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정우성이 영화 <감시자들>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모습. 이상민 인턴기자
“관객과 멀어진 거리를 체감했다. 누구보다 절박한 건 나였다. 영화를 오랫동안 하지 않겠다고 의도한 건 아닌데. 앞서 얘기하던 글로벌 프로젝트 작품이 무산되면서 시간이 흘렀다. 드라마 몇 편에 출연했지만 내 본분은 영화니까. 영화를 멈췄으니 너무 미약하게 활동을 한 건 아닐까, 그런 갈증이 있었다.”
정우성이 굵직한 한국영화로 돌아온 건 2008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후 5년 만이다. 그 사이 중국영화 <검우강호>, 한·중 합작 <호우시절> 등의 작품이 있었지만 아쉬움을 남겼다. 물론 흥행에서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감시자들>을 만나기까지 정우성은 녹록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지난해 초 드라마 <빠담빠담>을 끝내고 직접 휴대전화를 들어 친한 영화감독과 프로듀서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화계 인맥들’을 직접 찾은 셈. “영화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전화해서 만나자고 열심히 약속을 잡은 건, 데뷔하고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정우성은 돌이켰다. 밤샘 대화가 이어졌다. 정우성은 “그건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만난 영화가 <감시자들>이다. 치밀한 범죄를 설계하는 조직의 리더를 연기한 그는 화려한 모습으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영화는 개봉 전 정우성의 첫 악역 도전이라는 점에서 떠들썩했지만 정작 이야기가 공개된 뒤 관객의 시선을 끈 건 스크린으로 돌아온 걸출한 배우의 모습이다. 정우성은 그렇게 스크린을 압도한다.
“이제 병뚜껑을 따서 딱 한 모금을 마신 기분이랄까(웃음). 20대를 돌아보면 왜 그렇게 작품 수가 적었을까, 싶다. 이젠 자신감이 붙었다. 요즘은 한국영화 중흥기이기도 하잖나. 좋을 때, 좋은 작품을 많이 하고 싶다.”
말만 꺼내는 건 아니다. 실제로 정우성은 이달 초부터 새 영화 <신의 한 수> 촬영을 시작한다. 실패한 바둑기사의 재기를 그린 액션영화다. 공백 없는 활동이다. 정우성은 <신의 한 수>에 대해 “아마도 주구장창 액션만 할 것 같다”고 예상하면서 “그래도 몸만 놀리는 액션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감시자들> 제작보고회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
“단편영화로, 연출에 ‘잔 맛’만 봤다고 해야 할까. 하하! 그래도 언제 연출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20대에 영화감독 한다고 했을 땐 ‘청춘스타가 웬 감독이냐’는 호기심이 많았다. 지금은 (박)중훈 선배도 감독한 영화가 개봉을 하고 유지태, 하정우 씨도 연출자로 데뷔했으니 이젠 아주 특별한 공약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1994년 영화 <구미호>로 데뷔해 배우로 살아온 시간이 20년. 그동안 숱하게 들어왔을 ‘멋있다’는 칭찬이 이젠 식상하지 않을까. 질문을 받자마자 그는 “전혀! 지겹지 않다”고 답했다. 오히려 ‘어떻게 지겨울 수 있느냐’는 눈초리다. 내친김에 ‘멋있다’와 ‘잘생겼다’ 중 하나만 선택해보라고 했다. 곧바로 돌아온 답은 ‘멋있다’였다.
“잘생긴 건 시대의 기준에 따라 바뀌잖아. 멋있다는 말은 시각적 느낌도 있지만 매력도 인정받은 거니까.”
정우성은 지난 20년 동안 ‘연기를 관두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말에서는 거짓이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도 정우성을 자극하는 건 오직 ‘영화’뿐이다. 가장 최근에는 류승완 감독이 만든 <베를린>을 보고 묘한 질투심마저 일어났다.
“연기를 떠나고 싶단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때론 개인사로 괴로운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때도 연기하면서 풀 수 있었다. 그건 어쩌면 힐링 같은 것일 수 있겠지. 인생은 앞날을 예측할 수 없지만 촬영은 정해진 결론이 있지 않나. 그래서 촬영이 더 좋다.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까.”
정우성이 꺼낸 ‘개인사’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연기자 이지아와의 만남 그리고 결별이 아닐까. 정우성은 이별을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이지아에 대한 마음을 밝혀 또 한 번 주목받기도 했다. 이처럼 사랑에 대해서도 정우성은 솔직하다. 적당히 답하고 넘어갈 법한 ‘결혼계획’에 대한 대답도 그렇다.
그는 “누가 있어야 (결혼을) 하죠”라고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결혼에 마음을 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예전에 일과 결혼했다는 사람들 보면 ‘뭐야, 유치하게’ 콧방귀도 안 끼었는데. 아무래도 나도 일 때문에 결혼이 미뤄지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