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전문가인 조영서 평화자동차 전 총사장이 북한 권력의 내부동향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상민 인턴기자
그는 2008년경 주춤하던 평화자동차에 총사장으로 취임, 1년 만에 성장률 300%를 달성해 북한 최고위층의 신임을 얻게 되었고, 로열패밀리들의 동향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고 한다. 특히 조 전 총사장은 사실상 남북관계가 단절되었던 이명박 정부 3년 동안 한국인으로선 유일하게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직전까지 현지에서 고위급 인사로 활동하며 ‘김정일-김정은’ 체제 전환으로 꿈틀대던 북한 고위층의 내부동향을 비교적 많이 체험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현지의 경험 때문인지 그는 인터뷰 내내 ‘북한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북한 권력구도의 실상과 변화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전 사장은 이 대목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최측근 자리에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보다 숨겨진 실세인 주규창 노동당 기계공업부장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주 부장이 김정은 정권의 떠오르는 제3의 실세라는 것이다. 그는 1928년생으로 김책공업대학을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왼쪽부터 조영서 전 총사장(맨 왼쪽)과 주규창 부장(왼쪽서 세번째), 이란 대사(왼쪽)와 조 전 총사장.
주 부장의 출신성분도 ‘백두산 혈통’에 가깝다. 그는 김일성 주석의 외가 쪽 인사로 김정은에게도 먼 친척 격이라고 한다. 북한 핵심층에서는 김정은이 고모부인 장성택보다도 김일성 외가 계통의 주규창을 더 아낀다는 말까지 나온다. 최근 공개된 장면에서 장성택이 김정은 옆에서 ‘평양박수’를 치지 않고 ‘김정은 박수’를 따라하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는 북한 전문가의 분석도 있다. 이는 ‘김정은 장성택 불화설’의 일정한 근거가 되고 있다. 이를 두고 익명의 북한 전문가는 “장성택은 김정일의 사람이고 전형적인 정치인이다. 계속 저런 식으로 굴면 김정은도 마음이 뜰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성택, 주규창
이런 조 전 총사장의 북한 권력구도 변화 가능성 주장에 대해 서유석 북한연구소 박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북한 전문가들이 주규창에 주목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전통적 대북시각인 ‘(장성택 등 전통 인맥이 중심이 되는) 내각 중심’으로만 북한을 분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 박사는 이어 “북한은 ‘군수공업’으로 권력 판도를 이해해야 한다. 직위가 아니라 그 사람이 뭘 갖고 있는가, 실질적인 부분을 눈여겨봐야 했다”고 강조했다.
2009년 김정일 생전의 북한 정부 인사들의 단체 사진. 앞줄 가운데 김정은 바로 뒤 왼쪽이 주규창 부장이다.
조 전 총사장은 이어 “주규창은 전형적인 ‘테크노크라트’라서 당이 아닌 국익을 따라가는 인물이다. 게다가 평소 김정은에 대한 충성도도 깊다. 나이가 많다는 게 흠으로 작용할 순 있겠지만 별다른 루머 공작이 없는 한 김정은의 ‘주규창 신뢰’는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북한서 파격 송금…‘김정일 설득했다’
평화자동차 근무 당시 모습.
―사업을 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교시를 받았다던데.
▲2009년 4월 경 평화 고려호텔 연회장에서 주규창 기계공업부장이 갑자기 차렷 자세를 하더니 군인걸음으로 세 발자국 내게 다가오더라. ‘황제의 교시’처럼 일종의 의식이었다. 그가 “장군님의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하더니 이번엔 귓속말로 “공화국 자동차 공업발전에 수고가 많으십니다. 평화자동차를 잘 만들어주세요”라고 하더라. 그 뒤 다시 세 발자국 물러서더니 70세가 훨씬 넘은 북한 실세가 내게 60도 목례를 했다. 북한에선 김정일의 이른바 ‘교시’라는 게 일종의 ‘전가의 보도’를 주는 것과 비슷하다. 주변에 있던 고위급 인사들이 수시로 다가와 ‘교시’의 내용을 눈치 보며 묻는데 그날만은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김정일의 말이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받은 느낌이었다.”
