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생활, 미국 야구 적응기
임창용은 조만간 메이저리그 무대에 오를 것 같다며 최상의 컨디션 유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2010년 12월 인터뷰 당시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임창용이 미국 땅을 밟은 건 지난해 12월 18일이었다. 이날 임창용은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에 입단했다. 한국과 일본야구계는 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설마’하던 임창용의 미국행이 현실화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일 야구계는 “37세의 늦은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일본에서 받던 연봉의 50분의 1을 받고 미국행을 선택한 건 더 놀라운 일”이라며 임창용의 결정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이내 “먼저 도전하고 나중에 결과를 생각하는 평소 임창용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며 임창용의 도전에 응원을 보냈다.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한 해 54억 원을 받던 임창용은 컵스에 입단하며 계약금으로 10만 달러(1억 700만 원)를 받았다. 연봉은 그보다 낮은 것로 알려졌다. 그러나 임창용에게 당장의 몸값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임창용은 “항상 최고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꿈을 이루려 도전하는데 당장의 돈이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올 초 미국 애리조나 메사에 위치한 컵스 재활센터에 입소한 임창용은 그곳에서 꾸준히 몸을 만들었다. 아는 이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한적한 시골마을 메사에서 임창용은 시쳇말로 하루가 열흘 같은 세월을 보냈다.
“일본이면 드라이브라도 하고, 지인들도 만나고, 하다못해 오락실이라도 찾아가 스트레스를 풀겠지만, 여긴 훈련 끝나면 갈 곳이 없어요. 그렇다고 아는 사람이 있나, 가까운 곳에 한국 식당이 있길 하나. 무엇보다 날씨가 더워서 뭘 보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아요. 그냥 점심 먹고 집에 들어가면 TV를 보거나 멍하니 있다가 침대에 누워 자는 게 일입니다.”
생활도 생활이지만, 아시아와 다른 미국 문화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야구도 규칙만 같지, 야구 문화는 영 딴판이었다.
“미국은 뭐든 빨리 시작해요. 한국, 일본 같으면 재활훈련을 오전 10시에 시작할 텐데 여긴 오전 7시 30분에 스타트해요. 대신 훈련 종료 시간이 빨라요. 오전 11시 30분 정도에 모든 훈련이 끝나니까요. 따라서 전날 일찍 자는 게 중요해요. 딴짓할 시간조차 없는 셈이죠.”
훈련시간뿐만 아니라 스타일도 달랐다.
“한국이나 일본은 재활이 굉장히 체계적으로 이뤄져요. 무리해서 다시 아프면 안 되니까 하루하루 조금씩 진행하죠. 그런데 미국은 우리나 일본보다 재활훈련 기간이 무척 짧고, 훈련량도 엄청 많아요. 속으로 ‘이러다 다치면 어떻게 하지’하는 불안감이 들 정도예요.”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차츰 시간이 흐를수록 임창용은 미국 야구가 오히려 자신의 스타일과 맞는 것 같다고 했다.
“미국 스타일이 원래 시원시원한가 봐요. 저도 그렇거든요. 재활이 길어지면 복귀도 늦어지고, 부상 재발에 대한 두려움은 더 커지게 마련입니다. 구단이 언제 복귀하라는 소릴 안 하면 넋 놓고 마냥 기다려야 해요. 그런데 미국은 구단이 복귀 날짜를 정하면 그때까지 선수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몸을 만드는 게 기본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그 한계를 뛰어넘으면 바로 평상시대로 돌아가는 미국 스타일이 오히려 제겐 맞는 것 같아요.”
# 싱글A·더블A 살짝 찍고…
1월 초 임창용이 재활훈련을 시작하자 컵스는 “빠르면 7월, 늦어도 8월 초까지 몸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지난해 6월 말 오른쪽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을 받은 임창용으로선 무리한 요구일 수 있었다. 가뜩이나 임창용은 같은 부위를 이미 2005년에 수술한 바 있다. 대개 이런 경우 최소 1년 반 정도의 재활 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임창용은 컵스의 요청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5월 하순 기적적으로 재활을 끝마치고, 본격적인 투구훈련에 들어갔다.
