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연예부 기자인 터라 내내 A 씨에게 관심을 갖게 된 기자는 에어컨 설치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 잠시 A 씨와 대화를 나눴다. A 씨는 “오래전부터 배우의 꿈을 키워왔지만 잘 안됐다. 지금은 에어컨 설치기사로 일하며 틈틈이 배우의 일도 병행하고 있다”면서 “주위에서 이제 (배우 일을) 그만두라는 얘길 많이 한다. 그런데 지금 함께 일하는 형님만 내 사정을 이해해주시며 배우의 꿈을 계속 이어가라고 격려해준다”고 말했다.
어떤 작품에 출연했느냐는 질문에 A 씨는 조단역으로 출연할 뿐이라 말해도 잘 모른다며 자세한 언급은 피했다. 대신 “작은 역할을 소화하는 배우일 뿐이지만 나는 내 꿈을 향해 묵묵히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이 일(에어컨 설치)을 하면서 고정적인 수입이 생겨서 집에 매달 300만 원 이상은 가져다준다. 가장으로서 역할을 하면서 틈틈이 내 꿈인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09년 연예인 평균 연수입이 2499만 원이다. 직장인 평균 연수입보다 못한 수준이다. 일부 톱스타들이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음을 감안하면 톱스타를 제외한 연예인의 평균 연수입은 이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은 “노조 가입 연예인의 75%가 연봉 1000만 원 미만”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배우들의 경우도 일부 스타급 배우와 주조연급 배우들을 제외한 대다수 배우들의 평균 연수입은 1000만 원 이하로 보인다. 더욱이 최근 몇 년 새 드라마 외주제작사의 출연료 미지급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한 달에 100만 원도 벌지 못하는 조단역 배우들이 출연료 미지급 사태 탓에 그마저 받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조단역 배우보다 더 힘겨운 보조출연 배우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 보조출연 여배우가 보조출연자 관리반장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해에도 유사한 성추행 사건이 있었다.
이런 조단역 배우와 보조출연 배우들의 실상을 감안하면 배우의 꿈은 결코 달콤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엄청난 시련과 인내의 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A 씨는 에어컨 설치기사라는 고정적인 일이 있어 그나마 꿈을 향해 가는 길이 조금은 안정적일 수 있다.
최근 들어 연예인들의 인권보호가 화두가 되고 있지만 파파라치식 취재 등에 의한 연예인의 사생활 보호가 그 중심으로, 그 역시 스타들의 이야기다. 그렇지만 진정한 연예계 인권보호는 바로 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조단역 배우들과 보조출연 배우들에 대한 문제제기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