―최근 개성공단 사태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데.
▲대남전략 최고실세인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직접 개성공단에 가서 문을 닫은 걸 보면 분명히 ‘군’ 문제가 아니라 ‘사상’문제 때문에 온 거다. 개성공단에선 한국케이블 방송을 보는데 북한여직원들도 슬쩍슬쩍 같이 본다고 하더라. 그런데 어느 날 케이블에서 김정은 화형시위 장면이 나왔다고 들었다. 문제는 너무 많은 수의 북한직원이 본 것 같다. 그래서 김양건이 일단 직원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개성공단 북쪽 게이트 쪽 운동장으로 모은 것 같다. 5만 명을 세울 수 있는 장소가 거기밖에 없는 데다 개성공단 내 한국인들 보는 앞에서 사상교육을 시킬 순 없지 않는가. 그런데 한국 쪽에서 ‘근로자들을 철수시켰다’고 주장하니 김양건이 난감했던 것 같다. 남북관계는 휘발성이 엄청 강해서 루머 하나에도 크게 동요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평양 인근 남포지구 개발을 적극 주장하고 있는데.
▲통일 해법은 개성공단이 아니라 평양에 근접한 남포지구에서 찾아야 한다(남포지구는 평화자동차가 있는 지역). 북한 양 끝단에 경제특구지구를 설립해 모기장 방식이니 섬 개방 방식이니 백날 해봤자 소용없다. 독일의 경우를 보라. 동독과 서독이 통일한 게 아니라 동독 내부에 있던 베를린의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통일이 됐다. 결국 통일은 휴전선 근처가 아니라 북한의 내부 심장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명품경제특구가 남포로 가야 평양사람들이 자극받아 통일이 이뤄진다. 개성 같은 외곽에서 백날 해봐야 평양관리들 거기 가보지도 못하고 관심도 안 준다. 남포에는 중공업, 경공업, 조선업 등 상당히 많은 산업이 이미 잘 갖춰져 있다. 1억 평에 북한 인구의 50%가 50킬로미터 근방에 있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이 경제협력을 통해 통일을 이루어 나가는 통일정책에 관심을 둬야 한다.
―북한의 로열패밀리들과 관련한 일화는 없나.
▲현재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동생 김경희다. 김경희의 위상을 체감할 수 있었던 경험이 많았다. 일례로 내가 머무르던 평양 소재 보통강 호텔 1층에 일본인 주방장이 운영하는 ‘몽란’이라는 일식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김경희가 언제부턴가 자주 찾더라. 한번은 레스토랑에 거대한 파티션이 쳐 있더라. 북한의 핵협상을 총괄하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와도 파티션은 안 쳐준다. 그래서 김정일 위원장 정도가 온 줄 알았다. 궁금한 마음에 일부러 한국말투를 강조하면서 “이야, 호텔에 아주 중요한 분이 오셨구나”라고 말했더니 파티션에서 여자 얼굴이 나타났다. 김경희였다. 김경희가 종업원을 불러 “요즘 남쪽에서 오신 손님들이 있니?”하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종업원이 “평화자동차 사장 선생이십니다”라고 하자 김경희가 “어머머. 그래?” 하며 고개를 또 내밀더니 나를 쳐다보더라. 그래서 가볍게 웃어줬다. 어떻게 보면 굉장한 도발이었는데 기분 좋게 잘 넘어가더라. 한국에선 김경희가 다혈질에 알코올중독도 있고 불같이 화를 잘 낸다고 알려졌지만 내가 본 김경희는 다소 평범해 보이기도 하고 살가운 아줌마 같았다.
―남북당국회담 결렬에 대해서.
“북한은 복잡한 실무회담보단 간단한 회담이 돼야 장성택 같은 고위급 인물이 나온다. 그런 특수성을 파악해야 하지 못해 서로 오해가 생긴 것 같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