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회장은 현재 베트남에 머물며 한국 청년들에게 비즈니스 실무를 가르치고 있지만 사업 재기 의사는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은 2009년 김수환 추기경 장례식 조문 모습. 연합뉴스
김우중 전 회장에게는 ‘실패한 경영자’라는 주홍글씨 말고도 고액의 추징금 및 세금 체납자라는 빨간 딱지도 붙어 있다. 이는 그의 국내 복귀를 가로막는 결정적 장애물이 되고 있다. 김 전 회장의 미납 추징금 규모는 곧 우리나라 전체 미납 추징금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검찰이 발표한 국내 총 미납 추징금 규모는 27조 4496억 원에 달하는데 그중 김 전 회장의 몫이 22조 9560억 원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금액은 전체 미납액의 96.9%에 달한다.
이토록 천문학적인 추징금을 선고받은 데는 대우그룹 사태의 여파가 가장 컸다. 지난 2006년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의 40조원 대의 분식회계 책임으로 전직 임원 7명과 함께 총 23조 358억 원의 추징을 선고받았다. 동시에 사기대출 및 재산 국외도피 등의 혐의로 징역형까지 선고받았으나 2008년 특별사면을 통해 자유의 몸이 됐다. 하지만 22조 9460억 원의 추징금에 대한 면죄부는 받지 못했다.
문제는 여느 추징금 미납자처럼 김 전 회장도 “돈이 없다”며 무조건 버티기 작전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 말 대우그룹이 위기에 처했을 당시 김 전 회장은 자발적으로 모든 사유재산을 담보로 내놓았다고 하는데 이를 빌미로 “재산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어 천문학적인 추징금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김 전 회장은 검찰의 추징금 환수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김 전 회장은 자신이 차명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었던 베스트리드리미티드의 공매대금이 잘못 분배됐다며 한국자산관리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검찰이 압류한 베스트리드리미티드의 주식 공매 절차가 완료되어 923억 원의 돈이 환수되자 한국자산관리공사는 이를 김 전 회장의 추징금을 납부하는 용도로 사용했는데, 김 전 회장이 “추징금보다 내가 세금을 먼저 집행해야 한다”며 제동을 건 것이다. 김 전 회장은 “형벌로 받은 추징금은 공과금에 해당해 연체료가 없지만 국세는 체납하면 돈을 더 내야 한다. 따라서 추징금보다 국세에 돈이 우선 배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김 전 회장은 세금을 제때 내지 않을 경우 매년 35억 원에 이르는 가산금이 붙는 상황이기에 소송을 걸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대우그룹 사태 이후 김 전 회장은 갖가지 소송에 몸살을 앓았다. 형이 확정돼 징역살이까지 했던 ‘분식회계에 근거한 대출사기’, ‘영국에 위치한 대우의 해외비밀계좌(BFC) 운영’ 등의 형사소송 외에도 수차례에 달하는 굵직한 민사소송도 감내해야 했다. 지난 2000년 대우의 소액주주 352명이 “대우전자 분식회계에 따른 주가하락에 대해 손해배상을 하라”며 제기한 소송이 대표적이다. 당시 대법원은 김 전 회장을 포함한 대우전자 임직원 14명에게 “소액주주에게 57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밖에도 김 전 회장은 2004년 우리은행이 제기한 대우자동차 사기대출 피해 손해배상 소송에 패소해 “우리은행에게 60억 8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현재 김 전 회장은 베트남으로 건너가 베트남 하노이 사범대학에서 한국 청년들을 대상으로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2년부터 김 전 회장이 운영하는 ‘글로벌 청년사업가 프로그램’(YBM)은 30여 명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1년 동안 비즈니스 실무를 가르치는 방식으로 현재 2기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은 그곳에서 ‘멘토’ 역할을 자임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1기가 모두 취업이 잘 돼 반응이 매우 좋다”며 “최근 건강도 상당히 좋아진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김 전 회장은 베트남에서 딱히 다른 사업을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섬에 따라 대우 출신 인사들이 정치권 요직에 진출해 조심스레 경영 재기 가능성도 제기됐으나(백기승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은 오랫동안 사비를 털어 김우중 전 회장의 대변인 역할을 한 바 있다), 현재로서는 사업 재기 의사는 없다는 게 김 전 회장 측의 설명이다. 김 전 회장이 베트남에 머무는 이유는 대우에 대한 인식이 베트남에서 여전히 좋다는 점과 김 전 회장 본인이 베트남의 발전 가능성을 높이 본다는 게 가장 크다고 한다.
한편 김 전 회장의 재산은 앞서 말했듯 공식적으로는 ‘전무’하다. 김 전 회장은 2008년 차명재산의 일부가 드러나 “숨겨놓은 자산이 더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일자 “더 이상 (세금 및 추징금을) 납부할 돈도 없다. 숨겨놓은 재산이 있다는 시각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히기도 했다. 해외에서 체류하는 김 전 회장의 생활 자금 출처는 현재 비밀에 싸여 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정 회장’으로 불린 그룹 또 다른 리더
정희자 회장이 2005년 출국하는 모습. 이종현 기자
하지만 정 씨는 힐튼호텔을 2년 만에 흑자로 돌리는 성과로 경영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중국 연변 대우호텔과 하노이 대우호텔을 차례로 세우며 호텔 경영에서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정 씨는 1999년 대우사태가 터지자 남편인 김 전 회장이 도피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베스트리드리미티드 회장을 역임하고 여러 골프장을 운영하는 등으로 건재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골프장 부지 일부가 대우 출신 임원 명의로 된 점을 들어 “김 전 회장의 측근들이 정 여사를 보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현재 정 씨는 서울 종로에 위치한 아트선재센터의 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중이다. 정 씨의 한 측근 인사는 “정 씨는 현재 외국에 가 있는 중이다. 사업 때문에 가끔 국내와 해외를 오고 가곤 한다”며 “최근 건강이 상당히 안 좋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