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전두환 불법자금 환수 특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지난 20일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미납추징금 납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상민 인턴기자
정치권에서는 전 전 대통령이 비자금의 일부를 아들들의 사업체 운영 시드머니로 썼을 뿐 아직 쟁여놓은 검은 돈이 도처에 깔려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전 전 대통령이 비자금을 은닉하는 과정에서 친인척뿐 아니라 군대 재직시절부터 알고 지낸 부하들까지 동원해 은닉 또는 돈 세탁 창구로 이용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전두환 비자금의 은닉 수법과 돈 세탁 방법 등을 추적, 추징금 환수의 실마리를 찾아보았다.
1997년 4월 전두환 전 대통령은 대법원으로부터 검찰 수사결과에서 밝혀진 비자금 및 은닉재산 2205억 원을 국가에 환수하라는 추징금 납부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막상 추징금을 징수하려고 보니 전 전 대통령의 수중에는 남아있는 돈이 거의 없었다. 검찰은 강제집행을 통해서라도 추징금을 환수하려 했으나 무기명채권 일부를 현금화하고 전 전 대통령이 보유하고 있던 예금 및 현금 환수 등을 통해 겨우 310억 원가량을 추징하는 데 그쳤다. 이후 16년 동안 찔끔찔끔 추징금이 보태져 겨우 533억여 원만 거뒀을 뿐이다.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가 이토록 더디게 진행되는 이유는 그의 완벽한 ‘재산 숨기기’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재산을 차명으로 소유하거나 이미 증여를 통해 자식들에게 물려준 상황이라 검찰도 역부족인 것. 특히 전 전 대통령은 주로 무기명채권을 통해 비자금을 관리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이는 사고 판 사람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아 자금의 흐름을 추적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지난 1995년 전두환 비자금 재판과정에서 ‘전 전 대통령이 1993년 8월 명의신탁을 금지하는 금융실명제 실시를 앞두고 소유하고 있던 채권을 대거 현금화한 정황이 포착됐다’는 검찰 조사가 나온 바 있다. 전 전 대통령이 1993년을 전후해 큰 규모의 비자금을 현금화시킨 뒤 그것을 또 다시 차명계좌로 은닉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그 뒤 전 전 대통령은 추징금 회수 선고를 받게 되지만 미리 손을 쓴 덕분에 지금까지 추징금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 뒤 한동안 전두환 비자금 이야기는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2004년 전재용 조세탈루혐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전두환 비자금은 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특히 전 전 대통령은 아들 재용 씨의 검찰 수사 직전에 비자금을 또 다시 현금화시켜 은닉시킨 정황이 최근 <일요신문>이 입수한 한 제보자의 증언에 의해 그 정황이 드러났다.
제보자 A 씨는 “최근 <일요신문>의 전두환 비자금 특집기사를 읽은 뒤 생각나는 게 있어서 전화를 걸었다”며 10여 년 전 당시 자신이 들었던 전두환 비자금 실체의 토막 하나를 전해주었다. 이 증언은 A 씨가 직접 비자금을 관리했던 인사로부터 들은 얘기가 아니고 간접적으로 입수한 것이라 다소 허술할 수는 있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은닉과 돈 세탁 실상을 밝히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소개해 본다.
우선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돈은 경기도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일하고 있던 직원의 통장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A 씨는 이에 대해 “그 직원은 부동산중개업을 배우고 싶다며 제 발로 찾아와 수개월째 근무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나이는 많았으나 아는 게 없다며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긴히 말씀드릴 게 있다며 상담을 요청하더라. 그렇게 털어놓은 그의 고민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전재용 씨가 2007년 6월 서울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28억 원을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A 씨는 또한 “그 직원은 돈이 입금된다는 사실을 사전에 전해 듣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전두환이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사자에게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고 자신의 비자금을 숨기려했다는 것은 어떤 급박한 사정이 있었던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또한 그는 “직원 말로는 자신이 예편한 뒤 전두환과는 거의 왕래가 없었다고 했다. 이후 직원과 연락이 끊겨 뒷일은 어떻게 됐는지 들은 바가 없다”며 “다만 그 일이 있고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전재용 비자금 사건’이 터진 것을 보고 무언가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다”고 말했다.
<일요신문>은 A 씨의 증언을 검증하기 위해 당사자와 그 얘기를 들었던 또 다른 지인을 백방으로 수소문해 보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이 비자금 의혹을 들은 또 다른 당사자 한 명이 자살을 했다는 사실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
A 씨의 증언은 두 가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먼저 전 전 대통령이 금융실명제와 검찰 수사 등 비자금 관리와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이 터지기 직전에 비자금을 현금화 또는 돈 세탁한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전 전 대통령이 1993년 금융실명제 실시를 앞두고 1차 비자금 세탁을 했다는 것은 지난 1995년 검찰 수사 과정에서 그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그 뒤 <일요신문>이 입수한 제보를 통해 2004년 아들 재용씨 검찰 수사를 앞두고 전 전 대통령이 2차 비자금 세탁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관리 스타일이다. 지금까지는 친인척 등 믿을 만한 측근들을 통해 은밀하게 비자금을 관리했다고 알려져 왔는데, <일요신문>이 입수한 증언이 맞다면 옛날 군대 재직 시절부터 알고 지낸 부하와 그 가족 등 자신도 잘 모르는 광범위한 범위의 사람들까지 동원해 비자금을 관리, 돈세탁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두환 비자금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재국 재용 씨 등 아들과 친인척 중심이 아니라 군대시절부터 알고 지낸 부하와 지인 등으로 그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과도 연결이 된다.
