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 교도소에 있는 박노항 전 원사를 면회한 사람들의 명단. | ||
그 해 10월 초까지 5개월여간의 수사 결과였다. 그러나 당초 예상됐던 정•관계 인사들의 병역비리 연루여부는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았다. 박 전 원사가 도피행각을 벌이는 동안 ‘비호설’이 나돌 정도로 그는 아는 것이 많은 ‘병역문제 전문가’였다.
아직까지 정가에서 ‘박노항의 입은 메가톤급 핵폭탄’이라는 얘기가 그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8월 말까지 11개월 동안 박 전 원사를 면회했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신분을 위장했던 것으로 확인돼 그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박 전 원사의 가족이 아닌 사람이 가족으로 신분을 속여 면회를 했던 것. 과연 그들은 누구이고, 또 무엇 때문에 신분을 속였던 것일까. 최근 국방부가 천용택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원사 박노항 면회 신청인 명단’에 따르면 박 전 원사가 구속된 지난해 4월25일부터 8월23일 현재까지 국방부 육군교도소로 그를 면회한 인원은 81회에 걸쳐 2백6명.
하지만 중복된 경우를 제외하면 면회자는 모두 57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친형과 누나, 조카, 매형 등 박 전 원사의 친인척이 25명으로 가장 많았고, 나머지 32명은 모두 친구들이나 동창생 또는 과거 동료로 신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박 전 원사에 대한 면회가 군•검 합수반의 수사가 끝난 지난해 10월 말 영등포구치소에서 국방부 헌병대 육군교도소로 이송된 시점부터 허용된 점을 감안하면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57명이 육군교도소로 그를 찾았던 셈이다.
▲ 박 원사 검거당시. | ||
문제는 이들이 면회신청 때 국방부 헌병대에 신고한 박 전 원사와의 관계다. 박 전 원사의 한 친척에게 확인해 본 결과 기록상의 ‘친인척’ 면회자 25명 가운데 4명은 실제 친인척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12월19일 면회한 것으로 기록된 이아무개씨는 박 전 원사와의 ‘관계’를 ‘친척’이라고 신고했지만 박 전 원사의 형수 유아무개씨는 “처음 들어본 이름”이라고 밝혔다.
유씨는 또 올해 1월16일 면회자 중 자신을 박 전 원사의 ‘형’이라고 신고한 박아무개씨와 기록상의 ‘동생’ 이아무개씨, 이어 6월22일 ‘친척’ 박아무개씨 등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박 전 원사의 친인척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전 원사의 형수 유씨는 친인척들에 대해 “부모님들이 일찍 돌아가셨고 먼 친척도 별로 없어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안다”면서 “내가 모르는 친인척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씨의 설명대로라면 사실과 다르게 가족관계를 도용한 문제의 4명이 최소한 자신의 신분을 숨기려 했던 것은 분명한 듯하다. 또 면회 때 박 전 원사와의 관계를 친구 또는 선•후배로 신고한 이들 중 일부도 허위로 관계를 적었을 개연성도 적지 않다.
지난해 12월 ‘선배’로 신고한 박아무개씨의 경우 올해 1월 다시 면회할 때는 박 전 원사의 ‘친구’로 적었던 것. 물론 ‘동명이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또 국방부 헌병대 실무책임자의 단순한 행정착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경우가 모두 아니라면 이 또한 면회자가 박 전 원사와의 관계를 속이는 과정에서 범한 ‘우발적 실수’인 셈이다. 문제는 또 있다. 면회자는 반드시 자신의 신분증과 함께 면회신청서를 작성해 면회허가를 받아야 한다.
‘면회 신청인 명단’은 이를 기초로 작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명단에 면회자 이름은 없고 ‘후배’ ‘친구’ 등 관계만 적혀있는 경우가 발견됐다. 이 또한 단순한 행정착오나 실수에 의한 것일까. 면회절차가 엄격한 군 속성상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군 병역비리 수사팀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정확하지는 않지만 면회자 가운데 의사로 보이는 이름들이 몇 명 눈에 띈다”면서 “박 전 원사가 아직까지 밝히지 않은 병역비리 사건이 상당수 있고, 이를 막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면회하려 하거나 대리인을 보냈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엄상현 기자 gangpe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