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추락한 아시아나 항공기 모습. 일부 조종사들 사이에서 “이미 예견된 사고였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노조가 한창 파업을 진행할 무렵 조종사 내부에서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었다. 공군사관학교 출신과 비 공군사관학교 출신들의 갈등이 그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조종사는 통상 공군사관학교, 공군 2사관학교, 공채를 통한 간부 훈련생, 항공대학교 ROTC 등으로 출신이 나눠진다고 전해진다. 공사 출신은 군에서의 비행 경력이 인정되는 만큼 비 공사 출신보다 기장 승급이 빨랐는데, 비 공사 출신들이 이에 대해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사측이 노조 와해를 위해 공사 출신 조종사와 비 공사 출신의 갈등을 끊임없이 조장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당시 아시아나항공이 파업과 관련해 “공채 출신들이 기장이 되기 위해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설명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흘러나왔다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던 와중에 비 공사 출신들의 ‘비밀 문건’을 일부 고참 공사 출신 조종사들이 우연히 보게 된 게 갈등의 불씨가 됐다. 비밀 문건에는 공사 출신들의 경력 인정과 관련한 내용뿐만 아니라 군 출신 조종사들의 서열 문제를 언급하는 민감한 내용도 담겨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이 문건을 누가 작성했는지, 확실한 실행 계획이 있었던 문서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때부터 공사 출신에서 최고참으로 여겨지는 수뇌부 몇 명이 새로운 조직을 만들 것을 계획한 것. 그 새로운 조직의 이름이 바로 ‘아시아나 경력 조종사 협회’(아조협)였다. ‘공사 출신들의 항공 경력을 보호하고 인정받자’는 게 이들 조직이 만들어진 핵심 키워드였다.
하지만 새로운 조직의 탄생은 시작부터 의심스러운 점이 많았다. 수뇌부 5~6명이 공사 출신들에게 접근하며 반강제적으로 입회 권유를 시작한 것이다. 당시 아조협에 가입했던 한 조종사는 “선배라는 점을 이용해서 가입을 권유하기 시작했는데 사실상 반 협박이었다”며 “선배들은 ‘노조를 탈퇴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경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며 300명가량 문서에 사인을 받았는데 이게 노조를 탈퇴하는 씨앗이 됐다”라고 전했다.
아조협 수뇌부는 사인을 받은 문서를 갖고 노조사무실을 찾아갔다고 한다. 이후 일부러 노조 집행부에게 시비를 걸며 노조를 빠져나오려 했다는 게 당시 아조협에 가입했던 조종사들의 설명이다. 앞서의 조종사는 “가자마자 ‘왜 우리 경력을 무시하느냐. 노조를 탈퇴해 버리겠다’며 다짜고짜 문서를 던져버렸다고 한다. 가입 당시 했던 약속과 달라 상당수 조종사가 어안이 벙벙했다”고 전했다. 당시는 한창 파업이 무르익고 있을 때라 노조를 집단 탈퇴한다는 것은 ‘노조 와해’의 시발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아조협 수뇌부가 사측의 ‘명령’을 받았거나 일종의 ‘딜’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은 그래서 나오기 시작했다.
