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살고 있는 친구의 남편인 A는 태권도 사범이다. 현재 태권도장을 여러 개 운영하고 있는 미국 교포인 A는 매일 일에 치여 사는 ‘워커홀릭’이다. 척 봐도 남성미가 철철 넘쳐흐르는 데다 운동선수 특유의 다부진 몸과 화통한 목소리를 보면 그야말로 요즘 말하는 ‘상남자’다. 그런데 이상하게 A는 밤일에는 통 관심이 없다. 낮에는 그렇게 열정적이었던 사람이 밤만 되면 물먹은 솜처럼 축 처져서 ‘힘들다’ ‘피곤하다’며 쓰러져 자기 바쁘다. 이런 남편을 보는 친구는 자존심이 잔뜩 상해 밤마다 이렇게 생각한다. ‘이 남자는 내가 여자로 보이긴 하는 걸까.’
주변 아줌마들에게서 조언을 얻은 친구는 ‘남편을 자극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남편의 생일을 맞아 일부러 야한 속옷과 구두를 장만한 친구는 부끄러움 반 오기 반 심정으로 그날 밤을 공략했다. “당신 생일 선물은 바로 저예요”라는 야시시한 멘트도 잊지 않았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그날 밤 부부는 실로 오랜만에 잠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기분은 좋았지만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친구는 “매번 꼭 이렇게 구걸하듯 해야 하나?”라며 자존심이 상한다고 말했다. 이미 부처의 마음으로 초월한 친구는 나름 이런 결론을 내린 상태다. 소위 말하는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다. 사람이 갖고 있는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그 에너지를 일에 쏟아붓다 보니 남는 에너지가 얼마 안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포츠센터에서 알게 된 친한 동생의 남편인 B는 깔끔하고 스마트한 외모를 지닌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는 샐러리맨이다. 내가 호감형 스타일이라고 칭찬하자 그 동생은 “그게 다예요. 언니”라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이 부부의 가장 큰 문제는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잠자리를 가진 횟수가 지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B가 잠자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몇 번이나 설득도 해보고, 달래도 봤지만 허사였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고, 아이를 갖고 싶어도 남편이 저러니 이미 아이를 포기한 지도 오래다.
이 동생이 내린 결론은 B의 못말리는 ‘완벽주의자 기질’과 ‘호기심 많은 성격’ 탓이다. 동생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고 말해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B는 밤일을 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또한 아내에 대한 호기심이 없어진 것도 그가 잠자리를 멀리하는 이유다.
성형외과 원장인 C는 겉으로는 남성미가 넘치지만 안으로는 감수성이 발달한 소년 같은 남자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가끔 아내와 아들이 외출한 주말, 혼자 집에 남아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사색에 잠길 때다. “그럴 때면 미치도록 행복해요”라고 C는 말한다. 여자에게 딱히 관심이 없다 보니 다른 데 가서 한눈을 파는 것도 아니다. C는 “아내한테 솔직히 미안하긴 해요. 그런데 어쩔 수 없어요. 관심이 없는 걸 어떡해요”라고 말했다.
초식남도, 그렇다고 육식남도 아닌 이런 남자들이 생각보다 주변에 많은 걸 보면 요즘 대세는 잡식남인 모양이다. 단, 낮에는 초식남이고 밤에는 육식남이냐 아니면 그 반대냐가 문제이겠지만 말이다.
김태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