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최근의 정치는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태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옛날 정치인들에 비하면 요즘 대선주자들의 ‘생활력’은 낙제점 수준이다. 스폰서를 구해 수하를 먹여 살리던 시대는 옛말이다. 대선의 전초기지격인 연구소나 싱크탱크를 만들 때도 자신의 쌈짓돈을 꺼내는 일은 거의 없다. 이는 정치가 보스 중심의 수직적 구조에서 너와 내가 동지인 수평적 구조로 변하는 긍정적 신호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알아주지도 않는데 내 돈 내서 왜 도와줘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여야 대선주자들의 연구소나 싱크탱크와 그에 얽힌 돈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안철수 의원이 지난달 9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서 정책네트워크 ‘내일’ 개소식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재정 운영 현황은 잘 파악되지는 않는다. 상근 직원 월급과 임대료, 기타 부가 비용을 합하면 월 500만 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정책네트워크 내일 관계자는 “연구소이자 사단법인으로 출범했기 때문에 그 격에 맞는 법적 테두리에서 운영하고 있다”며 “후원으로 재정을 충당해 운영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것은 말하기 어렵다. 지금도 후원회원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라고 전했다. 정책네트워크 내일 관계자는 안철수 의원도 후원을 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사이자 발기인이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후원을 하긴 한다는 것. 하지만 안 의원의 구체적인 후원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안 의원의 후원 규모를 두고 캠프 내부에서도 불만이 나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안 의원의 정치 입성 때부터 그의 곁에서 활동해온 한 최측근은 사석에서 “안 의원은 내일 운영에 대해 ‘(그 조직이 내 전유물도 아닌데) 내가 돈을 안 내는 게 원칙이다. 회원들의 기부와 회비로 운영되는 게 맞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생각도 있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안 의원이 돈이 많지만 자신이 무작정 싱크탱크 운영에 돈을 쏟아 부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안 의원은 지난 4월 24일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 출마하면서 1171억 원의 재산을 신고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안 의원의 ‘원칙론’에 대해 캠프 내부에서도 불만이 쌓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안 의원 진영 영입 제의를 받고 어렵게 승낙을 했던 한 인사에게서 그 단초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기자와의 만남에서 “안 의원이 내일 창립할 때 1억 원을 냈다고 하더라. 주변에서는 한 20억 원 낼 줄 알고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것밖에 안냈다며, 말들이 좀 있었다. 안 의원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정치는 현실이고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나만 해도 안철수 캠프에 합류하면서 은행에서 5000만 원을 대출받았다. 백수로 지내고 있으니 돈 나올 곳도 없다. 하지만 안 의원을 돕기 위해 생활비로 융자를 받았다. 주변 선배들이나 동료들도 대부분 대출 받고 안철수 도우미 하고 있다. 밑에서 박박 기는 우리도 대부분 몇 천만 원씩 대출 받아 어렵게 활동하는데 안 의원이 1억 냈다는 소리 듣고 솔직히 좀 놀랐고, 실망스러웠다. 너무 짜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씁쓸해했다.
사실 안 의원의 씀씀이에 대해서는 그의 정치 입문 때부터 여의도 촉새들의 입방아가 있었다. “재산이 1000억 원이 넘는데 돈 쓰는 게 쩨쩨하다”는 것이었다.
여의도의 한 정치평론가는 “재력이 없으면 모르지만 재산도 그렇게 많은데 주변 사람들 배 쫄쫄 굶게 하는 건 좀 웃긴 거 아니냐. 돈이 없다면 후원금으로만 하는 것을 이해하는데 자신이 여력도 있는데 남일 대하듯 하는 것은 좀 무책임하다. 한 50억 원 정도 싱크탱크 기금으로 출연하면 그 이자만으로 운영될 것 아니냐. 안 의원이 싱크탱크와 자신은 별로 관련 없는 것이라며 거리를 두고 있는데 솔직한 접근법이 아니다. 안철수 없는 싱크탱크가 과연 유지될 수 있다고 보는가”라고 말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치에 돈을 안 들이고 누가 자발적으로 열성적으로 도와주겠는가.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도 없는데 재산 팔아서 남 돕기가 쉽겠느냐. 그렇지 않다면 안철수의 가치와 철학을 존중하고 기꺼이 자신의 재산을 희생해가며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현재의 내일 회원 증가 추이를 볼 때 안철수의 가치에 자신의 재산을 털어줄 진정성 있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지 않는 것은 사실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최근 안철수 캠프 일각에서 안 의원의 재정에 대한 무관심 행보를 문제제기하자 안 의원이 ‘이 일은 당신들이 좋아서 하는 일이지 내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식의 답변을 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안 의원이 새정치만 너무 앞세우다 보니 정작 정치의 또 다른 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끈끈한 정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좀 더 지켜보자는 의견도 있다. 한 정치부 기자는 이에 대해 “아직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재정적 기반에 그리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만약 앞으로 운영이 힘들 정도로 어려워서 ‘대주주’ 격인 안 의원에게 내일측에서 도움을 좀 달라고 했는데 안 의원이 그것을 거절했다면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현재 상황만으로는 비난하는 게 적절치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 내일은 안철수 것이 아니라 새정치를 바라는 사람들 모두의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은 비교적 돈의 정치에 익숙한 사람이다. 김영삼 정권 때부터 정치를 해왔기 때문에 정치와 돈의 메커니즘에 익숙해 있다. ‘구시대의 막내’여서 그런지 자신이 직접 스폰서를 잡아서 연구소 운영을 하는 등 적극적 역할을 하는 편이다. 2006년에 설립된 동아시아미래재단은 손학규 상임고문의 대표적인 싱크탱크로 통한다. 동아시아미래재단은 대선 이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동아시아미래재단은 지난 4월 9일 재단 산하에 ‘동아시아 미래 연구소’를 세우기도 했다. 연구소 소장은 손 고문의 측근인 최영찬 서울대 교수로 내정됐다. 최 교수는 그동안 손 고문의 정책 고문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동아시아미래재단 역시 재정 운영은 회원 후원금을 위주로 운영한다고 한다. 동아시아미래재단 관계자는 “회원들이 정기 후원도 하고 소액 후원을 하기도 한다. 특별히 기업 차원의 후원은 없다”며 “회원은 늘었다 줄었다 유동적인데 가장 많았을 때는 8000명가량 됐다. 손 고문을 지지하거나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그동안 장기간 회원으로 있었다”라고 전했다. 동아시아미래재단의 상근직원은 4~5명으로 파악된다. 특별히 일이 많을 때는 자원봉사자를 둔다고 한다. 동아시아미래재단 관계자는 “집행부, 이사진이 동아시아미래재단을 이끈다기 보단 회원들이 이끌어 간다고 보는 게 맞다”라고 전했다.
