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업씨가 지난 9일 “국정감사장 증인으로 서고 싶다”며 국회 앞에 서 1인시위를 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10개월 가까이 동고동락하면서 느낀 바에 의하면 김대업씨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며, 남을 모함하기 위해서 음모를 꾸미는 사람이 아님.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이 땅의 병무 비리 근절에 온 몸을 내던진 사람임을 확신함.”
지난 99년 7월 당시 국방부 군검찰 관계자로 있던 이아무개 소령이 상부에 보고했던 김대업씨에 대한 평가자료의 일부다. 지난 5월 한 인터넷신문은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아들 정연씨의 병역비리 의혹을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이 매체도 김씨에 대해 “그는 무려 1천여 명의 비리 혐의자들을 족집게처럼 잡아냈다고 한다. 이 같은 수치는 단일 사건으로 사법부 창설 이래 최대 규모”라며 그를 높이 평가했다.
지난 7월말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재점화시키면서 정치권과 언론에 전면 등장한 김대업씨(40).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김씨는 ‘병역비리 전문 민간 수사관’‘박노항의 천적’ 등 병무비리에 일가견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97년 김대업씨 사건의 경찰청 수사기록과 재판기록. | ||
이회창 후보를 포함한 한나라당쪽 얘기가 그렇다. 최근 〈일요신문〉은 지난 97년 당시 협박죄로 처벌받았던 김씨의 경찰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을 입수했다. 육군중장 신분의 청와대 특명1국장을 사칭해 이아무개 여인을 협박했던 사건으로 김씨는 같은 해 9월 협박죄로 징역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전담반을 구성, 수사착수 2개월 만에 김씨를 대전의 한 호텔에서 체포해 사법처리한 청와대 하명사건이다. 물론 이 사건은 김씨의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 주장과는 별개의 문제다. 즉 김씨가 이 사건을 비롯해 사기 등 수 건의 전과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이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한 그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대구 출신의 김씨는 만20세였던 지난 82년 최아무개씨와 결혼을 했다. 80년도에 대학을 잠시 다닌 그는 의무부사관으로 군에 입대한다. 국군대구병원 중사로 있던 김씨는 85년 공문서위조 혐의가 인정돼 육군교도소에서 8개월동안 수감생활을 하다 이등병으로 불명예 제대했다.
이후 87년부터 90년까지 변호사법 위반, 부정수표 단속법 등으로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한동안 조용했던 김씨가 다시 수사기관의 추적을 받게 된 것은 지난 97년 5월 그가 ‘청와대 특명1국장을 사칭하고 다닌다’는 청와대 사직동팀의 첩보보고에 의해서다.
같은 해 5월12일 작성된 A4용지 4장 분량의 사직동팀 첩보보고서에 따르면 청와대 특명1국장을 자칭한 김씨는 92년 이미 사망한 ‘이강국(가명)’의 주민등록증에 자기 사진을 붙여 ‘이강국’ 행세를 하고 다녔다는 것. 97년 당시 35세였던 김씨는 주민증 위조를 통해 47세로 행세했다고 한다.
한편 김씨는 91년 1월 초 대구지역 재벌인 S기업 총수의 장남 박아무개씨(94년 1월 사망 당시 28세)에게 찾아가 “나는 육군장성인데 청와대에 파견돼 대통령 특명사항을 수행하고 있다”며 접근했다고 한다.
이를 믿은 박씨는 처남 이아무개씨(당시 21세)의 병역면제를 청탁했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박씨와 그의 장모 민아무개씨로부터 로비자금 명목으로 8천만원을 받았다는 것. 보고서 말미에는 “경찰(특수수사과)에 넘겨 검거 후 사법처리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적혀 있다.
청와대로부터 사건을 전달받은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5월17일 ‘청와대 특명국장 사칭 병역면제빙자 사기사건 수사착수보고서’를 상부에 올리고 김씨 검거에 나섰다. 아울러 경찰은 이미 사망한 박씨의 장모 민씨와 처 이아무개씨(당시 30세)로부터 피해사실을 인지한다.
이들의 진술서에 따르면 김씨는 미망인 이씨의 재산상속 문제를 처리해주겠다며 접근했고 이 과정에서 이씨와 불륜관계를 맺었다는 것. 나중에 김씨의 신분을 알아챈 이씨가 더 이상 만나는 것을 거부하자 김씨가 성관계 장면을 촬영한 사진 등을 이용해 협박을 해왔다는 것이다.
