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건설 주가 변동 그래프 | ||
2008년 12월 22일 한일건설은 리비아의 대형 공사를 수주했다고 공시했다. ‘리비아 수도개발국과 1조 1595억여 원 규모의 4000가구 주택 디자인빌드(D&B·건설사가 기획부터 시공까지 전 과정을 담당하는 방식) 프로젝트 사업 계약을 맺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공사는 한일건설의 매출액 대비 207.83%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이 같은 호재가 전해지면서 당시 한일건설 주가는 연일 상승세를 기록했다. 공시를 한 12월 22일 한일건설 주식거래량은 26만 6525건으로, 직전 거래일 거래량(8만 3264건) 대비 3배가 넘게 뛰었다. 22일 종가는 5290원으로 전일대비 15%나 올랐고 이틀 후인 24일에는 장중 한때 최고 6940원에 거래될 정도로 상승세를 기록했다.
그런데 최근 증선위 조사 결과 한일건설이 리비아와 추진했던 당시 계약에 합의한 시점이 사실은 공시한 날보다 2달여 앞섰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리비아 수도개발국과 계약서를 작성한 날짜가 2008년 10월 14일경이었다는 것.
흥미로운 것은 당시 한일건설이 주가가 급락해 금융당국으로부터 소명을 요구받은 난감한 상황이었다는 점. 그해 10월 20일, 증권선물거래소(현 한국거래소)는 한일건설에 주가가 급락한 이유에 대해 조회공시를 요구했다. 다음날 한일건설은 공시를 통해 “최근 당사 발행주권의 현저한 시황변동(주가급락)에 영향을 미칠 사항으로 현재 진행 중이거나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만약 당시 리비아와 공사 수주 계약을 알렸다면 한일건설은 이런 의혹으로부터 충분히 벗어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두 달여의 시간을 끌면서 가장 큰 득을 본 것은 다름 아닌 한일건설의 지주회사 격인 한일시멘트의 허동섭 회장과 그의 동생이자 계열사 한덕개발의 허남섭 회장 및 한일건설 경영진이다. 이들은 주가가 바닥을 헤매던 10월 24일(종가 2695원)경부터 27일(종가 2560원) 사이에 한일건설 주식을 대량 늘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최근 증선위에서는 당시 “이유를 알 수 없다”던 주가 급락 시점에서 한일건설 관계자들이 주식을 사들인 정황에 주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올해 초 관련 의혹 조사에 들어갔고 이 과정에서 한일시멘트 오너 일가 및 경영진이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득한 혐의를 잡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리비아 공사계약 수주 공시 전 허 회장은 한일건설 S 상무에게 지시해 주식 16만 주를 매수했고 공시 후 주가 급등으로 인한 매매차익(부당이득) 5억여 원을 S 상무와 함께 나눈 혐의를 받고 있다. 허 회장의 동생 허남섭 한덕개발 회장(전 한일건설 회장) 역시 같은 기간에 주식 20만 주를 매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해서 발생한 차익은 6억여 원으로 추산된다.
또 이들 오너 일가 외에도 경영진 일부 역시 비슷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일건설 사외이사 K 씨는 오너들이 주식을 매매한 기간과 비슷한 시기에 한일건설 주식 5만 주를 사고팔아 1억 5000만여 원의 차액을 남겼다. 허남섭 회장에게 정보를 얻은 한덕개발 C 전무도 15만 주를 매매해 4억 2000만여 원의 차익을 얻은 혐의를 받고 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또 다른 경영진도 당시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주식편취를 했을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사실을 밝혀낸 증선위는 최근 한일시멘트그룹 허동섭 회장을 검찰에 고발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검사 박진만)에 배당돼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금조3부는 금융·경제 수사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미에서 지난 1월 신설된 곳. 검찰에서도 이번 사건과 관련해 더 많은 혐의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간 형제경영을 해 온 한일시멘트그룹인 만큼 회장 외 나머지 오너 일가에게까지 수사 여파가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전자공시 확인 결과 허 회장 오너 일가 중 몇몇은 10월 말경 장내매수를 통해 한일건설 주식을 각각 6만 주에서 8만 주가량 사들인 정황도 나타나고 있다. 증선위 측은 조사 확대 여부에 대해 공식적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해도 구설에 휘말릴 수 있고 조사를 안 받고 있다고 해도 사실이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답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한일건설 측은 이번 금융당국의 조사와 당시 미공개정보 이용 주식 매매 의혹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일건설 관계자는 “10월에는 입찰 의향서를 제출한 것일 뿐 계약이 확정된 것은 12월이었다”면서 “당시 대주주들이 나서서 떨어지는 자사주에 자신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투자한 것이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만약 부당이득을 얻고자 했다면 차명 거래를 통해 거액을 남기지 왜 얼마 안 되는 거래를 굳이 본인 이름으로 했겠느냐”면서 “앞으로 무죄가 입증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반박했다.
한일시멘트 그룹 오너 일가가 사정당국의 조사를 받은 것은 지난 2005년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국세청이 지난 2005년 11월경부터 2006년 2월경까지 한일시멘트그룹 오너 일가의 재산과 관련해 세무조사를 벌여 63억여 원을 추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일시멘트그룹은 1961년 순수 민간자본으로 설립된 시멘트 및 레미콘 제조업체로 국내 시멘트업계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곳이다. 1974년 축산도매업체인 ㈜한일산업을 시작으로 관광업체인 한덕개발, 건설업체인 한일개발 등 계열사를 설립해 사세를 확장해왔다. 이번에 문제가 된 한일건설은 1978년 한일시멘트그룹이 삼원진흥건설을 인수하면서 세운 종합건설업체로 2000년 이후부터 국내외 대형 건축 사업에 참여하면서 이름을 알려온 곳이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