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혁 전 회장은 실종 자작극 의혹에 대해 “회사 돈을 들고 잠적한 재산관리인을 추적했을 뿐, 납치도 잠적도 아니다”며 부인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지난해 10월, 실종 3개월 만에 부산에서 한 시민의 신고로 붙잡힌 그는 끝내 자작극 의혹을 부인했다. 지금 그는 지난해 발생한 자작극 의혹 사건 탓에 업무집행방해 혐의로 법정 앞에 섰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일요신문>은 수소문 끝에 지난 4일 양재혁 전 회장을 만날 수 있었다. 인천의 한 오피스텔에서 만난 그의 행색은 한때 ‘대부업계의 신화’로 불리던 과거와 달리 남루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풀었다.
―지난해 있었던 실종 자작극 의혹으로 최근 부산지방법원 법정에 섰다고 들었다.
“그렇다. 지난 6월 검찰로부터 업무집행방해 혐의로 300만 원 벌금에 약식 기소됐다. 하지만 난 300만 원 낼 돈도 없고 낼 생각도 없다. 그래서 법정에 섰다. 지난 1일 오전, 첫 번째 공판이 있었고 다음 공판은 8월 19일이다.”
―자작극 의혹을 부인한다는 것인가.
“물론이다. 절대 자작극이 아니다.”
―본인이 실종된 것이 지난해 7월 13일이다. 당시 가족에게 ‘내가 양도한 회사 돈(4000억 원 추산)을 들고 잠적한 하인봉 당시 정산법인 대표를 만나러 간다. 혹시 연락이 없으면 경찰에 신고하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어떻게 된 일인가.
“지난해 7월 6일, 내 휴대폰으로 전화 한 통이 왔다. 수화기 넘어 조선족 말씨의 한 낯선 남자가 ‘하인봉을 만나게 해줄 테니 7월 13일 6시까지 속초 방파제로 나오라’고 했다. 그래서 약속한 날 속초 방파제로 갔다. 그곳에 조선족으로 추정되는 남성을 만났다. 그 남성이 하인봉 대표를 만나게 해주겠다며 울진, 경주, 포항, 진주 등지로 끌고 다녔다.”
양재혁 전 회장(왼쪽)이 거주 중인 인천의 한 오피스텔. 한때 ‘대부업계의 신화’로 불리던 그는 현재 남루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납치나 감금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난 하인봉 대표를 만나야만 했다. 그 남성이 이끄는 대로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휴대폰 신호가 잡힌 곳이 실제 그 문제의 속초 방파제이긴 했다. 하지만 정작 전화기가 발견된 장소는 서울에서 본인이 머물던 고시원이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건가.
“그날 비가 많이 왔다. 그때 내가 개량한복을 입고 갔는데, 옷이 다 젖어서 갈아입을 필요가 있었다. 그 남자에게 ‘갈아입을 옷을 챙겨야 하니, 서울에 잠시 들르자’고 했고, 잠시 그 남자와 서울에 올라왔을 때 내 휴대폰을 고시원에 뒀을 뿐이다. 무엇보다 그 남자가 내 휴대폰을 갖고 어떤 짓을 할지 몰라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이다.”
―본인은 ‘조선족으로 추정되는 의문의 남성’과 만났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검찰은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보는 것 같다.
“안타까운 것은 내게 이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그 외에도 본인의 행적과 관련해 의문점들이 많다. 특히 실종 기간이었던 지난해 7월 17일과 23일, 대구의 한 대형마트의 CC(폐쇄회로)TV에 본인이 잡혔다. 당시 <일요신문>은 그 마트에 직접 찾아가 본인을 기억하는 직원을 만났다. 그 직원이 이르길, 당시 본인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평범한 생필품을 구입해가며 포인트 카드까지 만들었다고 하더라. 더군다나 그곳은 본인의 가족이 머물고 있는 집 근처였다.
