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 QPR의 선수 박지성도 훌륭했지만, 재단 이사장의 신분으로 해외에서 자선경기를 치르는 박지성은 더 훌륭했다. 지금까지 베트남, 태국에 이어 이번 중국 상해까지 세 차례에 걸쳐 ‘아시안 드림컵’을 개최하면서 막강한 인맥과 친분을 과시한 박지성. 초청된 선수 명단만 살펴봐도 국가대표팀급 선수들과 최고의 인기 스타들로 구성돼 있어 그 경기를 위해 노력한 박지성의 열정이 짐작되고도 남았다. 무엇보다 축구선수로만 한정했을 경우 현지인들의 관심이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을 한류스타들로 풍성하게 채웠다는 점에서 박지성은 현명했다.
자선경기를 앞두고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박지성과 인터뷰를 가졌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박지성에게 축구 외적인 질문을 많이 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박지성이 미소를 지으며 “글쎄요?”라고 답한다. 박지성과 여러 차례 인터뷰를 했지만, 처음부터 여자, 아니 여자친구에 대해 대놓고 질문을 한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색다르고 신선했다.
-열애를 인정한 기자회견을 했다. 이제 좀 홀가분한 편인가.
“홀가분해지고 싶어서 공식적으로 발표를 한 것이다. 가족들의 비밀 아닌 비밀이 공개되면서 잠시 당황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알려질 일이라면 내 입으로 모든 걸 다 설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이전 인터뷰 때 했던 얘기가 기억에 남는다. 만약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면 결혼 전까지 공개하지 않고 비밀리에 만나겠다고 했던 말이….
“사실 사진이 찍히고의 여부를 떠나 19일 장학금 전달식이 있던 날, 간단하게 좋은 사람과 교제 중이라는 사실을 밝히려 했었다. 하루만 늦게 터졌어도 계획대로 되는 건데…(웃음). 왜 밝히려 했느냐 하면 곧 노출될 것 같은 감이 왔었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 이런 저런 얘기가 많이 들렸다. 김사랑 씨와의 결혼설이 나돌다가 아니라고 부인하니까 이쪽(김민지 아나운서)으로 그 소문이 옮겨 가는 것 같아서 서둘러 발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이 먼저 공개된 것이다.”
-그 사진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오갔다. 박지성도 이렇게 평범한 데이트를 할 수 있구나 싶은 마음이라고나 할까. 아줌마인 나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미혼 여성들은 오죽하겠나.
“언론에 노출된 박지성은 뭔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겠지만, 실생활의 나는 일반 남성들과 비슷한 면이 많다. 단 조금 꼼꼼하고 치밀하고 매사에 조심스러워한다는 거? 이런 부분 빼놓으면 나도 좋은 사람 만나서 데이트하며 행복해 하고 그 행복에 감사하고 그런 삶을 보낸다.”
-그 기자회견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평소 인터뷰하던 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유머러스하고 재미있게 진행된 것 같았다.
“아무래도 축구선수로서만이 아닌 한 여자와 교제 중인 남자로서 나선 자리라 편하게 들렸는지도 모른다. 축구 얘기만 하면 내용이 딱딱해질 수밖에 없는데 사적인 부분에 대한 질문을 주고 받다보니 예상보다 재미있었다는 얘기가 많이 들리더라.”
-그동안 숱한 열애설의 주인공이었지만 정작 열애를 고백한 기자회견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 이색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혹시 인터넷 유머로 화제를 모았던 ‘박지성과 결혼할 여자의 25가지 조건’이라는 글을 읽어봤나?
“그런 글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남자 박지성에 대해 관심을 가진 분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웃음). 지금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거 외에는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열애 당사자보다 주위 분들이 더 감격(?)해 하시는 것 같다(웃음). 내가 평생 혼자 살 거라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마음에 드는 여성을 만나기는 쉽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여자를 평생 사랑할 줄 아는 의리는 있다.”
-얼굴이 알려진 만큼 데이트하기가 녹록치 않았을 것 같다.
“정말로 의식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놓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일부러 피하고 숨어 다니지 않았다. 만약 들키는 걸 염려했더라면 차에서만 데이트하지, 사진에 찍힌 것처럼 공원 의자에 앉아 DMB를 시청했겠나.”
-두 사람을 청담동 ‘퀸즈파크’에서 봤다는 제보도 있었다. 그 얘기를 듣고 퀸즈파크레인저스 소속 선수가 ‘퀸즈파크’에서 식사를 했다는 사실이 정말 재미있었다.
“맞다. 그곳에 간 적이 있었다. 우리를 보신 분한테서 들었겠지만, 주위 사람들 의식하지 않고 식사하고 차 마시고 그랬다.”
-이제 축구 얘기를 해보자. 이번 K리그 올스타전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고 하던데, 무슨 얘기인가.
“관중이 너무 적어서 깜짝 놀랐다. 대표팀 경기로 인한 영향도 있었겠지만 K리그만의 팬층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스타전은 팬들이 흥미를 가
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많은 사람을 경기장으로 불러 모을 수 있을지를 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작년 올스타전과 비교해서 너무 적은 관중들을 보고 이게 K리그의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축구도 팬들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는 깨달음도 있었다.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선 경기장으로 팬들을 불러 모으기가 힘들다고 본다.”
-대표팀 복귀에 대해선 여전히 관심이 뜨겁다. 이렇게 오랫동안 대표팀 복귀를 바라는 여론이 형성되는 부분에 대해서 부담스럽지 않나.