김씨를 추적중이던 경찰은 97년 7월4일 대전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김씨를 전격 체포하고 서울로 압송했다. 김씨를 8일 동안 조사한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사기죄와 협박죄를 적용, 그를 검찰로 송치한다.
그러나 검찰은 사기죄에 대해서는 관련자의 진술 미비로 배제하고 협박죄만 적용, 7월30일 기소했다. 김씨는 97년 9월25일 서울지법 1심 판결에서 협박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는다.
당시 판결문에는 다음과 같은 범죄사실이 기록돼 있다. “피고인(김씨)은 자칭 현역 육군중장 신분의 청와대 특명1국장이라고 사칭하면서 고위직에 있는 것처럼 가장하고 94년 8월 대구의 S상사 대표 박아무개의 처 이아무개씨에게 상속재산을 처리해주겠다고 접근하여 피해자 이씨와 내연의 관계를 맺어오던 중, 97년 5월 초 피해자가 피고인이 신분을 속인 것을 알고 헤어질 것을 요구하자 이에 앙심을 품고 97년 5월23일 미국 LA에서 항공우편으로 피해자와 호텔 등지에서 성관계 장면을 찍은 사진 2매와 함께 ‘피해자가 만나주지 않으면 위 사진을 전국 각 서점 및 판매처에 배포하고 인터넷에 무료 전송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피해자에게 보내 협박했다.
같은 달 28일 대구의 한 우체국에서 성명불상자를 통해 ‘피해자가 만나주지 않으면 피해자와 호텔 등지에서 성관계 장면을 찍은 사진 3백 매를 피해자의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서울 S초등학교)에 보내겠다’는 내용의 전자우편을 보내 피해자를 협박했다.”
김씨는 1심 판결에 불복, 항소했으나 2심에서 기각됐다. 상고권을 포기한 그는 그해 12월23일 형이 확정돼 1년을 꼬박 채우고 99년 7월 만기 출소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협박죄의 증거로 판시사실에 부합하는 김씨의 법정진술과 피해자 이씨의 법정진술 그리고 검찰, 경찰 진술조서와 김씨로부터 압수한 증거물 등을 들었다.
물론 김씨는 자신이 직접 나체사진과 협박편지를 우송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한다. 김씨는 언론을 통해 “누군가가 그 사진을 이씨 어머니에게 보내 내가 협박 혐의를 받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눈에 띄는 대목은 세 건의 협박편지 중 성명불상자가 보낸 한 전자우편에 나오는 ‘JAMES’라는 영문이름이 2001년 인터넷 골프 동호회 게시판에 올라온 그의 인터넷 전자우편 주소(JAMES@KORNET)와 이름이 동일하다는 것.
▲ 김대업씨 출두장면 | ||
이에 대해 김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경찰의)강압에 의해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이씨 남동생의 병역문제 해결을 위해 남동생과 이씨의 남편 박씨로부터 돈을 받은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김씨는 이 돈의 일부를 박씨에게 돌려줬다고 했다. 하지만 94년 박씨가 사망했기 때문에 경찰은 이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한편 김씨는 실제로 이씨 남동생의 병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병무청 징병검사 관계자들에게 돈을 주고 일을 ‘성사’시켰다고 진술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김씨에 대한 병무비리 관련 여죄의 수사필요성을 인식하기도 했다. 99년 초 병무비리 수사지원요원으로 일하던 김씨는 병무비리 혐의로 소환된 이씨의 아버지 등을 수사사무실에서 조우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금품수수와 관련해 김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는 돈 10원 받은 적 없고 오히려 내 돈이 들어갔다”고 해명했다. 김씨는 94년 9월부터 97년 5월까지 이씨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이씨의 남동생 병역청탁 건도 한 계기였지만 당시 남편 박씨가 사망한 직후라 이씨에게는 거액의 재산상속문제가 걸려 있었다.
