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동양그룹은 사위 총수라는 특성상 재계의 통상적인 후계구도인 장자 승계 원칙에서 한결 자유로웠다. 또 묘하게 현재현 회장과 고 이양구 창업주의 장녀 이혜경 동양레저 부회장은 슬하에 1남 3녀를 두고 있고, 딸이 맏이다.
이런 이유로 동양그룹의 후계구도를 두고 재계에서는 늘 장남인 현승담 동양네트웍스 상무(33)와 함께 장녀인 현정담 (주)동양 상무(36)도 동양그룹 차기 경영권의 강력 후보로 꼽아 왔다. 그런데 최근 장남인 현승담 상무가 누나 현정담 상무를 제치고 먼저 계열사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면서 후계구도 경쟁에서 한 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현승담 대표를 중심으로 승계 구도가 정리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일요신문 DB
지난 2007년 레미콘과 건설 사업을 영위하던 동양메이저((주)동양의 전신) 차장으로 입사한 현 대표는 동양증권을 거쳐 지난 2011년 연말 인사를 통해 동양시멘트에서 첫 임원(상무보)을 달았다.
반면 현정담 상무는 지난 2006년 차장을 달고 동양매직에 입사해 죽 이곳에서만 근무했다. 2011년 동양매직과 동양메이저의 합병으로 (주)동양이 탄생했지만, 여전히 현 상무는 (주)동양의 가전사업부(옛 동양매직)에서 근무 중이다. 현 상무는 동양매직 입사 1년 만인 2007년 이 회사 마케팅실 실장(부장)에 오른 뒤 2009년 1월 인사에서 상무보로 첫 ‘별’을 달았다. 2010년 연말 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했고, 2011년 7월에는 새로 출범한 (주)동양의 등기이사로 선임된 데 이어 마케팅본부장으로 직책이 올라갔다.
임원과 등기이사 선임에 걸린 시간, 즉 승진 속도를 비교해 봤을 때 지금껏 누나인 현정담 상무가 동생인 현승담 대표보다 앞서 나갔다. 승승장구하던 현정담 상무에 대해 재계 일각에서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바탕으로 주 고객층인 주부들의 마음을 읽는 데 성공했고 회사의 실적 개선까지 이끌었다는 평가도 들렸다. “동양매직과 결혼했다”고 할 정도로 애사심도 강해 ‘차기’ 후보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최근 임원 중 최고 직책인 대표이사 자리를 동생에게 먼저 내 준 현정담 상무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주)동양 가전사업부가 그룹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현재 교원그룹과 매각 협상을 진행 중이라 현재로선 거취마저 불투명한 상태다. 동양그룹 관계자는 “현 상무의 거취는 동양매직 매각이 끝나봐야 알 것 같다”며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현승담 대표이사
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현재현 회장이 사위 총수라는 점에서 오히려 장자 승계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내 놓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현 회장은 재벌가에서 처음으로 사위 총수 시대를 연 주인공으로, 경영 외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적잖은 부담이 됐다”면서 “자신 이후부터는 보통의 재벌가처럼 아들을 후계자로 삼고 싶은 마음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직 후계구도를 예측하기에는 이르다는 관측도 있다. 현 회장이 64세로 비교적 나이가 많지 않은 데다 이번 현승담 대표의 승진과 대표이사 취임이 경영 승계를 위한 테스트 차원의 성격이라는 것이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는 “현승담 대표가 맡은 회사는 그룹의 IT(정보기술) 계열사들로 제조업과 금융업 중심의 동양그룹에서 상대적으로 부진하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키워야 하는 분야”라며 “현 대표가 일단 누나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 오른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향후 경영 성과에 따라 후계구도가 변화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동양그룹 측도 이 같은 해석에 무게를 두며, 후계구도가 아닌 경영 자질 검증을 위한 시험 무대 정도로 인식해 줄 것을 주문했다. 동양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현 대표가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했다는 점과 그의 의지가 고려됐을 뿐 후계구도를 운운하기는 이르다”며 “현 대표는 유학 생활 동안 다져 놓은 해외 유수 IT기업 인맥과 전문적 식견을 통해 수익성 악화에 빠진 SI(시스템통합) 사업 등을 제 궤도에 올려놓는 데 주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 회장의 차녀인 경담 씨(31)는 동양네트웍스에서 부장으로 재직 중이며, 막내딸인 행담 씨(26)는 미국에서 유학 중이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