아조협은 그 이후로 더욱 적극적으로 신입 회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공사 출신이 회사에 입사하면 아조협에 가입하는 것은 ‘필수 절차’였다고 한다. 또 다른 조종사는 “입사 첫 날부터 별다른 설명도 없이 가입 원서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가입을 거부하면 어김없이 ‘다른 동기들도 다 가입했는데 선배 말 안 들을 것이냐’며 압력을 주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덩치가 커진 아조협은 사내의 대표적인 사조직으로 커나갔다. 정식 노조는 아니지만 파업 후 노조보다 더 힘이 실린 조직으로 성장한 셈이다. 이를 두고 “아조협이 회사를 등에 업고 노조를 견제하고 있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아조협 수뇌부는 전무, 상무 등 임원이나 주요 보직으로 진출해 나가기도 했다. 현재 아시아나항공 운항본부장인 은진기 전무도 아조협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2005년 아시아나 노조의 파업 모습. 사측이 노조 와해를 위해 조종사들 사이의 갈등을 조장한다는 목소리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투표 결과가 나온 이후에도 아조협 수뇌부는 차일피일 복수노조 설립을 미뤘다고 한다.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약속 이행이 되지 않자 후배 조종사들은 들끓기 시작했다. 아조협 내부에서는 “집행부가 회사로부터 복수노조 설립에 대한 압력을 받았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결국 참다못한 후배 기수들이 차례로 아조협을 탈퇴하기 시작했다. 총 150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원이었다. 당시 7월에는 제주도 인근 해상에서 아시아나항공 보잉 747 화물기가 추락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화물기를 운행했던 조종사 두 명은 모두 아조협 출신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의 내부 분위기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회원의 절반가량이 떨어져 나간 상황에서 아조협 수뇌부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후배 조종사들의 탈퇴를 사실상 ‘항명’으로 받아들인 셈이다. 앞서의 한 조종사는 “탈퇴하고 난 순간부터 온갖 협박과 욕이 난무했다. ‘너희들이 선배들 배신해 놓고 회사생활 잘하나 보자’ 등과 같은 협박은 기본에 속했다”라고 전했다.
아조협의 실체는 그 이후부터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사건이 외부에 드러난 건 지난 6월. 조 아무개 기장이 기장 승급 심사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떨어진 것이 계기가 됐다. 조 기장은 지난 4월 중국 칭다오에서 인천공항까지 기장 승격 심사 비행을 한 바 있다. 당시 조 기장은 뒷자리에 동석한 국토교통부 심사관으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는데, 함께 동석한 아시아나항공 소속 심사관 이 아무개 씨가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조 기장이 보조 장치 조작과 관련해 규정속도 230노트를 초과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다음날 국토교통부는 이의를 받아들이고 합격 통보를 번복해 조 기장에게 ‘불합격 통보’를 내리기에 이른다.
하지만 비행정보기록을 검토한 결과 당시 조 기장이 운행했던 속도는 218.6 노트임이 드러났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 측이 조 기장의 심사 결과와 관련해 ‘허위 문서’를 작성한 흔적이 드러나기도 했다. 의도적으로 조 기장을 불합격시키려는 정황이 드러난 셈이다. 조 기장은 기자에게 “이런 식으로 기장 시험을 탈락시키는 것은 세계 항공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현재 감사원의 감사가 진행 중이라 곧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조 기장은 “그동안 불합리한 사태까지 오게 된 것에 ‘배후’가 분명히 있다”라고 전했다.
아시아나항공 내 조종사들 상당수 사이에서는 조 기장의 승격 시험 탈락의 배후로 ‘아조협’을 지목하고 있다. 조 기장이 아조협 집단 탈퇴 사태 당시 아조협을 탈퇴하고 노조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조 기장이 승격 시험을 볼 당시 이의를 제기했던 심사관 이 씨는 아조협에서 재무국장을 역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조협을 탈퇴했던 조종사들 사이에서 이 씨는 아조협의 ‘행동대장격’으로 불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번에 착륙사고를 일으킨 아시아나항공 보잉777과 같은 기종의 조종석 모습.
