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당후사보다 선국후당이다. 국가가 먼저다. (아이로니컬하게도 10년이 지난 현재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화록 공개가 요구되고 있지만) 2003년 대북송금 특검 때 노무현 정부에서 2000년 6·15 정상회담 공개를 요구한 적이 있다. 그때도 난 반대했다. 이거 공개한다면 외교사적 오점을 남기는 거다. 누가 우리 정상 만나서 속말을 꺼내겠나. 2002년 5월 박근혜-김정일 회담 당시 대화록은 현재 북한만 갖고 있다. 그것을 북한이 공개한다면 한국 정부는 조작이라고 할 것인가. 이런 혼란을 왜 예상 못했나.”
―당으로부터 ‘경고장’까지 받았다.
“사전에 김한길-전병헌 지도부에 양해를 충분히 구했다. 내가 만약에 찬성한다면 그것은 역사에 대한, 김대중에 대한, 박지원에 대한 부정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난 할 수 없다고 했다. 당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반대표를 누를 때도 투표 마감 직전에 눌렀다. 물론 당 지도부도 ‘칼을 뺄 때 뺐어야 하지’ 하는 아쉬움도 있다. 서신(경고장) 보내와서 그냥 보고 웃고 말았다.”
―당 지도부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문재인 의원이 요즘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반면 정작 당 지도부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어떤 지도부가 민주당을 맡더라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어찌됐건 지난 대선에서 예상치 못한 패배를 당했고 박근혜 정부 임기 초반 드라이브를 건 상황이기 때문에 민주당이 국민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도 그렇고. 물론 김한길-전병헌 지도부가 열심히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취약한 환경에 있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그 두 사람이 데미지를 입으면 당이 힘들다. 불만이 있더라도 침묵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다.”
―문재인 의원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문재인 의원의 충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성급했다. 48%의 국민적 지지를 받는 대선후보였고, 앞으로도 대통령을 꿈꾼다면 좀 더 크게 봤어야 한다.”
―문재인 의원 스스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에 찬성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그렇게 보진 않는다. 순수하게 본다. 충정은 알겠다. 하지만 이미 국민 과반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신뢰하고 새누리당, 국정원, 청와대를 불신하고 있다. 이긴 싸움을 왜 또 전쟁으로 몰고 가느냐, 이 말이다. 그건 좀 이해가 안 된다.”
―국정원 개혁에 대한 입장은.
“국정원에 명예가 어디 있나. 음지에서 국가를 위해 죽는 사람들이. 지금 국익을 버리고 공개한 거다. 외신은 ‘다른 나라는 정보기관이 숨기기 급급한데 한국의 국정원은 다 까발린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건 국정원이 아니라 국가망신원이 됐고, 국민걱정원이 됐다. 결자해지해야 한다.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하고 국정조사 철저히 해서 사법처리해야 한다. 그게 국정원 개혁의 첫 걸음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원 셀프개혁? 누가 개혁 대상인데, 누가 누구를 개혁하는가. 셀프개혁을 어떻게 하나.”
―얼마 전 “새누리당의 정치공작이 있는 파일이 더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해 줄 수 없나.
“그 이상 얘기할 수 없다. 이제 국조특위가 구성됐기 때문에 그 분들 몫이다. 내가 삼라만상 다 나설 순 없는 일 아닌가.”
―뭔가 있긴 한 건가.
“부인하지 않겠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초입부터 비핵화를 요구하진 않는다. 굉장히 중대한 사안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전된 것은 사실이다. 많이 기대했다. 국제적 상황도 전 정부 때와 비교해 소프트해졌다. 미국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했을 때 봐라. 백 번 생각해봐도 북한이 방방 뛰어야 했는데 성명 한 번 내고 끝났다. 북미 뉴욕라인도 살아있지만, 뭔가 북미 간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미국도 이해관계를 마쳤고. 얼마 전 북한에 특사를 보낸 일본도 미국의 손바닥 안이다. 북한도 최룡해 총정치국장을 중국으로 보내 대화 의사를 피력했다. 남은 건 우리다. 우리도 대화 안 나설 수 없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