김씨는 이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며 이씨에게 접근했다. 김씨는 이씨에게 자신의 이름은 ‘이강국’이고 직업은 현역 육군중장 겸 청와대 특명1국장이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그는 이씨로 하여금 자신의 신분을 믿게 하기 위해 공수부대 요원들이 착용하는 검은 베레모 1개와 얼룩무늬 군용 반바지 2개를 남대문시장에서 1만1천원에 구입해 선물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돼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동생이 군복무시 홍보용으로 촬영한 사진을 자기 사진인 양 이씨에게 보여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 부분을 피해자 이씨도 동일하게 주장했다. 김씨는 또 지난 96년 10월 이씨의 딸이 다니는 서울의 한 유치원에 육군중장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입고 방문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씨는 당시 상황과 관련해 경찰조사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그 때 김씨가 자신은 이북에서 특수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며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96년) 직후에도 부하들을 데리고 이북으로 넘어가 특수임무를 마치고 온 적이 있다고 자랑삼아 말했다.”
이에 대해 김씨도 경찰에서 이를 일부 인정한 것으로 돼 있다. 그는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 두 차례 북한에 침투하여 특수임무를 수행한 바 있다고 말한 사실이 있다”고 진술했다. 경찰이 김씨로부터 압수한 물품 중에는 군용수첩, 총포소지허가증, 군부대 출입허가증 등이 있다.
특이한 점은 총포소지허가증에 기재된 사항. 총기종류란에는 ‘엽총’외에 ‘권총’이 추가로 삽입돼 있다. 또 특징란에는 ‘저격용•살상용’ 등이 기재돼 있다. 현행 총기관련 법령에는 특수한 분야 종사자를 제외한 일반인에 대해 권총과 같은 총기류의 소지허가증을 발급하는 경우는 없으며, 저격용•살상용은 더더욱 없다.
김씨는 피해자 이씨가 그의 차량에서 권총을 봤다고 주장한 대목과 관련해 “호신용 가스권총을 소지한 적은 있으나 실제 권총을 소지한 적은 없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판결문에는 ‘김씨가 이씨에게 재산상속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며 접근했다’고 돼 있다. 그렇다면 김씨는 이씨의 재산상속 문제에 어떻게 관련돼 있을까.
95년 8월 당시 이씨는 남편 박씨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중 경북 경산시 소재 임야 6천여 평을 김씨의 부인에게 5백만원에 매도한 것으로 부동산 등기부 등본에 나타나 있다. 물론 김씨는 거래가 정상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씨가 김씨에게 재산처리 문제를 부탁해 공시지가 8백10만원 정도인 문제의 땅이 활용가치가 없어 5백만원에 자신의 부인명의로 넘겼다는 것. 그러나 이씨는 경찰 진술에서 문제의 땅의 평당 시가가 상당히 높은 것을 나중에 알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외에 김씨가 이씨 소유 부동산을 매도해주는 조건으로 이씨로부터 받았다는 가계약서와 인감증명, 소유권 이전을 위한 위임장 등도 수사목록에 관련서류로 제출돼 있다. 특이한 점은 이 가계약서의 매도인란에 이씨 이름만 기재돼 있고 매수인란이 공란으로 돼 있어 매수인이 나타나면 정상적인 거래 계약서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
김씨는 체포 당시 여행용 가방에 들어있던 문제의 사진 2장에 대해 합의 하에 촬영했다고 진술했다. 물론 이씨측의 주장은 이와 다르다. 한편 김씨는 진술서 말미에 “선처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밖에 당시 경찰에서 자술한 이씨의 진술서 한 대목에는 김씨와 이씨가 96년 8월 미국을 여행할 당시 김씨가 자신은 대통령이 미국에 오기 때문에 함께 귀국할 수 없다고 말한 부분이 나온다. 실제로 김영삼 전 대통령은 96년 9월2일 중남미 5개국을 순방한 적이 있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하나 있다. 김씨는 2001년 4월 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되기 직전인 3월7일부터 11일까지 미국을 다녀온 적이 있다. 이 기간동안 인터넷 골프동호회 게시판에 김씨 명의로 된 두 개의 글이 게재됐다.
“3월6일부터 11일까지 워싱턴, 시카고로 출장 갑니다(2001년3월5일 17시31분)”“미국에서 성질대로 한 번 하고 싶은 데 참았음-대통령 각하한테…(3월11일 23시33분)” 등이 그것이다. 공교롭게도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해 3월6일부터 11일까지 미국을 방문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김씨는 “내 아이디가 도용당했다”며 자신의 글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백승구 기자 eag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