“대표팀에도 분명 자신의 몫을 다하는 훌륭한 선수가 많은데 왜 나에 대해 그런 생각을 갖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오랫동안 대표팀에서 활약했고, 축구뿐만 아니라 스포츠 전반에 걸쳐 많은 관심을 받은 선수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 대표팀 복귀로 이어지는 듯하다. 박지성이란 선수를 조금은 더 자주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만이라도 박지성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팬들이 많다.
“지금은 대표팀 복귀보다 내 거취를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대표팀 복귀는 내 계획에 존재하지 않는 그림이다.”
-혹시 K리그에서 뛰는 걸 한 번 이상은 생각해 본 적이 있나.
“당연히 생각해봤다. 두 번 이상도 생각해 봤다(웃음).”
-결론은?
“그렇게 생각만 하고 말았다.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운 부분이니까. 여전히 내 마음은 유럽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쪽이다. 아직까지도 유럽에서 뛰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개인적인 생각을 얘기해도 되겠나. 이전까지만 해도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에 대해선 부정적이었다.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줘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번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전을 지켜보면서 대표팀의 구심점 역할을 해줘야 할 선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선수가 바로 박지성이었다.
“물론 어떤 마음으로 하시는 얘기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맨유의 박지성이 아니다. 맨유 박지성일 때처럼 큰 파워를 갖고 있지는 않다고 본다.”
-그게 무슨 말인가. 맨유 때의 박지성과 QPR의 박지성이 다르다는 소린가.
“분위기가 다르지 않은가. 그리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선수들의 마인드도 다를 것이다. 프리미어리그 빅클럽에서 뛰는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를 받아들이는 대표팀 선수들의 분위기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팬들도 맨유의 박지성을 더 좋아한다. 맨유 박지성일 때 힘이 더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본인은? 본인도 그런 생각을 하나.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클럽의 크기와 규모가 다르다보니 제3자는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서 A매치 경기가 벌어질 때 상대팀 선수들 중 프리미어리그나 프리메라리가의 빅클럽에서 활약 중인 선수가 포함돼 있다면 시선과 관심 자체가 달라지지 않나. 난 그런 의미에서 한 얘기이다.”
-QPR에서 보낸 한 시즌이 참으로 길고 힘들게 보였다. 팀도 강등 위기에 처해 있다 결국 2부리그로 떨어졌다.
“QPR이 2부로 떨어지는데 일조한 선수 중 한 명이다. 나뿐만 아니라 팀의 모든 선수가 (강등에)일조했다고 생각한다. 나도 책임져야 하고, 다른 선수들도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QPR에서 벤치만 달군 시간이 많다고 하는데, 제대로 따져보면 경기 수에 있어선 큰 차이가 없다. 아마도 전 시즌에 비해 5경기 정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당연히 더 뛰고 싶었지만, 정말 경기를 못 뛰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나한테는 좋지 않은 시즌이었음은 분명하다.”
-퍼거슨 감독이 은퇴했다. 7년을 함께 했던 스승이라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그렇게 빨리 은퇴하실 줄 몰랐다. 깜짝 놀랐다. 퍼거슨 감독님 밑에서 참으로 좋은 경험들을 많이 했었다. 박지성이라는 축구선수를 한 단계 더 성장시켜주신 분이라 마음속으로는 항상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감독님의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했다는 부분은 다소 아쉽지만, 감독님과 함께 하지 못한 선수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내가 꼭 그 자리에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따로 전화로 인사는 드렸나?
“아뇨(웃음).”
-한국에 올 때마다 박지성 재단과 관련된 일들로 분주히 보낸다. 올해도 JS 파운데이션 재능 학생 후원금 전달식과 아시안 드림컵을 개최했다.
“그런데 이런 일을 벌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좋은 일도 정말 하기가 어려운 거구나’ 하는…. 모든 일들이 그렇지만 이런 자선행사도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더라. 일을 잘 벌려야 한다. 너무 크게 벌리면 안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웃음). 하지만 힘든 만큼 보람은 크다. 그동안 이런 일을 하는 선수가 없었고, 한국의 축구선수가 외국에서 자선행사를 통해 그 나라에 도움을 주려 한다는 것을 알린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아시안 드림컵‘에는 한류스타들이 참석하고 있는데, 그로 인해 축구보다는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 더 큰 게 아니냐 하는 지적도 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나도 처음에는 연예인들을 배제하고 축구선수들로만 자선 경기를 펼치려 했는데, 관중 동원과 관심을 모으는 부분에 있어서 부족한 점이 많았다. 결국 오랜 협의 끝에 연예인 분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 특히 ‘런닝맨’ 팀들한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 자선대회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내가 현역 선수로 뛰고 있을 때까지만 하려고 결심했고, 현역 선수일 때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은퇴하고 나면 이런 규모의 자선 경기는 할 수 없다고 본다. 은퇴 후에는 다른 형태의 자선대회를 열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질문이다. 다음 시즌에도 QPR 유니폼을 입은 박지성을 보는 건가.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은 정해진 게 하나도 없다. 이적 시장이 8월 말까지라 좀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QPR에 남을 수도 있다. 어차피 계약기간이 내년까지라 이적 조건이 맞지 않는다면 팀에 잔류해야 하지 않겠나. 일단은 QPR에서 열심히 해야 한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