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무기명채권은 명동 사채시장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전 전 대통령의 핵심 비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처남 이창석 씨뿐만 아니라 그의 부인 홍정녀 씨도 명동 사채시장에서 ‘5공녀’로 이름을 날렸던 것. 5공화국의 자금을 관리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별명답게 그의 손에선 끊임없이 전두환의 비자금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실제 홍 씨는 지난 2004년 검찰 수사에서 자신의 채권 매입 금융계좌에 전두환 비자금이 포함됐음을 인정한 바 있다.
명동 사채시장. 우태윤 기자
전두환 비자금을 주무른 인물은 비단 홍 씨뿐만이 아니었다. 수십 년간 명동에서 활동해온 한 사채업 관계자는 “채권을 현금화하기 위해 사채시장을 찾은 이들은 하나같이 ‘전두환 비자금’이란 사실을 숨기지 않은데다 워낙 거래단위가 커 눈치 채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번은 대구에서 올라온 평범한 사람이 전두환 채권이라며 현금화를 부탁한 적도 있었다”며 “보통 그들이 맡긴 채권은 중개업자를 통해 증권사로 흘러들어가 현금화되는 과정을 거쳤다. 무기명채권 발행 이후부터 2004년까지는 전두환 채권이 엄청 돌아다녔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2004년 말부터는 전두환 채권을 현금화하려는 이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고 한다. 앞서의 사채업 관계자는 “정말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명동 시장에서 전두환 채권이 종적을 감췄다. 이후 차남 재용 씨의 조세포탈 사건으로 명동이 시끄러웠다. 검찰이 들이닥쳐 전두환 채권의 기록을 찾으려했으나 쉽지 않았다. 무기명채권을 현금화하는 과정은 누구도 기록을 남기지 않아 단서를 잡지 못했던 것이다”며 “이런저런 상황을 종합해볼 때 2004년 전후로 전두환 비자금 세탁이 끝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명동에서는 기정사실화 됐었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