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희 감독은 대표팀에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못해 출정식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며 많이 아쉬워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주위에선 휴식을 취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는데, 지금 전북현대(정규리그 7위)가 처한 상황을 보면 내가 쉴 수가 없다. 아무리 관심을 끄고 쉬려고 해도 무너진 팀 전력을 보니까 한숨만 나와 못 본 척하기가 어려웠다. 지난 1년 6개월간 대표팀에서 진한 희로애락을 맛봤다. 아픔도 있었지만 그걸 경험으로 삼고 이젠 K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 솔직히 걱정보다는 기분 좋은 설렘이 더 크다.”
―대표팀에서 보낸 시간들을 정리해보자. 1년 6개월이 최 감독한테는 어떤 사연으로 남게 되나.
“한마디로 압축하면 나 같은 불행한 감독은 더 이상 나오지 말아야 한다. 최종예선전 막판에 그런 형편없는 경기력을 선보인 데 대해 굳이 핑계를 대자면 시한부 감독의 한계였다. 대표팀 감독 부임 초반 쿠웨이트전에서 벼랑 끝 승부를 펼치다 카타르, 레바논전에서 2연승을 내달리며 내 자신이 방심했고 애절함이 없어진 것 같다. 그러다보니 선수들에게 모든 걸 맡기게 되었고…. 레바논 원정 경기에서 이겨야만 했던 경기를 지독한 골대 불운을 겪으며 비기고 돌아와서는 내 자신도 모르게 조급해졌던 모양이다. 선수들과 잦은 미팅을 하고, 칠판에 그림을 그리게 되고, 잔소리를 하게 되었고…. 최강희 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서 대표팀이 무 너졌다. 그래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그게 가장 아쉽고 또 아쉽다.”
“나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월드컵 본선 진출 후에는 소속팀으로 돌아갈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당시 대표팀 성적이 좋으니까 여론은 물론 팬들까지 내가 브라질에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어떤 기자는 ‘국민들이 원한다면? 전북 팬들이 감독님 브라질 갔다 오시라고 부탁한다면?’이라고 물으면서 압력을 가했다. 난 그래도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겪으면서 나도 모르게 애절함이 없어진 것 같다.”
―대표팀 감독으로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무엇이었나.
“경기 내용이나 전술적인 모양새는 등한시하고 오로지 결과만 놓고 평가하는 게 힘들었다. 그런 환경을 어쩌지 못하고 받아들였고, 나 또한 한 골 승부나 결과에 집착하게 되면서 내가 원하는 축구를 하지 못했다. 난 원래 선수들에게 잔소리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선수들을 믿고 기다릴 줄 아는 지도자였다. 그런데 대표팀에서의 최강희는 결과에 조급해 하고, 그 결과를 내기 위해 선수들을 닦달하는 형편없는 지도자였다. 축구에 대한 자존심과 철학이 무너졌다. 이란전 때는 정말 참담했다.”
―이란전 전후로 상대팀 감독이었던 케이로스 감독의 비신사적인 도발이 화제를 모았다.
“만약 내가 젊은 나이였다면 그 감독과 제대로 맞장을 떴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그 감독이 불쌍해 보였다. 레알마드리드, 맨체스터유나이티드, 포르투갈, 남아공 대표팀 등 세계적인 팀을 이끌었던 지도자가 왜 저렇게 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까? 혹시 그 사람은 내가 갖지 못했던 간절함, 애절함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의 행동은 불쌍했지만, 그의 승부욕은 내가 갖지 못한 부분이었다고 본다.”
2014 브라질월드컵 최종 예선 한국과 이란의 경기에서 최강희 감독이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코 그 자리가 편하지 않았다. 그 경기 내용은 내가 원하는 시나리오랑 완전 반대되는 상황으로 진행됐다. 난 롱볼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이드에서 찬스 만들어서 경합할 수 있게 크로스를 올리라고 주문하지만, 선수들도 급한 마음에 자꾸 뻥 축구를 한 셈이다. 내가 가장 안타깝고 속상했던 것은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현장에서 초상집 분위기를 연출한 부분이다. 기분 좋게 승리한 이후에는 출정식을 통해 그동안 고생한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고, 대표팀을 응원해준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려 했다. 그런데 0:1 패배로 끝나면서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됐고, 출정식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정말 마음이 쓰라렸다.”
―기성용, 구자철을 발탁하지 않은 데 대해 말들이 많았다.
“레바논전을 앞두고 엔트리를 정할 때 기성용과 구자철은 팀에서 부상으로 4주 이상 경기를 뛰지 못하고 있었다. 보통 대회 보름 전에 공문을 보내야 하는데 부상 중인 선수를 어떻게 뽑을 수 있겠나. 우즈벡전이 끝나고 이란전을 앞두고서 그 선수들을 부르지 않은 이유 또한 휴가를 맞아 잘 쉬고 있는 선수에게 일주일 만에 몸 만들어서 대표팀에 들어오라는 얘기가 말이 되는 소리인가. 두 선수를 뽑지 않은 게 아니라 뽑지 못했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레바논전 이후부터 대표팀과 관련해서 다양한 소문들이 나돌았다. 이미 듣고 있었을 텐데….
