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
그나저나 박지성 선수가 없고, 박주영 구자철 기성용 선수가 빠진 한국축구는 왜 저렇게 단조롭고 재미가 없을까.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빛나는 타이틀이 저리도 빛바랠 수 있나싶게 맥이 빠진다.
최강희의 에이스 이동국 선수는 무엇인가에 쫓기는 것 같았다. 하긴 그 부담감을 누가 제대로 이해한다고 하겠는가. 누구보다도 빛났던 그가 2002년 월드컵 때 뛰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가 짐작으로라도 알았을까. 그때 나는 이동국 선수가 들어가지 못한 일이 못내 아쉬웠었다. 그리고 매번 월드컵 때마다 이래저래 빠지는 그의 불운을 지켜본 팬으로서 이번에는 그가 기를 펴기를 기원했었다. 그런데 그의 무대는 시원하지 않았다. 언제나 반발 늦는 듯한 느낌! 아마도 골을 넣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너무나 커 그라운드를 편히 누비지 못한 것 같았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부담감 혹은 부담감에서 오는 의욕 과잉은 좋은 징조가 아니지만 그 터널을 경험해보지 않는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 터널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면 이번에는 다시 의욕상실의 늪에 빠진다. 슬럼프 혹은 의욕상실일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나는 소위 ‘생산적’이라는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럴 때 나는 평소에는 시간이 많이 걸려 만들기 힘든 요리를 떠올리고, 나를 위한 성찬을 차린다. 의욕 상실인데 무슨 힘이 있어 밥상을 차릴 생각을 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희한하다. 일단 운동화를 신고 숲에 들어 걷기 시작하면 꽃이 보이고, 물소리가 들리고, 나물들이 보인다. 요즘은 비름나물이 좋다. 그것을 한 끼 먹을 양만 뜯어와 삶아서 간장 넣고 참기름 넣고 무치기도 하고, 무쇠 솥에 밥을 짓기도 한다. 친구들을 불러 함께 도란도란 얘기하며 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나는 의욕 상실이 무섭지만은 않다.
반대로 의욕 과잉일 때는 무엇보다도 내 스스로 알아채는 데 시간이 걸린다. 무엇보다도 ‘의욕’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의욕이 과잉이라는 사실을 언제 인정하는가. 내게 의욕과잉의 증거는 자꾸 부딪치는 것, 부딪쳐서 일이 잘 안 되고, 관계가 헝클어지는 것이다.
잘해보려고 노력하고 노력하다가도 안 되는 일과 사람에 대해서는 나는 손을 놓는 편이다. 손을 놓게 되기까지 마음은 분명히 다쳤다. 나는 내 마음의 상처를 인정하고 내 스스로 내 마음을 위로해 준다. 요즘 내가 하는 방법은 천천히 절을 하는 것이지만, 사람마다 자기에 맞는 명상법이 있고 단련법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방법을 하나둘쯤 익혀두는 것은 ‘나’를 위해 좋은 살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역시 천천히 산책을 하면서 찬찬히 내 마음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그러다 보면 나는 다시 낙천적인 생활인으로 돌아와 있다. 모든 꽃은 흔들리면서 핀다는 말은 분명한 진리다. 나는 조그만 바람에도 잘 흔들리지만 그래도 나는 안다. 그러면서 중심을 잃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나는 그런 내가 좋다.
수원대 교수 이주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