“너무나 내가 자연스러웠다고? 그럼 내가 무슨 눈치라도 봐야 했나. 당시 근처 모텔에 그 남성과 함께 머물며 숙식을 해결했다. 포인트 카드는 당시 카운터 직원이 만들어준다고 하길래 별 생각 없이 만들었을 뿐이다. 그때도 그 남성은 마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결국 지난해 10월 17일 부산의 한 커피숍에서 시민의 신고로 붙잡혔고 하인봉 대표는 못 만났다.
“지난해 10월 16일, 그 남성이 사라지고 갑자기 연락이 두절됐다. 그때 부산에서 경비가 떨어져 지인에게 돈을 꾸기 위해 간 것이다. 그러다 그 커피숍 여직원의 신고로 내가 잡혔다.”
양 전 회장이 대부업계 성공신화를 써내려가던 1997년 당시 일본 재무장관(오른쪽)과 함께 촬영한 사진.
“사실 문제 아니냐. 앞서 내 말의 진실 여부를 떠나서 지난 세월 경찰과 검찰이 수천억 원을 횡령하고 도주한 하인봉 대표에 대해 나 몰라라 했다. 내가 지난 공판 진술에서도 ‘내 행적이 죄가 된다면 달게 받겠다’고 했다. 정말 직무유기 아니냐. 경찰과 검찰이 안 잡아서 대신 잡겠다는데 내가 뭘 잘못했나.”
―돈을 들고 잠적했다는 하인봉 대표,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왜 본인이 구속된 이후 회사 돈이 그에게 간 것이고 그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하인봉 대표는 원래 나와 우리 회사를 괴롭히던 세무공무원이었다. 너무 골치를 썩여, 우리가 아예 스카우트 한 사람이다. 당시 재무를 담당했는데 워낙 일도 잘했고 나와도 가까운 사이였다. 그런데 내가 하 대표를 너무 믿었다. 난 1999년 구속 직전 하인봉 대표에게 현금 2200억 원을 양도했다. 2000년에 내가 만든 정산법인에 그를 공동대표로 앉히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다. 1000억 원대의 채권은 물론 1000억 원 규모의 부동산도 양도했다. 부동산은 내가 감옥에 있을 당시 현금화시켰다. 그를 믿은 내가 바보였다.”
―2005년부터 하인봉 대표는 지명수배 상태였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인가.
“2009년부터 아예 종적을 감췄다. 그야말로 돈을 들고 완전 튄 거다. 물론 그를 잡을 기회가 몇 번 있긴 했다. 부산 기장에 자주 나타난다는 소문이 있었고 몇 차례 검찰이 수색영장을 들고 그곳으로 잡으러갔지만, 체포에는 실패했다. 또 결정적으로 지난해 4월 하인봉 대표가 경기도 여주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린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 내가 하필이면 해외 출장 중이었다. 검찰들의 조치가 늦어져 결국 48시간 후 풀려났다. 그때 잡았어야 했는데….”
―하인봉 대표가 그 돈을 어떻게 했을 것으로 보나.
“그와 관련한 법인을 살펴본 결과, 해외로 자금이 유출되거나 자금세탁이 된 흔적이 없다. 난 3년 6개월간 미국에서 헤지펀드를 공부한 사람이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내가 잘 안다. 아마도 CD(무기명채권)로 보관하고 있거나 가차명으로 땅에 투자했을 가능성이 제일 높다. 하인봉 대표가 부산 기장에서 자주 목격되고 있는 것은 그 지역 땅에 투자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 지역은 현재 개발지역이다.”
양 전 회장의 실종신고가 접수됐을 무렵 그가 서울의 고시원에 놓고 왔다는 문제의 휴대전화.
“(기자의 손을 잡고 호신술 시범을 보이며) 내가 합기도, 태권도, 유술까지 연마했다. 모두 하인봉 때문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오피스텔도 옛 직원의 도움으로 근근이 살고 있는 거다. 현재 하인봉을 추적하고 있는 부산지검 담당 검사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다. 꼭 잡아야 한다.”
