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일 청와대에서 비서실장 및 수석비서관 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뒤 김기춘 비서실장, 윤창번 미래전략수석, 유정복 안행부 장관 등과 함께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불과 사흘 뒤인 8일 신임 김기춘 비서실장과 4명의 수석비서관들에 대한 임명장 수여식에서 이 관계자의 평가가 틀리지 않았음이 확인됐다. 박 대통령이 새 참모들에게 당부한 말 속에 이번 참모진 개편의 이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은 먼저 “청와대 비서실이라는 곳은 국정운영을 하는 데 있어 우리 몸의 중추기관과 같다. 여기에서 잘 조율이 되고 모든 것이 풀어져야 나라 전체도 조화롭게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비서실이라는 곳은 항상 주목을 많이 받기 때문에 바깥에서 볼 때 권한을 남용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각별히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국정 운영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낮은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요구사항에 기존의 청와대 비서실이 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담겨 있는 듯했다.
개별 수석들에 대한 당부의 말에서는 전임자에 대한 불만이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윤창번 미래전략수석에게 “창조경제를 기치로 내걸었는데 아직도 창조경제가 손에 안 잡힌다는 얘기가 많다”며 “이 부분이 확실하게 체감될 수 있게 하고, 창조경제뿐 아니라 미래전략을 위해 필요한 어젠다를 발굴해 추진해 달라”고 말했다. 당부의 말은 윤 수석을 향한 것이었지만 이면에는 최순홍 전 수석에 대한 실망감이 녹아 있었다.
박 대통령은 또 정부의 정보 공유를 위해 ‘정부 3.0’을 추진하고 있는데도 현장 중소기업들은 정작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에 대해 제대로 모른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국민이 모르면 없는 정책이나 마찬가지”라고까지 말했다. 창조경제와 ‘정부 3.0’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야 할 미래전략수석실이 지난 5개월여 동안 전혀 존재감이 없었다는 냉정한 평가가 담겨 있는 지적이었다.
박 대통령은 최원영 고용복지수석에게도 “4대 국정기조 중 국민행복이 중요한데, 그 중 핵심적인 게 고용률 70%와 맞춤형 복지”라며 “이것이 하루빨리 체감될 수 있도록 강력하게 추진력을 가지고 일을 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전임 최성재 수석에 대해 공개회의 석상에서 답답함을 토로했던 박 대통령의 인식이 다시 한 번 드러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언론에서 무조건 고용률 70%를 맞추려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데, 아무 거나 무조건 만들어 낼 게 아니라 질 있는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신경 써 달라”고 강조했다.
이날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곽상도 전 민정수석이 낙마하고 홍경식 수석이 뒤를 잇게 된 것 역시 분명한 경질성 인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낙마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민정수석실의 인사검증 실패, 곽 전 수석과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 간의 끊임없는 알력다툼설 등 곽 전 수석을 교체해야 할 이유는 너무도 많았다는 것이다.
특히 국가정보원의 선거·정치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청와대와 검찰 간에 미묘한 갈등 기류가 생겼던 점은 곽 전 수석 낙마의 결정적 계기가 됐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검찰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것은 결과적으로 지난 대선의 정당성에 흠집을 낸 처사”라며 “이 때문에 ‘검찰이 폭주하고 있는데 민정수석은 뭘 하고 있는 거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었다”고 전했다. ‘비정상적인 관행의 정상화’로 요약되는 박 대통령의 개혁 구상을 공직 사정, 부패 척결 등으로 뒷받침해야 할 민정수석이 검찰과의 소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오히려 대통령의 부담만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번 청와대 참모진 개편이 성과를 내지 못한 인사들에 대한 문책 성격을 띠다 보니 새로운 진용은 철저히 성과내기에 초점을 두고 꾸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초원복집 사건’ 등 시빗거리를 많이 갖고 있고, 정홍원 국무총리보다도 한참 선배인 김기춘 실장을 기용한 게 대표적이다. 이를 두고 청와대 내에서는 “말 그대로 ‘왕실장’을 둠으로써 청와대 조직은 물론 정부에 대해서도 ‘시어머니 역할’을 맡기겠다는 뜻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육법당(육군사관학교+서울대 법대 출신)’이라는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울대 법대 출신을 3명(김기춘 실장, 박준우 정무수석, 홍경식 민정수석)이나 한꺼번에 등용한 것 역시 ‘일을 위해 필요하면 데려다 쓴다’는 박 대통령의 고집이 반영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공헌 언론인
‘박준우 장인 회사’서 기념 식수
박준우 정무수석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은 지난 1972년 법무부 법무실 소속 검사로 유신헌법 초안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박정희 정부 말기인 1979년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냈다. 이 과정에서 김 실장과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신직수 전 법무부 장관이다.
1927년 충남 서천 태생인 신 전 장관은 전주사범, 한국외국어대 출신으로 법조계 내에선 비주류였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5사단장으로 근무할 때 법무참모로 처음 인연을 맺고, 5·16 쿠데타 이후에는 중앙정보부 차장과 검찰총장, 법무장관, 중앙정보부장 등 요직을 섭렵하면서 박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검사였던 김 실장을 총애하면서 중책을 맡기고, 청와대로까지 불러들였던 인물이 바로 신 전 장관이다.
김 실장과 가까운 한 여권 인사는 “신 전 장관은 법무부 장관일 때 김 실장을 법무실에 두고 유신헌법 초안을 작성하게 했고, 중앙정보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김 실장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부장에 앉혔다”며 “김 실장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추천한 사람도 신 전 장관으로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외교관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정무수석에 발탁된 박준우 수석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간접적으로 인연이 있다. 그의 장인인 손열호 전 동양석판(현 TCC동양) 회장이 박 전 대통령의 수출진흥정책의 모범 케이스로,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인물인 까닭에서다.
동양석판은 통조림과 음료수 캔 등에 사용되는 석도강판 자체 생산에 국내 최초로 성공한 뒤 수출을 통해 고속 성장을 이어갔고, 이 때문에 1978년에는 박 전 대통령이 이 회사를 방문하고 기념으로 향나무를 심어 직원들의 격려하기도 했다. 손 전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던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과도 가까웠고, 박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이었던 김계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는 막역한 친구사이였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