“만약 누군가가 나한테 차기 감독으로 누굴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난 축구전문가라고 하시는 ○○○ 씨를 추천했을 것이다. 그 분은 축구의 전술가이고 이론가이다. 그 사람만은 그라운드에서 ‘게임처럼’ 축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람의 말대로 선수들이 움직여준다면 말이다. 언론은 그렇다 쳐도 소위 축구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관전평을 쓸 수 있는지 모르겠다. 선수들 몸 상태, 분위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누구를 뽑아야 하느니, 누구를 뽑지 말아야 하느니, 전술은 이랬어야 하느니, 훈련과정이 어땠느니 하면서 글을 쓰더라. 나중에 직접 보게 된다면 제대로 따져 물어볼 것이다. 자신의 이론이 얼마나 허황된 얘기인지를 알게 해줄 것이다.”
2011년 전북현대가 챔피언스리그(ACL) 4강 경기를 앞두고 몸을 풀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공동취재단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이다. 매 경기 애절한 승부를 벌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난 대표팀 경기를 소홀히 했다는 건 결코 아니다. 선수 선발부터 평가전 모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갔을 것이다. 그리고 기성용 구자철도 이번 예선전 때 뽑았을 것이다. 설령 부상으로 뛰지 못한다고 해도 안고 갔을 것이다. 왜냐하면 본선에 대비해야 하니까. 난 철저히 시한부 감독이었고 대표팀을 본선에 진출시켜야 하는 숙제가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 숙제를 완성해내야 했기에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였다.”
―마지막에 김남일을 발탁한 건 최 감독 스스로 악수를 뒀다는 얘기도 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우즈벡전이 벼랑 끝 승부였기 때문에 김남일의 노련함이 필요했다. 결국 부상으로 뛸 수조차 없었지만 말이다. 만약 김남일의 몸상태가 정상이었다면 포항 이명주는 출전하기 어려웠다. 월드컵 본선 진출을 가르는 중요한 경기에 A매치에 데뷔하는 신인을 내보낼 감독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러나 김남일은 부상을 당했고, 고심 끝에 이명주를 내보냈던 게 결과론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됐다. 이명주는 파주 트레이닝센터에 있는 목욕탕에서 자주 본 선수다. 목욕탕에서 볼 때마다 경기에 들어가면 포항에서 하던 것처럼 힘을 빼고 자신있는 플레이를 펼치라고 했고, 그걸 우즈벡전에서 보여줬다. 우즈벡전에서 MVP로 뽑히며 이명주가 급부상하자 언론이 환호성을 보냈고, 이명주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 부분이 이란전에 나타난 것이다.”
―끊임없이 제기된 ‘이동국 논란’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없나.
“아무래도 이동국이 전생에 내 아들이었나 보다(웃음). 얼마 전 목동 집 앞에서 차를 타려고 하는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두 명이 나한테 이렇게 소리치더라. ‘감독님, 이동국은 그만 쓰시고, 손흥민 좀 써주세요!’라고. 오죽했으면 감독인 나한테 그렇게 소리를 쳤겠나. 하지만 그것은 경기장 밖에서 보는 사람들의 시각이다. 경기장, 훈련장 안에서 본 두 선수의 장단점은 너무 극명하다. 그리고 그걸 보는 사람은 감독이다. 내가 동국이만 예뻐해서 흥민이를 안 쓰겠나. 최강희가 그 정도의 사람밖에 안 된다고 보나.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이동국 논란을 부추긴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묻고 싶다.”
‘양천구 최강희 풋볼클럽’ 출범식에 참석한 홍명보 감독, 최강희 감독, 이동국(왼쪽부터). 연합뉴스
“한국 축구 환경상 국내 감독은 소신대로 밀고 나가는 데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외국인 감독은 고집이 있고, 자기가 데려온 코치들 말만 믿고 자기 길을 가는 편이다. 여론과 협회로부터 조금은 보호받는 것 같아서 외국인 감독 얘기를 꺼냈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이 월드컵 대표팀을 이끌고 브라질로 가게 됐다. 전임 감독으로 홍 감독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월드컵하고 올림픽하고는 천지차이다. 1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팀을 재정비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홍 감독이라면 무리 없이 잘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난 홍 감독이 누구한테도 휘둘리지 않고, 자기 중심을 밀고 나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협회도, 언론도, 팬들도 홍 감독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게 월드컵 본선에서 좋은 성적 내기를 바라는 열망에 대한 배려이다. 대표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선수들이 올림픽대표팀 세대들이니 홍 감독과 좋은 화합을 이루며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낼 것이라고 믿는다. 나도 도울 일이 있다면 적극 돕겠다.”
최강희 감독과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팬을 자처한 남성이 다가와 최 감독에게 인사를 하면서 이런 말을 전한다. “감독님, 그동안 대표팀 이끄시느라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감독님 팬입니다”라고. 그 남성과 악수를 나눈 최 감독이 기자에게 이런 농담을 던진다.
“밖에서는 내 팬이 많아. 언론만 날 죽이려고 들지, 일반 팬들은 날 좋아한다니까(웃음).”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