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3일 국회 연설을 통해 “재신임 방법은 국민투표가 옳고 투표시기는 12월15일 전후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현행 헌법 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헌법을 기계적으로 해석하면 순수하게 재신임만 묻는 국민투표는 위헌논란이 있을 수 있다.
민주당은 13일 노 대통령 시정연설 직후 이 같은 점을 지적하면서 사실상 반대입장을 정했다. 한나라당도 사실상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물론 서울대 권영성 교수 등은 대통령의 재신임을 묻는 자체가 초헌법적 사안임으로 헌법 규정과 상관없이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국민투표를 반대하는 이상 재신임 국민투표는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국민투표가 이뤄지지 않으면 정국은 내년 총선까지 첨예한 대립구도가 형성될 전망이다. 재신임 국민투표를 주장하는 노 대통령 및 통합신당과 국민투표를 반대하는 한나라당 및 민주당이 서로 자기 주장의 명분을 잡기 위해 상대에 대해 무차별 공세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여론의 압박으로 순수 재신임 국민투표에 대해 정치권이 동의하더라도 또 다른 고비가 남아 있다. 민주당측이 13일 제기한 국민투표법 개정이 그것이다. 현행 국민투표법 1조(목적)는 국민투표를 헌법 제72조 규정이나, 헌법 제130조의 헌법개정의 경우에 한해 실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이 조항을 개정, 대통령 재신임을 추가해야 한다.
국민투표의 효력에도 문제가 있다.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의 경우 ‘유권자 과반수 투표에 과반수 찬성’이라는 효력조건이 명시돼 있다. 그러나 정책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는 찬성과 반대, 무효표 등 숫자만 확정 공표토록 돼 있다. 따라서 국민투표법을 개정할 경우 대통령 재신임 투표의 효력에 대해서도 헌법개정 방식을 따를지 정책 찬반 투표 방식을 따를지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 민주당 박상천 대표는 국민투표법 개정은 입법 사항으로 국회에서 처리돼야 한다며 4당 대표회담을 제의했다. 만약 4당이 모여 국민투표법 개정을 논의한 결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민투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2. 국민투표서 재신임받을 경우
국민투표를 통해 재신임을 받을 경우 노무현 대통령은 일거에 정치적 리더십을 회복하면서 총선까지 정국 주도권을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지난 8개월여에 걸친 국정운영에 대해 야당과 메이저 언론으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았고 이에 따라 국민 지지도도 30~40%대로 급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재신임을 받음으로써 기존 국정운영 목표와 방식을 고수할 새로운 동력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일단 총선이 임박한 만큼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개정 등 정치개혁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부동산값 안정 대책을 포함한 경제개혁이나 권력기관 제자리 찾기, 언론개혁 등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노 대통령의 재신임은 통합신당의 신당 창당 작업에 상당한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통합신당의 영입작업을 포함한 세 확산 작업은 탄력을 받게 되면서 내년 총선에서 선전이 기대된다.
반면 대선 8개월 만에 다시 국민의 심판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은 국회 과반수 의석 보유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위상에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역시 정치적 명분과 실리를 모두 통합신당에게 내주고 급격한 세 위축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상황이 전개되면 정치권은 노 대통령-통합신당-제 정치개혁세력 등 개혁세력 대 한나라당-민주당-자민련 등 기존 세력으로 재편되고 총선 구도 역시 같은 대립구도로 전개됨으로써 개혁세력의 원내 1당 부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의 재신임 제안 직후 이틀간 실시된 각 언론사들의 여론조사 결과, 예외없이 재신임이 불신임을 앞섰다. 물론 이 같은 결과는 노 대통령 개인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대통령 불신임에 따른 국정 혼란을 국민들이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향후 상황전개에 따라 여론의 흐름이 바뀔 수도 있다.