한편 앞서의 A 씨의 말대로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움직이고 몇 개월 뒤 갑작스레 차남 전재용 씨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됐다. 2003년 7월 검찰이 현대그룹의 비자금과 관련한 내사를 진행하다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130여억 원을 발견했는데 그 과정에서 우연히 ‘전재용’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온 것. 검찰은 돈세탁을 담당했던 사채업자 장 아무개 씨를 통해 “전재용 씨로부터 돈세탁을 의뢰받았다”는 증언을 확보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탄력을 받은 검찰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까지 캐내려 압박을 가했다. 이듬해 자택 압수수색 얘기까지 흘러나올 정도로 수사가 진행됐는데 그러자 전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순자 씨가 나서 “130억 원은 알토란같은 내 돈”이라며 눈물의 증언을 한 뒤 도의적인 책임을 지는 의미에서 추징금을 대납하며 사건은 급 마무리 됐다.
또한 최근에야 밝혀진 사실로 2004년 전재용 씨의 구속으로 한창 집안이 시끄러울 때 전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장남 전재국 씨 역시 긴박한 움직임을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전재국 씨는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비밀계좌까지 개설한 것.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지자 전재국 씨는 “유학 당시 남은 자금을 관리하기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고 해명했으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아무도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1995년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을 수사했던 김용철 변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전두환은 대부분 무기명채권으로 비자금을 관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현금화시키면 당연히 차명계좌를 쓰지 않겠느냐. 금융실명제가 실시됐다고는 하나 차명거래에 대한 처벌근거가 미약해 정·재계에서 차명계좌를 통한 비자금 은닉은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금융기관 수뇌까지 움직여
온갖 방법으로 교묘하게 비자금을 숨겨둔 전두환 전 대통령은 차명 사용도 서슴지 않았다. 차명을 통해 채권을 거래하거나 계좌를 개설해 현금화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비자금을 형성했다.
전 전 대통령의 차명 이용수법을 살펴보면 대체로 ‘믿을 만한 사람’을 고르는 작업부터 시작됐다. 그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은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과 군대 후배들까지 동원해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에 이르는 돈을 관리했다.
지난 1996년 4월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공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에서도 차명거래가 이슈로 거론됐다. 먼저 지목된 인물은 5공화국 당시 청와대 재무관이었던 손삼수 씨. 손 씨는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직후인 1993년 10월 장모 김인애 씨, 형 손진수 씨, 형수 이수자 씨 등의 명의로 총 21억 원어치의 산업금융채권을 현금화한 뒤 전 전 대통령에게 건넨 사실이 밝혀졌다.
이밖에도 전 전 대통령은 1995년 10월 장해석 전 청와대 비서관에게 12억 원을 건네며 5년 만기 장기신용채권 12매를 사오도록 지시했다. 장 전 비서관은 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관리를 맡았던 인물이다. 이후 이 채권은 전 전 대통령의 가족들이 다시 현금화해 고스란히 그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전 전 대통령의 차명 대상자는 친인척도 빠지지 않는다. 한때 ‘봐주기 수사’로 논란을 일으켰던 전 전 대통령의 조카 조일천 씨도 1996년 검찰의 수사를 받으며 차명과 관련한 내용을 진술했다. 조 씨는 검찰 조사에서 “동서 이 아무개 씨와 그의 아버지, 처형 곽 아무개 씨 등 처가 쪽의 리스트를 작성해 연희동 비서실에 건네줬다”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의 차명거래를 위해 금융기관의 우두머리가 움직인 경우도 있었다. 삼성증권 명동지점, 산업증권 명동지점 등 여러 금융기관이 전 전 대통령을 위해 차명계좌를 개설해준 것이다. 당시 상사의 지시로 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를 개설했던 직원들의 진술이 이를 뒷받침했다. 대표적으로 1998년 삼성증권 명동지점장인 허근 씨는 국두파이낸스 유병국 사장에게 차명계좌를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고 이에 유 사장은 직원 3명을 동원해 차명계좌를 만들었다.
문제는 차명거래로 검찰의 수사를 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고 풀려났다는 점이다. 이는 금융실명제의 허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금융실명제는 차명거래를 금하고 있으나 마땅한 처벌규정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차명계좌를 만들어준 금융기관도 고작 과태료를 부과하는 수준의 처벌밖에 받지 않는다. 더욱이 차명계좌를 만든 사람에 대해서는 처벌을 할 수도 없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형성에 상당한 기여를 한 인물들도 법의 심판을 교묘히 빠져나갔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