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취업포털이 얼마 전 내놓은 설문결과가 흥미롭다. 조사 대상 직장인들 중 70%에 가까운 비율이 ‘테크노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고 있다고 답한 것. 테크노 스트레스는 컴퓨터(테크노) 불안형과 의존형으로 분류된다. 스마트폰을 비롯해 새로운 개념의 IT 기기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일부 직장인들 사이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테크노 불안형’은 과장급 이상, 특히 부장급에서 그 정도가 심하다. 외식 관련 업체에 근무하는 S 씨(42)는 얼마 전 스마트폰을 구입했다. 해외매장 개설 때문에 외국 출장이 잦은 그에게 꼭 필요한 아이템이라고 추천받았지만 아직은 애물단지다.
“전화 걸고 받고 하는 것 외에도 수많은 기능이 있지만 아직은 10% 정도밖에 사용할 줄 모릅니다. 터치폰 자체도 낯선 데다 용어도 익숙하지 않아서 하루 종일 만지작거려도 원하는 기능을 사용하려면 한참을 헤매죠. 옆자리에 앉은 대리는 몇 번 만지더니 일정 관리하는 부분까지 척척 알아내더군요. 같은 질문을 계속 하기도 창피스럽고 해서 혼자 해보려고 하는데 쉽지 않아요. 밖에서는 요금폭탄이라도 맞을까봐 함부로 무선 인터넷 사용도 못하고…. 스스로 바보 같다는 생각까지 드네요.”
S 씨는 업무시간에도 종종 휴대폰을 붙잡고 씨름하지만 좀처럼 손에 익지 않는단다. 그는 “내가 젊었다면 대리처럼 손쉽게 사용할 수 있었을까, 나이가 어렸어도 쩔쩔매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자신감이 없어지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젊은 부하직원들이 부러운 상사는 특히 영업 쪽에서 두드러진다. 각종 첨단기기로 무장한 ‘젊은 피’들은 현장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며 승승장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약회사 영업 10년차에 접어든 K 씨(39)는 영업 새내기들의 활약을 보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는 노트북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스마트폰을 갖고 다니는 직원들은 달라요. 번거롭게 노트북을 켜거나 배터리 닳을 걱정 없이 실시간으로 결재를 올립니다. 위치 전송받아 보내고 계획서 제출하고, 이메일로 경과보고해서 바로 결재를 받는데 번개 같더군요. 빠른 의사결정 때문에 고객 반응도 좋죠. 굳이 회사에 복귀하지 않아도 되니 직원 입장에서도 편하고요. 완벽하게 모바일 오피스를 구현하는 모습을 보면서 좀 다급해진 게 사실입니다. 아직은 영업력에서 인맥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제가 유리한 면이 있지만 점점 젊은 친구들과의 격차가 줄어드는 것 같아 불안하죠.”
스마트폰 같은 최신 기기 말고도 기본적으로 컴퓨터 자체가 주는 불편함은 40대 이상의 세대에게 작지 않다. 인터넷이라는 신세계를 열어줬지만 오히려 컴퓨터에 지배당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은 것. 패션업계의 L 씨(45)는 지급받은 노트북 때문에 골치다.
“처음 노트북이 지급됐을 때 산뜻하고 좋았죠. 근데 너무 느렸어요. 같은 기종을 받은 다른 직원들을 보니까 가벼운 운영체제로 갈아타고 날아다니더군요. 손대기 어려워서 부하직원에게 부탁해 속도 문제는 해결했지만 그 뒤로도 문제는 계속 됐습니다. 수시로 팝업창이 뜨고 선택을 해야 하는데 뭐가 뭔지를 모르겠는 겁니다. 괜히 바이러스라도 걸릴까봐 겁이 나서 인터넷 뱅킹 같은 건 엄두도 못 내고 있어요. 부장 체면에 자꾸 물어보기도 그래서 그냥 참고 쓰는데 책이라도 사서 공부해볼까 해도 머리가 아파요.”
L 씨는 파워포인트나 포토샵을 이용해 화려하면서 완벽한 프레젠테이션을 해내는 직원들을 보면 씁쓸하다. 자신이 자꾸 뒤처지는 듯하고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단다. 그는 “스스로 기계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기분”이라며 “최신 IT 기기들이 출시될 때마다 남의 일 같으면서 한편으로 속이 쓰리다”고 털어놨다. 중소기업 영업이사 J 씨(53)도 같은 심정이다. 컴퓨터라고는 인터넷 검색밖에 할 줄 모르는 그에게 컴퓨터 사용은 매일 매일이 도전이다.
“이메일에 사진을 어떻게 첨부하고 또 어떻게 다운받는지 압축된 파일은 어떻게 봐야 하는지 등등 모든 것이 다 어색합니다. 압축된 파일도 그냥 클릭만 하면 되는 파일이 있고 아닌 게 있고 복잡해요. 다운받은 파일이 대체 어디에 저장돼 있는지 몰라서 한참을 헤맬 때도 있어요. 부하직원 시키는 것도 한두 번이고, 걔네는 또 얼마나 짜증나겠습니까. 제 또래 직장인들에게 IT 기기들은 넘어야 할 또 다른 산입니다.”
이렇게 몰라서 스트레스를 받는가 하면 너무 잘 알아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있다. 비교적 나이가 어린 직장인들은 IT 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M 씨(여·28)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트위터’를 하고 하루를 마감하는 것도 트위터를 통해서 한다.
“한 번 그 재미를 알면 헤어 나오기 힘들어요. 글자 수가 140자로 제한된 마이크로 블로그라고 보면 되는데 ‘팔로어’를 맺은 친구들과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어요. 글을 올리면 바로바로 반응이 오니까 계속 붙들고 있게 되죠. 하루는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와서 출퇴근하면서 오가는 길에 트위터를 못하니까 정서불안처럼 안정이 안 되더라고요. 정말 중독수준이구나 싶었죠. 하루 종일 집중도 안 되고 심지어 사이버 마약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소프트웨어 회사에 근무하는 O 씨(31)도 새로운 기술에 민감하다. 직업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다는 걸 용납할 수 없다.
“휴일에도 관련 책을 붙잡고 있게 됩니다. 일상의 모든 것이 IT 기기들을 통해서 이뤄지죠. 출근할 때 보면 미니 외장하드, 넷북, 스마트폰, MP3 등 생각해보니 아날로그적인 물건이 거의 없네요. 이 가운데 하나라도 빼고 외출하는 날에는 영 찝찝해 빨리 집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안 들죠.”
많은 직장인들이 이렇게 테크노 스트레스에 시달리지만 IT 제품들 자체를 즐기면서 하나의 취미로 승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온라인에서 얼리어답터로 활약하는 평범한 40대 직장인 P 씨(43)는 IT 제품을 테스트하고 분석하는 걸 즐긴다. 처음에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이제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의 활용기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고 누리꾼들의 댓글에 힘을 얻는 그에게 ‘테크노 스트레스’는 없단다. 그는 “취미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언젠가 스스로 즐기게 된다”고 조언했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