―만약에 하인봉 대표를 잡고 일부라도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면.
“1000억 원이든 100억 원이든 일부라도 자금을 돌려받는다면, 당연히 피해를 본 채권자들에게 돌려줄 것이다. 당시 우리 회사에 투자한 사람들 상당수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막판에 투자한 사람들은 분명 많은 피해를 봤다. 뻥튀기 장사를 하면서 전 재산 우리에게 맡긴 고객도 있다. 정말 눈물겨운 돈 아닌가. 그런 사람들 추적해서라도 돈 찾아주겠다. 무엇보다 최근 부산에선 내가 실종기간 하인봉 대표를 만나 이미 수백억 원을 받았다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 퍼지고 있는데, 결코 그런 일 없다. 또한 돈이 남는다면, 현재 살아있는 법인(정산을 목적으로 세운 페이퍼컴퍼니)을 통해 재기하겠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1999년 부산 서민경제 뒤흔든 장본인
양재혁 전 회장이 신화적 대부업체 ‘삼부파이낸스’를 세운 것은 1996년 1월. 이 역시 동료 사채업자로부터 시드머니(종자돈) 30억 원을 받아 시작했다. 당시 삼부파이낸스는 30%에 달하는 고이율을 내걸며 부산지역 서민들과 투자자들의 자금을 끌어 모은다. 그렇게 그가 당시 주물렀던 자금 규모만 1조 원대. 당시는 그 엄혹한 IMF 외환위기 시절. 지역 금융업체들이 줄도산하면서 오히려 삼부파이낸스에게는 호재로 작용했고, 전국의 벤처기업에 ‘젖줄’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양재혁 전 회장은 당시 엔터테인먼트, 특히 영화계의 큰손으로 통했다. 대학 시절 충무로에서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에 푹 빠졌다는 그는 1990년대 후반 300억 원대에 달하는 거금을 영화 제작에 투입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용가리>, <자귀모>, <엑스트라> 등이다.
하지만 설립 후 3년간 신화를 써내려갔던 양재혁 전 회장은 ‘돌려막기’식 경영과 ‘비자금 유용’ 등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1999년 횡령 혐의로 징역 3년 6월형을 선고받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삼부파이낸스에 투자했던 많은 서민들도 충격 속에서 바닥에 나앉았다. 현재도 부산을 비롯해 전국에는 자금 회수의 끈을 놓지 않는 삼부파이낸스 채권자들이 적지 않다.
양재혁 전 회장은 “외부에서는 다단계니 불법이니 말이 많았지만, 합법적인 사모펀드였다”며 “2000년쯤 내가 계열사를 코스닥에 상장해 투자자들에게 배당금을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횡령 혐의로 구속되는 바람에 이것이 모두 무너졌다”고 회고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함께 다녔다던 ‘조선족 남성’ 흔적 전무
양재혁 전 삼부파이낸스 회장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실종 자작극 의혹’에 대해 적극 부인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점들이 있다. 무엇보다 양재혁 전 회장이 만났다는 의문의 조선족 남성이 실제 존재했느냐다. 현재 검찰과 경찰은 양 전 회장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양 전 회장이 인터뷰를 통해서도 인정했듯, 문제의 조선족 남성 실존을 증빙할 수 있는 증거가 현재로선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만약 양 전 회장의 말처럼 그 문제의 남성이 존재한다고 치더라도 그가 실제 하인봉 대표의 하수인인지도 지금으로선 확실치 않다. 다시 거주지로 가서 휴대폰을 놓고 왔다거나, 별다른 이유 없이 그 남성과 연락이 두절됐다는 양재혁 전 회장의 설명은 분명 석연찮은 대목이다.
또한 실종기간 동안 양 전 회장은 대구의 대형마트 등 몇몇 CCTV에 붙잡혔지만, 문제의 조선족 남성과 함께 목격된 장면은 단 한 컷도 없다. 법원은 과연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