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정희자 부부가 자신의 옛 회사로부터 생활비와 품위유지비 등을 받아썼다는 주장이 나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전 회장은 현재 22조 원대의 막대한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당시 베스트리드사는 김 전 회장의 부인 정희자 씨가 회장을 맡고 있었다. 경주힐튼호텔과 아트선재미술관을 운영하던 베스트리드사는 호텔 관광업과 부동산 임대업을 주로 하던 대우그룹 계열사 ‘(주)대우개발’의 후신이었다. 대우개발은 1999년 대우그룹 사태 후 상호가 ‘필코리아리미티드’로 바뀌었다가 2007년 베스트리드리미티드사로 다시 바뀌게 된다. 대우개발 시절부터 회장직을 역임했던 정 씨는 상호가 바뀐 회사에서도 계속해서 회장직을 역임하고 있었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들어갈 당시 베스트리드사의 지분 구조는 김 전 회장의 차명 주식 90.42%, 정 씨의 보유 주식 9.58%로 사실상 부부가 회사 발행 주식의 100%를 보유한 지배주주였다. 검찰은 이중 김 전 회장의 차명 주식 90.42%를 압류하고 한국자산관리공사에 공매대행을 의뢰하게 된다. 공매 시장에 나온 베스트리드사는 몇 차례의 유찰을 거듭한 끝에 2012년 9월 부산 소재 중견 수산업체인 (주)우양수산(현 우양산업개발)에 낙찰금 922억 원에 인수된다.
우양수산은 베스트리드사를 인수한 후 상호를 ‘우양산업개발’로 변경했다. 그리고 인수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지난 6월 21일 정희자 씨와 김 전 회장을 향해 소송전을 개시한다. 우양산업개발은 “정 씨가 지난 10여 년 동안 회사 경영을 하지 않으면서 회장 호칭을 사용하고 고액의 보수와 퇴직금 등을 받아갔다”며 “보수와 퇴직금, 법인카드 결제대금 등 ‘34억 5500여만 원’의 부당이득금을 반환하라”고 주장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인 정희자 씨. 일요신문DB
우양산업개발 측은 정희자 씨가 경영에 손을 놓은 시점을 사실상 1999년 대우사태 이후로 보고 있다. 당시 해외 도피 중이던 김 전 회장과 함께 상당 기간을 해외에서 체류하느라 회사에 거의 출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정 씨는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김 전 회장을 보살피고 있다는 설이 파다했다. 지난 2001년에는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골프장에서 김 전 회장과 정 씨가 함께 있다는 목격담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우양산업개발 측이 주장하는 요지는 김 전 회장 부부의 회사 ‘사유화’ 문제다. 정 씨의 경우 경영을 하지 않았음에도 매년 억대에 달하는 연봉을 받는 한편, 사적인 업무를 보는 개인 비서들의 연봉까지도 회사 돈으로 지불하는 등 실질적으로 회사를 개인 금고처럼 사용했다는 것이다. 앞서의 관계자는 “회사 내 정 씨를 위한 팀이 따로 존재했는데 그게 바로 ‘직영영업팀’이었다. 이 팀을 위한 비용 역시 회사 돈으로 지불됐다”고 전했다.
직영영업팀은 정 씨의 일정 관리를 맡는 개인 비서, 운전사, 청소 및 가사 도우미 등 총 5명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이들은 회사 업무와 관계없이 오로지 정 씨 개인 업무만을 위해 움직였는데 심지어 정 씨의 개인 물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법인카드까지 발급해줬다는 게 우양산업개발 측의 설명이다. 이렇게 발급된 법인카드는 상당 부분 ‘항공권 구입’에 쓰였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이 그동안 주로 해외를 떠돌아 다녔다는 점을 감안하면 막대한 항공비가 필요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우양산업개발은 “정 씨뿐 아니라 본인을 수행하는 개인 비서의 항공권까지 법인 카드로 결제했는데 심한 경우에는 한번에 1740만 원에 달하는 항공권을 결제할 정도로 거리낌 없이 법인카드를 사용했다”라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의 경우에는 서울 힐튼호텔 23층에 위치한 펜트하우스의 청소 도우미 보수를 회사 돈으로 지급했다는 의혹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우양산업개발은 “(김 전 회장이) 펜트하우스를 24년간 연 12만 원에 장기임차하면서 청소 도우미 보수 2억 2500여만 원을 회사 돈으로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힐튼호텔 펜트하우스는 대우그룹이 잘나가던 시절 김 전 회장이 애용했던 사무실로, 한때 ‘헐값 임대료 논란’이 불거지며 여론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는 김 전 회장이 해외에 거주함에 따라 사실상 방치되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우양산업개발은 “김우중 전 회장이 힐튼호텔 23층 펜트하우스의 청소 도우미 보수 2억 2500여 만 원도 회사 돈으로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일요신문DB
이렇게 우양산업개발이 계산한 김 전 회장 부부의 총 부당 이익금은 34억 5500여 만 원. 우선적으로 검찰의 베스트리드사 주식 압류 이후인 2008년부터 인수가 완료된 2012년까지 계산한 금액이다. 정 씨가 1994년부터 회장직을 역임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부당 이익금의 액수는 몇 배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앞서의 회사 관계자는 “정 씨는 2012년 회사가 넘어갈 것이 예상되자 공매 2주 전 곧바로 사임서를 제출해 퇴직금 14억여 원을 받아가기도 했다”며 “여러 정황을 봐도 회사에 끼친 손해가 막심하다”라고 전했다.