3. 불신임을 받을 경우
국민투표법을 개정, 어떤 투표 결과를 ‘불신임’으로 규정할지를 명시적으로 밝힌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불신임을 받는다면 정국은 엄청난 소용돌이 빠져들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제안으로 실시된 재신임 국민투표에서 불신임을 받을 경우 법률적 규정에 상관없이 하야할 것이 확실시 된다. 노 대통령이 하야하면 일단 고건 총리가 대통령 대행을 맡은 상태에서 60일 이내에 대통령 보궐선거를 치러야 한다.
현재의 4당이 각각 후보를 내세워 대선을 치를 수도 있지만 이전에 개헌 논의가 본격화될 수 있다. 만약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내각제 개헌을 주장할 경우 자민련까지 이에 합세함으로써 내각제 개헌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내각제 개헌이 이뤄지면 대통령 보궐선거는 치러지지 않고 내년 총선에서 다수당을 차지한 정당이 여당이 되고 여당 대표가 총리에 오르게 된다. 여당이 된 정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정국안정을 위해 개헌에 동조한 정당이나 정치적 색깔이 비슷한 정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되는데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이 동참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개헌은 국회의원 3분의 2의 동의를 얻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다시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현재 국민여론은 여전히 대통령제를 내각제보다 선호하고 있다. 각 당의 내부 사정도 간단치 않다. 국회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경우 이회창 전 총재측 의원들은 이 전 총재의 나이 등으로 대권 3수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 내각제 개헌을 선호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나라당 내 대권후보로 꼽히는 손학규 경기지사나 이명박 서울시장 등과 소장파들은 대통령제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추미애 의원 등이 한때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한나라당이나 통합신당 정동영 의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중이 떨어져 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각 당의 입장에 미묘한 차이가 있는 만큼 개헌이 이뤄지더라도 내각제와 같은 급격한 정치체제의 변화보다는 대통령 중간평가의 성격을 갖춘 대통령 4년 중임제가 도입될 가능성도 있다.
반면 개헌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현행법에 따라 노 대통령 하야 후 60일이내에 대통령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일단 대통령 보궐선거가 치러지면 상대적으로 많은 대선후보를 보유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통합신당이 정국을 양분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민주당이 지난 대선과정에서 단일화 후보로 거론했던 정몽준 의원을 영입할 경우 3당 간의 대결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한나라당의 경우 이회창 전 총재의 정계복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손학규 지사, 이명박 의원 등을 중심으로 세력 개편이 될 수도 있고 최병렬 대표가 ‘의욕’을 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통합신당에서는 역시 정동영 의원이 유력한 후보로 떠오를 전망이다.
일단 보궐선거가 치러지면 이후의 총선에서는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에게 상당히 유리한 상황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은 13일 시정연설에서 불신임될 경우 2월15일까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4월15일 대통령 보궐선거와 총선을 함께 치르자고 제안했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제안은 대선과 총선을 일거에 치름으로써 최선의 경우 재집권과 원내 1당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만약 대선을 먼저 치를 경우 통합신당이 다시 선전, 재집권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그대로 온존하고 있는 데다 유권자의 경계심리로 또다시 원내 1당을 야당에 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은 통합신당의 이 같은 의도를 간파하고 반대 입장을 밝힐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불신임된 이후 일정에 대해서도 양측간에 지리한 논란이 예상된다.
4. 정책 연계 국민투표 가능성
지난 12일부터 청와대측에서는 대통령 재신임 국민투표를 둘러싼 위헌논란을 감안, 정치개혁과 재신임을 연계하는 국민투표 방안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유인태 정무수석은 12일 기자들과 만나 “책임총리제를 전제로 중·대선거구제나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 등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 개선을 대통령 재신임과 연계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문재인 수석도 “헌법 72조가 국민투표 요건으로 외교 국방 통일을 나열한 뒤 기타 사항으로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적어놔 외교 국방 통일과 관계없는 분야의 정책사항이라도 가능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해 유 수석의 입장을 지지했다.
이 같은 정책까지 연계된다면 노 대통령의 재신임 가능성은 70~80%대로 수직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 방식은 노 대통령이 순수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한 데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부정적인 입장을 보임에 따라 채택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개헌을 연계한 국민투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