지난 6월 25일(이하 한국시간) 임창용은 LA 에인절스 루키팀과의 경기에서 역사적인 미국 무대 데뷔전을 치렀다. 결과는 1이닝 3피안타 2실점으로 좋지 않았다. 그러나 임창용은 “첫 실전투구라, 제구가 다소 불안정했을 뿐 전체적인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임창용은 이후 루키리그에서 3경기에 더 등판해 평균자책 3.60을 기록하며 재활이 성공적이었음을 증명했다. 이에 고무된 컵스는 임창용에게 “상위리그인 싱글A에서 두세 번 등판해 컨디션을 조절할 것”을 지시했다. 임창용 역시 메사에서 탈출(?)하고 싶었던지라, 메사의 짐을 모두 뺐다.
싱글A에서의 투구는 더 좋았다. 4경기에 등판해 5이닝을 던져 2피안타, 6탈삼진, 1실점하며 평균자책 1.80을 기록했다.
사실 애초 계획대로라면 임창용은 싱글A에서 2, 3경기를 던지고서 트리플A로 올라가야 했다. 구단도 임창용에게 “싱글A에서 호투하면 곧바로 아이오와 컵스(트리플A 팀)로 가서 빅리그 승격에 대비하라”는 언질을 줬다.
헌데 여기서 몇 가지 악재가 겹쳤다. 트리플A 승격을 앞두고 마지막 시험무대인 싱글A 등판이 비로 계속 연기된 것이다. 여기다 트리플A에 유망주들이 넘쳐나며 좀처럼 임창용의 자리도 생기지 않았다. 한술 더 떠 컵스는 뉴욕 양키스에 외야수 알폰소 소리아노를 내주고 유망주 투수 여러 명을 받으려 계획 중이다.
컵스는 “어차피 트리플A는 빅리그 진출을 위한 마지막 컨디션 점검장일 뿐”이라며 임창용에게 “트리플A 대신 더블A에서 몸을 만들고, 그 결과에 따라 빅리그 승격 여부를 고민하자”고 타일렀다.
임창용은 “트리플A든 더블A든 어디서 던지나 상관없다”며 구단의 요청을 수용했다. 그리고 임창용은 25일 더블A 팀인 테네시 스모키스로 승격해 한 게임을 1이닝 무실점 2삼진으로 막은 후 27일 곧바로 트리플A 팀인 아이오와 컵스에 합류했다. 사실상 빅리그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활약 당시 지바 롯데 김태균과 만나 인사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임창용의 컨디션은 최상이다. 싱글A 마지막 등판에서 시속 93마일(150㎞) 강속구를 뿌렸다. 경미하게 느껴지던 팔꿈치 통증도 이젠 잠잠하다. 특히나 투구 밸런스를 되찾은 게 큰 소득이었다.
임창용은 “일본에서 뛸 때처럼 타자에 따라 투구 타이밍을 변화해 던지고 있다. 가령 왼발을 높게 들면 미국 타자들이 속구가 오리라 예상하는데 이때 느린 커브를 던지면 백발백중 헛스윙이 나온다. 내 스스로 투구폼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투구 밸런스를 되찾았다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흡족해했다.
컵스 구단도 지금까지 투구 내용만 보면 당장 빅리그 무대를 밟아도 전혀 무리가 없다고 보고 있다. 임창용의 에이전트 박유현 씨 역시 “빅리그 승격은 8월 중순으로 예상하나 투구 내용만 좋다면 그 이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빅리그 승격 초읽기에 들어간 임창용은 그러나 별다른 감정을 내색하지 않았다.
임창용은 “내가 봐도 늦어도 8월 중순까진 메이저리그 무대에 오를 것 같다”며 “데뷔전에서 망신당하지 않도록 몸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임창용은 앞으로 4세이브만 더 거두면 세계 야구 사상 유례가 없는 한미일 통산 300세이브 달성의 주인공이 된다. 지금 컨디션과 몸 관리라면 300세이브는 물론이려니와 2년가량 더 빅리그에서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이번에도 임창용의 ‘선 도전, 후 결과’가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