 것은 선수들이 더 잘 안다. 그동안 따라가던 말들도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몰아주기 때문에 선두경쟁이 치열해지는데, 간혹 선행마가 더 불리한 상황도 연출된다”며 “선행마에 대한 맹신보다는 선두력에서 확실한 우세를 보일 수 있는 말을 골라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마전문가 신성훈 씨도 비슷한 의견을 밝혔다. “장마철에 선행마가 유리하다는 통설은 어디까지나 전체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실전에서 개개 경주에 대입할 때는 매 경주를 꼼꼼히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선행마를 꺾고 베팅할 줄도 알아야 고배당의 행운을 잡을 수 있다”고 전했다.
김시용 프리랜서
오버페이스하다 ‘자멸’
KNN배 대상경주에서 우승터치(점선 원)가 선행작전을 펼치다 체력이 떨어져 마지막 직선주로에서 뒤처지고 있다. 이날 우승터치는 5위를 했다. 사진제공=KRA
서울과 부경의 교차경주로 치러진 이 경주는 최근 들어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우승터치의 우세가 예상됐다. 직전 경주에서 이번 경주와 똑 같은 거리를 뛰면서 폭발적인 스피드와 끈기를 보여줬고 막판에 라이벌을 기어이 이겨내는 근성까지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우승터치는 데뷔초와는 달리 지난해부터는 선입으로 계속 승승장구해왔기 때문에 선두싸움에 말릴 걱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경주에서 우승터치는 발주 직후 채찍을 대면서 뛰쳐나왔다. 선입작전을 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은 것이다. 그 결과 서울의 도주마 초원의별과 시종 경합을 벌였다. 그렇지만 이 같은 작전은 당일 경주로 상태에 비쳐보면 자멸에 가까운 경주작전이었다. 경주로가 건조(수분함량 3%)해 말밥굽이 모래에 푹푹 빠지는 상황이었다.
우승터치는 종반 한때 2위권을 멀찌감치 따돌리며 기세를 떨쳤지만 초중반에 무리하며 체력 소모를 한 후유증 탓에 덜미를 잡혔고 결승선을 통과할 때는 5위였다. 초원의별은 이 경주에서 능력부진 판정을 받았다. 초중반 스피드 자체만 놓고 보면 평소보다 조금 빠른 정도였지만 주로상태를 감안하면 상당히 무리했던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최근 큰 경주에선 매번 반복되는 현상이다. 지난 5월 19일 코리안더비(GⅠ)에서도 초중반에 중후미에서 따라갔던 스피디퍼스트와 운해가 동반입상을 했고, KRA 컵 마일(GⅡ) 경주에서도 중간에 따라가던 스팅레이가 우승하고 라온보스가 준우승을 차지했다. 최근 들어 선행마가 대상경주에서 우승한 경우는 벌마의꿈(국제신문배)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예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벌마의꿈은 출주두수가 몇 두 안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그렇다면 대상경주에선 선행마가 입상하는 경우를 왜 보기 힘들까. 대상경주는 초반부터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한다. 때문에 앞선에서 뛰는 말들은 평소보다 압박을 많이 받으며 오버페이스를 할 가능성이 그 만큼 높아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병주 씨도 “당대불패와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선행마가 아니라면 대상경주에선 선행마의 입상 가능성을 평소보다 낮춰잡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시용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