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압구정, 신사역 일대 성형외과 밀집지역. 요즘엔 성형외과도 실력보다 자본력과 마케팅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성형외과 시장에서도 ‘대박’은 로또 맞을 확률이나 다름없다”며 성형 시장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최근 성형외과도 대형화, 체인화가 되면서 소규모로 운영하는 병원들은 살아남기가 힘든 지경이란다.
홀로 병원을 운영하는 강남의 한 성형외과 의사는 “이 바닥에서 혼자 병원을 꾸려나가기는 쉽지 않다. 요즘은 성형을 기본으로 피부과, 치과, 교정의학과까지 한 건물에서 해결하는 토털 형태로 나아가고 있어 소규모 병원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며 “의사 커뮤니티사이트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성형외과가 있던 건물이 매물로 나온다”고 말했다.
이처럼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사정에 ‘그래도 기본은 한다’는 강남 입성에 대한 경쟁도 치열하다. 청담, 압구정, 신사, 논현, 신논현, 강남역을 연결하는 일명 ‘강남 성형타운로’는 성형시장의 최전방 전쟁터인 동시에 꿈의 땅이다. 성형외과 의사들이 강남을 선호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성형을 원하는 환자들이 강남에 가장 많이 몰리기 때문이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성형을 받기 위해서 서울행을 불사하는 시대라 기를 쓰고 강남에 진입하려 한다. 또한 강남에 병원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실력을 떠나 환자들에게 상당한 신뢰를 준다는 이유도 작용한다.
하지만 성형의 메카라 불리는 강남 입성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게 의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진입장벽이 높을뿐더러 제대로 인프라를 갖추지 않고 섣불리 개업할 경우 쪽박신세를 면치 못하기 때문. 인프라라 함은 연륜과 실력은 기본이고 거기에 금전적인 여유까지 더해져야 한다.
영화 <닥터>의 한 장면.
이런 현상을 보이는 곳은 비단 강남뿐만은 아니다. 아직까지 강남만큼은 아니지만 부산의 서면과 해운대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부산 일부 지역이 성형의 새로운 메카로 떠오르면서 새로운 먹잇감을 차지하기 위한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들의 진출도 이어지고 있다. 강남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동시에 주말이나 휴무일엔 부산으로 출장 가는 의사들의 모습도 이제는 익숙하다.
이 같은 과도한 경쟁과 업무스트레스에 일부 성형외과 의사들은 정신적인 질환까지 호소하고 있다.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일하는 김 아무개 사무장은 “의사들과 만나는 자리가 많은데 대부분 비슷한 얘기를 한다. 자신들은 단순노동을 할 뿐이라고. 크게 집중하지 않아도 절로 손이 움직인다는 말도 한다. 더욱이 성형외과는 직접적으로 생명을 살리는 의술이 아니라 의사로서의 보람도 적단다. 갈수록 경쟁은 심해지지, 보람은 없지, 스트레스를 받다 결국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형을 해주는 의사들의 민낯은 자본의 굴레에 찌들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코를 왜 0.2㎝나 더 높였냐”
성형외과로 실습을 나갔던 한 의대생은 “동기들끼리 얘기해보면 성형외과와 정형외과가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수술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뼈를 다루는 수술일 경우 장정들도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체력적인 소모가 상당하다”며 “그보다 더 힘든 건 환자를 상대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다. 우스갯소리지만 성형외과와 정형외과는 환자들이 ‘쌩쌩’해서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의사들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환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동안 어디에서도 말하지 못했던 성형외과 의사들의 솔직한 ‘기피환자 유형’을 들어봤다.
# 재탄생을 꿈꾸는 유형
아무리 성형수술이 대중화 됐다고 하지만 막상 수술대에 오르기까지는 수많은 고민이 교차한다. 만만치 않은 비용,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 수술 후 주변의 시선까지 생각하다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바꾸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사숙고 끝에 성형수술을 결심하다 보니 결과에 지나치게 기대를 거는 이들이 많다. 눈만 커지면 자신이 배우 뺨치는 외모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는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 “다시 태어나는 방법밖에 없다”는 의료진들의 현실적인 조언에도 기대를 버리지 못하다가 수술 후 의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환자들도 부지기수다. 때문에 의사들도 성형수술에 너무 높은 기대를 가진 환자들을 만나면 가끔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단다.
# 전문의 뺨치는 유형
요즘은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성형수술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덕분에 병원을 찾기 전 이미 전문의 수준의 지식을 갖춘 환자들도 심심치 않게 만나 볼 수 있다.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에서 상담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 아무개 씨는 “수술 방법을 정해주는 환자부터 마취약 투여 양까지 간섭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환자들은 복불복이다. 성형수술 결과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오기에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병원을 뒤집거나 둘 중 하나다. 항의도 상당히 구체적이다. 자신은 1㎝의 코 높이를 원했는데 왜 1.2㎝나 되냐면서 따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마음의 병을 가진 유형
우울증 같은 정신적인 질환을 앓고 있거나 성형수술 실패를 겪은 환자들을 상대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들은 마음이 여려 쉽게 상처를 받기 때문에 상담조차도 원활히 s진행하지 못할 때가 많다. 게다가 상담 중에도 수십 번 마음을 바꾸는 통에 수술 날짜를 잡기까지 오랜 시간을 요한다.
때문에 일부 성형외과 의사들은 “너무 많은 정보를 알고 오는 사람들도 부담스럽지만 그보다 갈팡질팡하는 환자들이 더 힘들다.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기 어려우니 수술도 쉽지 않다. 게다가 수술을 마치고 나서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눈치를 보이면 잘못된 선택을 할까 무섭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 험담을 즐기는 유형
간혹 자신도 성형수술을 했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환자들도 있다. “수술을 해도 얼굴이 그 모양이다” “걔는 성형수술 해놓고 모태미인이라 우기는 게 꼴사납다” “비밀인데 그 사람 가슴도 수술했다” 등의 험담을 즐기기도 한다.
그런 환자들이 가장 싫다는 한 성형외과 의사는 “아무리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사람이라도 인격이 부족하면 곁에 두고 싶지 않듯 환자도 마찬가지다. 내 경험에 따르면 이런 환자들은 수술 결과가 좋아도 나쁜 소문을 내고 다닌다. ‘성형외과 의사면서 너무 못생겼다’는 인격적인 모욕도 서슴지 않는 사람도 봤다. 그러다 보니 상담 중 남의 험담을 하는 환자들을 보면 자연스레 거리를 두게 된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