이밖에도 사내에서의 아조협 ‘파워’는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정식 노조는 아니지만 사측과의 일정 부분의 교섭을 계속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일요신문>이 취재한 아조협의 ‘2011년 1차 안전운항공동협의회 회의록’에 따르면 ‘회사는 안전운항공동협의회 사무실을 제공한다’ ‘조종사협회 임원에 대해 월12일의 협회 근무일을 제공한다’ ‘회사는 아시아나항공 상조회 운영자료 및 감사결과 자료를 조종사 협회에서 요청 시 자료를 제공한다’ ‘중, 소형기로 ETOPS(Extended-Range Twin-engine Operations, 엔진이 두 개 달린 비행기의 운영 구간) 구간을 4시간 이상 비행 시 수당 지급을 협의한다’ 등 사측과의 구체적인 교섭 내용이 담겨있다. 뿐만 아니라 2011년 9월에는 텔레피아(아시아나항공 사내 커뮤니티)에 아조협의 명의로 사측이 공식 아이디를 제공한 증거가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 아조협 기획국장은 “앞으로 회사와의 모든 요청사항 및 회신은 이 아이디를 통해 공식적으로 이루어진다”며 “회사에 요구한 사안이나 통보받은 사안에 대해서 협회원들에게 바로 전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전하고 있다. 이에 한 조종사는 “사조직과 회사와의 사적연락을 위한 회사 내 메일을 부여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편 아시아나항공 측은 아조협이 ‘단순한 친목 단체’ 이상은 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아조협은 정식 노조가 아니라 조종사들끼리의 단순한 친목 단체일 뿐”이라며 “불이익을 주거나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조협이 친목 단체를 넘어섰다는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은 상황이다. 앞서의 조종사는 “아조협은 회원들의 회비를 걷고 사측으로부터 중앙공제를 받는다. 이것이 정말 단순한 친목단체인지 의문스럽다”며 “회사의 지원을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사조직의 모습이 마치 ‘하나회’를 연상케 한다. 하나회가 국가를 무대로 한 군대 사조직이라면 이것은 회사를 무대로 한 군대 사조직이라고 한다면 딱 맞다”라고 전했다.
현재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의 원인은 정확한 조사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다. 하지만 2년 전 화물기 추락사고에 이어 이번 샌프란시스코 공항 추락사고까지 연이어 대형사고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조종사들의 능력보다 연줄을 우선시 하는 스케줄 조정과 조종사 조합 등에 기인한 것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항공 스케줄 아조협이 관리? 그날 ‘죽음의 공항’ 일정도… 샌프란시스코의 공항계기착륙장치는 사고 한 달여 전부터 고장 난 상태였다고 전해진다. 사고가 날 만한 여건이 충분했던 셈이다. 이 사실이 지난 6월 10일경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들에게 공지되자 일부 조종사들이 착륙임무를 맡지 않으려고 비행 스케줄을 조정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스케줄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일부 기장들 사이에서는 고성이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비행 스케줄 조정 업무는 운항본부에서 총괄하고 있다. 운항본부가 항공기 운항에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곳 역시 아조협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게 일부 조종사들의 주장이다. 운항본부장이 은진기 전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은진기 전무는 아조협의 설립 때부터 배후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조종사는 “기장과 부기장 한 조를 짤 때도 아조협 출신만 따로 빼는 경우가 있다”며 “사실상 스케줄을 쥐고 있는 것은 아조협인 셈”이라고 전했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은진기 전무와 아조협의 관계에 대해 별다른 답변이 없는 상태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
‘아조협’의 기장승격 심사 관련 허위내용 이의제기 및 항공스케줄에 영향력 행사 관련 정정보도문
본지는 2013. 7. 15. 인터넷 일요신문(http://www.ilyo.co.kr) 홈페이지와 같은 달 21. 발행한 일요신문 사회면에 “‘하나회’ 방불 아시아나항공 사조직 ‘아조협’ 실체”라는 제목의 글에서 ‘아조협’ 소속의 이 아무개 기장이 노조 소속 조 아무개의 기장승격 심사에 심사관으로 참여하여 허위내용으로 이의를 제기하여 불합격하게 하였고, ‘아조협’이 아시아나항공의 항공스케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취지의 기사를 게재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확인 결과, 기장승격 심사는 국토교통부 소속 정부심사관이 담당하는 것으로서, ‘아조협’ 소속의 이 아무개 기장은 노조 소속 조 아무개의 기장승격 심사를 보조하기 위하여 교관 자격으로 동승한 사실이 있을 뿐, 허위내용으로 이의를 제기하여 불합격하게 한 사실은 없으며, ‘아조협’이 아시아나항공의 항공스케줄에 영향을 미치는 사실도 없음이 밝혀져 이를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