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은 단종을 결정한 라보와 다마스를 할인 판매하는 ‘해피엔딩 페스티벌’을 진행 중이다. © GM Corp
‘라보 1대 살 돈이면 뉴EF 쏘나타 2.0 GV(LPG)를 사고도 남는다?’ 운전자들이 코웃음 칠지도 모를 얘기지만, 차량의 연식을 10년 전쯤으로 되돌리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중고차 시장에서 2004년식 라보(1.5 다이아몬드)의 가격이 430만 원 내외로 같은 연식의 뉴EF 쏘나타 2.0 GV(LPG, 350만 원대)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변수가 반영되는 시세를 놓고 두 중고 차량의 가치를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10년 전 라보의 출고 가격이 뉴EF 쏘나타 2.0 GV(LPG)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던 걸 감안하면 ‘상전벽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포털 사이트 다음의 자동차 코너에서 8월 초 중고차 시세를 비교해 보면 다마스와 라보의 ‘약진’을 확인할 수 있다. 2004년식 뉴다마스 2인승 판넬밴 슈퍼의 가격은 340만 내외. 차량 출고 당시 신차 가격이 500만 원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10년간의 감가상각비율이 30%대에 불과한 셈이다.
2004년식 라보의 경우엔 다마스보다 조금 더 대접받는다. 당시 신차의 가격은 옵션과 모델에 따라 470만∼550만 원 정도. 현재 2004년식 라보는 모델에 따라 380만(1.5 LUX 일반형)~430만 원대의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10년이 흘렀지만 차의 가격이 최고 80% 가까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차령 10년째인 대다수 중대형 승용차들의 중고 시세는 출고 당시 가격의 4분의 1에서 5분의 1 수준이다. 다음의 중고차 시세에 따르면 2004년식 현대 뉴그랜저 S30(출고가 3000만 원대)의 가격은 520만 원대. 단순히 중고차 가격만 놓고 비교하자면 라보 한 대 매입할 만한 액수에 ‘조금만’ 돈을 더 얹으면 중고 뉴그랜저 한 대를 살 수 있는 셈이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때 현대자동차에서 히딩크 감독에서 선물해 화제가 되었던 에쿠스 JS350의 10년 전 출고 가격은 5300만~5800만 원. 하지만 이 모델(밸류 최고급형)의 중고차 시세는 8월 초 현재 840만 원대다. 역시 출고가의 6분의 1 수준으로 가격이 형성된 상태다.
한때 잘나가던 수입 자동차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다. 10여 년 전 베스트셀러 수입차로 손꼽히던 렉서스 ES300 L-Grade XV30의 당시 출고 가격은 4860만 원 정도. 하지만 현재의 중고차 시세는 930만 원대로 감가상각비율이 80%대에 이른다. 2004년식 모델의 출고가격이 4000만 원대였던 볼보 S40의 경우 현재 중고차 시세가 최저 730만 원 안팎이다.
비슷한 시기에 출고된 BMW 1 시리즈 318i 세단 E46(당시 4000만 원대)은 중고차 시장에 860만 원에 나와 있고, 출고 가격이 3500만 원에 이르던 2004년식 폴크스바겐 뉴비틀 DELUXE 2.0의 중고차 시세는 930만 원대다.
내로라하던 승용차들이 중고차 시장에서 내리막길을 달리는 동안 다마스와 라보 같은 소형 상용차가 제 몸값을 거의 유지해온 까닭은 무엇일까. 중고차 거래 전문가들이 꼽는 가장 큰 이유는 실용성이다. 유지비가 상대적으로 적게 들고, 작은 덩치 덕에 효용성도 높아 소상공인들의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엔 단종을 앞둔 차종이라는 점이 매매를 더욱 부추긴 측면도 있다. 앞으로 희소성이 높기 때문에 미리 차를 확보해 놓으려는 심리가 작용했다는 것.
한국지엠은 배출가스 자기진단장치 등 새로운 정부 규제에 따르려면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올해 연말까지만 다마스와 라보를 판매한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엔 단종을 앞두고 ‘해피엔딩 페스티벌’이란 이름으로 두 차종에 대한 할인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91년 9월 첫 선을 보인 뒤 서민의 애환을 싣고 달리던 다마스와 라보의 스물세 살 잔치는 이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두 차량에 대한 소상공인들의 향수는 앞으로도 오랜 기간 중고차 시장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울 듯하다.
이정수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