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패배 이후 자중했던 문재인 의원이 NLL 정국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사진제공=문재인
대선 패배 이후 자중했던 문재인 의원이 NLL 정국에 전면적으로 나섬에 따라 정계에서는 여러 가지 해석과 뒷말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문 의원이 정계은퇴라는 초강수 배수의 진을 쳤다는 점에서 자신의 정치적 생명에 있어서 ‘마지막 승부’를 건 것 아니냐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이는 문재인 의원 개인에 국한된 문제만이 아니다. 위기는 누군가에겐 기회라고 했던가. 대선패배 이후 ‘패배의 원흉’으로 지목받으며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던 친노 진영에서도 묘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는 것. NLL 정국이라는 비상상황 하에서 여야 간 전면전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그 혼란의 틈을 타 문재인 의원을 필두로 스멀스멀 친노 진영이 다시금 정국 전면에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민주당에서 NLL 정국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곳은 당 지도부가 아니다. 문재인 의원을 비롯해, 새누리당 핵심인사들이 NLL 발언 의혹을 두고 이미 대선 당시부터 계획을 세웠다는 정황을 폭로한 박영선 의원, 서상기 정보위원장 고소 등 사후조치에 앞장서고 있는 박범계 의원 등 소위 친노 진영에 속하는 인사들이다. 반대로 비주류 진영에 해당하는 김한길 민주당 대표 등 당 지도부 입지는 NLL 정국에서 눈에 띄게 줄어든 형국이다.
김한길 대표는 애초 6월 임시 국회를 앞두고 ‘을을 위한 정국’을 야심차게 선포하며 여권과의 정책적 승부에 집중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터진 NLL 정국 속에서 소위 ‘갈 때까지 가보자’는 강경한 친노 진영의 스탠스에 밀려 그 어떤 통제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저 이 정국을 이끌고 있는 문재인 등 친노 진영에 적당히 호흡을 맞춰주며 끌려가고 있는 모양새다. 정국을 이끌어야 할 당 지도부 수장으로서 정말이지 체면이 말이 아니다.
박범계 의원과 박영선 의원.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이를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또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바로 친노 진영 내부의 분열 현상이다. 비주류 진영에 속하는 민주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대표적 친노 인사인 안희정 충남지사의 발언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최근 언론을 통해 NLL대화록 원문 공개에 대해 분명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며 “또 다른 친노 인사인 문재인 의원과는 생각을 달리 한 것이다. 현재 NLL 정국을 이끌고 있는 박영선, 박범계 의원은 엄밀히 따지면 친노 진영 안에서도 친 문재인 인사다. 친노 진영 내부에서도 ‘친 문재인과 ‘반 문재인’이 분열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문재인 의원이 이번 NLL 정국에 정치적 승부를 건 것은 결국 자신의 독자적인 정치적 행보를 가겠다는 일종의 신호”라며 “하지만 문 의원이 대화록 원문 공개에 앞장섰다는 점은 본인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자신의 정치적 행보를 위해 옛 주군이었던 노무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이용했다고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의 태생적 한계”라고 덧붙였다.
한편으로 ‘분노와 경계지음’을 원동력으로 삼아왔던 친노 진영의 한계가 이번 NLL 정국에서도 다시 드러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만약 친노 진영이 이슈 때마다 노무현 대통령을 이용했던 과거처럼 이번 NLL 정국을 통해 또 다시 노무현 대통령을 희생양(Victim)으로 삼는다면, 이건 정말 잘못된 판단”이라며 “이젠 대중들도 안다. 분노라는 것을 힘으로 폭발시키려면 분명한 방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방향을 제시하기에 문재인 의원은 역부족”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결국 문제는 그 다음이다. 대화록 열람이 결정됐지만, 싸움은 그 후 더 치열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국정원이 대화록을 공개했을 때도 여야는 ‘진실논쟁’을 넘어 ‘해석논쟁’에 열을 올렸다. 대화록 원문이 공개됐을 경우에도 이 문제는 칼 베듯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여야 간 정치적 스탠스를 고려한 해석논쟁에 열을 올릴 것이 불 보듯 뻔하다.
NLL 정국 속에서 전면에 나선 문재인과 친노 진영은 과연 대화록 공개 이후 어떤 방식의 정치력을 보여줄까. 향후 정국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