일각에선 동아시아재단이 회원들 회비만으로 운영되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 손 고문은 오랫동안 정치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경제인들과도 두루 친분이 있다. 경기도지사를 역임하면서도 경제인 네트워크를 구축한 바 있다. 손 고문의 연구소도 경제인 큰손 몇 명이 메인 스폰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는 안철수 의원처럼 돈에 관한 한 무관심형 또는 방임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자신을 대표하는 연구소는 설립했지만 정작 그 운영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편이라고 한다. 스폰서를 직접 끌어들일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주변 인사들의 ‘활약’에 그냥 의존하고 있다는 냉혹한 지적도 나온다.
그는 오랫동안 자치분권연구소를 운영해오고 있다. 이곳은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 때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하지만 패배 뒤 올해 독일로 유학을 가기 전인 지난 3월에 동북아경제문화협력재단을 새로 만들었다. 이곳이 사실상 다음 대권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원래는 5억 원을 낸 후견인이 출연하기로 했는데 차질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상근자는 10여 명 정도 되고 급여를 받는 사람은 2명 정도라고 한다. 직원 급여와 사무실 경비 등을 합해 한 달에 통상 500만~600만 원 정도 든다고 한다. 아직 회원들의 회비 납부 실적이 미미하기 때문에 후원자 몇 명이 갹출해서 경비를 조달하고 있다고 한다.
김 전 지사 측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김 전 지사는 정치를 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아서 그런지 독자적인 스폰서 창구가 없는 것으로 안다. 솔직히 그런 것에 대한 능력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자신의 생활도 어려운 편인데 남들 챙겨줄 여력이 있겠느냐. 김 전 지사의 철학과 가치를 존중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의 자발적 재정지원으로 버티고 있다고 봐야 한다. 김 전 지사가 옛날에 정치를 했다면 대권주자 근처도 못갈 수 있었을 것이다(웃음)”라고 말했다.
정몽준 의원은 돈에 관한 한 ‘갑’이다. 하지만 정 의원의 씀씀이도 그리 화통하지 않다는 게 주변의 공통된 전언이다. 아산정책연구원은 정 의원이 2008년 자신의 재산을 털어 설립한 연구 기관이다. 설립 당시 현대그룹 계열사도 일정 부분 창립에 일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딱히 후원회원을 두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정 의원의 순수한 쌈짓돈으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해밀을 찾는 소망’ 역시 2009년에 정 의원이 사재를 털어 설립한 정책 연구소다. 해밀을 찾는 소망도 특별히 후원회원을 두지 않는다고 하며 상근 직원 역시 소규모로 운영한다고 한다.
여의도의 한 정치평론가는 “정 의원의 정치적 비전과 가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들이 회비도 내면서 잘 운영될 텐데 그런 대중성이 부족한 것 같다. 정 의원의 ‘조용한’ 연구소를 보면 정치가 꼭 돈으로만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느낀다”라고 말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회원 4만명·연간 후원금 55억 노무현재단 ‘이상적’
지난 5월 거행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 추모식. 사진제공=노무현재단
지난해 노무현 재단의 후원금 총액은 55억 4000만 원이었다. 노무현 재단에 따르면 후원금을 포함한 재단의 총수입은 194억 6000만 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194억 원 중 133억 원은 2011년 이월금이기에, 실질적으로 재단 수입의 대부분은 ‘후원금’이라고 노무현 재단 측은 밝히고 있다.
노무현 재단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봉하를 중심으로 점차 활동 폭을 넓혀가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추모사업 및 추모시설 운영, 노 전 대통령 관련 도서 및 영상 제작, 청소년캠프인 노무현 시민학교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노무현 재단은 부산과 광주, 대전충남, 대구경북 등 전국 9개의 네트워크를 갖고 광범위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노무현 재단 안영배 사무처장은 “노 전 대통령을 좋아하고 비전을 공유하는 분들이 계속 재단으로 찾아오고 있다. 현재도 후원 회원은 꾸준히 늘고 있다”라고 전했다.
한편 문재인 의원과 노무현 재단과의 연관성에 대해서 안 사무처장은 “이사장 출신이지만 정치적으로 특별한 연관은 없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향후 대선국면이 오면 노무현 재단이 문 의원의 훌륭한 지지기반이 될 것이라는 해석에 이견은 없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