결국 이번 소송의 쟁점은 그동안 회장으로 재직한 정 씨가 경영에 참여했는지에 대한 여부로 좁혀지는 듯하다. 우양산업개발 측 변호사는 “인수하기 전에 벌어진 일이라도 정당하지 않게 취득한 부당 이익금과 관련해선 시효가 지나지 않는 이상 회사에게 반환할 의무가 있다”며 “정 씨의 경영과 관련해서는 검토 중”이라며 앞으로의 공방을 지켜보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소송으로 김 전 회장 부부는 도덕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만약 우양산업개발 측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게 될 경우 “회사를 사금고로 썼다”는 것과 실제로는 일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월급만 받아 챙긴 비양심적 행태에 대한 비판이 일 수 있다. 특히 현재 김 전 회장은 ‘장부상’ 빈털터리이기 때문에 22조 원대의 천문학적인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고 있는 상황인데 물밑에서는 자신의 옛 회사를 통해 생활비와 품위유지비를 매달 받아쓰고 있었다는 얘기도 된다. 국가가 추징한 벌과금에 대해 ‘10원이라도 있으면 갚아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면 그동안 ‘다른 주머니’를 차고 해외를 마음대로 다니지는 못했을 것이란 점에서 이번 소송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호텔업 진출한 이유 아리송
우양산업개발이 베스트리드사를 인수함에 따라 아도니스CC(원안) 등 골프장사업에도 진출하게 됐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하지만 우양수산의 조영준 이사(현 우양산업개발 대표)는 그런 소문을 강하게 부인했다. 당시 조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김우중 전 회장은 물론 정희자 여사, 가족들과도 일면식이 없다”며 “이번 투자와 대우그룹 간 관련성은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대우그룹 출신 관계자 역시 우양수산과 대우그룹과의 친분설을 부인했다. 조 대표는 지분투자, 공매 등의 경험이 많은 투자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우양수산은 조 대표의 부친인 조효식 씨가 창업한 회사다. 항해사 출신인 조효식 씨는 부산,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우양수산을 어업 및 냉동, 냉장 보관업, 석유 유통업을 하는 중견 기업으로 키워냈다. 이후 우양수산은 공매 시장에 나온 베스트리드사를 눈여겨 본 끝에 그것이 유찰을 거듭해 가격이 1000억 원대 아래로 떨어지자 인수를 결정하게 된다.
우양산업개발은 베스트리드사를 인수함에 따라 골프레저 사업에도 진출하게 된다. 베스트리드사가 경기도 포천의 아도니스골프장, 경남 양산에 위치한 에이원컨트리클럽 등의 지주회사이기 때문이다. 조 대표 역시 “골프장 사업 등에 관심을 갖고 있어 투자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도니스골프장과 에이원컨트리클럽은 김 전 회장의 차남 김선협 씨가 대주주로 경영을 한 바 있으며, 현재까지도 정희자 씨와 선협 씨, 셋째 아들 선용 씨도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우양산업개발 관계자는 “세간에 대우그룹과의 친분설이 많았지만 사실무근”이라며 “창업자인 조효식 회장도 대우그룹과의 친분은 없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우양산업개발이 김 전 회장과 친분관계가 전혀 없기 때문에 김 전 회장 부부의 도덕적 부분까지 건드리면서 공개적인 소송을 진행할 수 있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