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는 FIFA에서 휘장사업권자로 일방적으로 정한 CPP코리아의 무리한 운영으로 하청업체의 불만은 물론 여론까지 등을 돌린 상황이었다. CPP코리아가 내놓은 월드컵 상품은 가격에 비해 질이 크게 떨어져 자칫 월드컵 ‘특수’를 날릴 것이라는 비난 섞인 위기감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조직위는 이에 따라 휘장사업권자 교체의 필요성을 FIFA측에 강력히 요청하면서 나름대로 적합한 업체를 추천하게 된 것. 이 때 조직위가 추천한 업체가 바로 코오롱TNS다.조직위가 FIFA에 보낸 문제의 협조공문 내용 중 일부다.“조직위는 한국의 코오롱 그룹의 자회사인 코오롱TNS를 추천한 바 있다. 동사는 88년도 서울올림픽과 93년 대전엑스포 행사시 라이센시 경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대기업 계열사이며 관련분야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국내의 기업인지도 역시 좋은 회사다.”
그러나 이 같은 내용은 모두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먼저 코오롱TNS는 코오롱그룹과는 무관한 업체다. 코오롱그룹측은 자사의 홈페이지를 통해 “코오롱TNS는 여행레저업체로 지난 88년 코오롱계열사에서 공식적으로 분리됐다”고 밝혔다. 또 코오롱TNS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기준으로 자본금 2백50억원에 당기순이익 3억6천만원을 올린 수준의 회사다. 반면 부채는 6백억원을 넘어선 상태였다.
‘대규모 행사를 치른 경험’도 전혀 없다. 조직위가 FIFA에 전한 공문 내용과는 달리 서울올림픽과 대전엑스포행사 때 참여한 업체는 코오롱TNS가 아닌 코오롱상사였던 것으로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더욱 주목되는 것은 월드컵 휘장사업권은 여행레저업체인 코오롱TNS의 사업목적에도 맞지 않았다는 것. 코오롱TNS는 이에 따라 올해 1월9일 월드컵 휘장사업을 목적으로 ‘코오롱TNS월드’라는 회사를 급조하기까지 했다.
▲ 강남에 위치한 코오롱TNS 사무실 모습.분노한 납품업체 채권단이 현수막과 대자보를 걸어놨다. | ||
조직위는 여기에 재경부 등 정부조직까지 끌어들여 사기업인 코오롱TNS월드에 ‘경영자문위원회’를 설치해 대외적으로 회사의 공신력까지 담보해줬다.FIFA는 결국 CPP코리아로부터 휘장사업권을 반납받아 올해 1월29일 코오롱TNS월드로 넘겼다. 하지만 코오롱TNS월드는 조직위의 높은 평가와 경영자문위원회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았다. 사업권을 넘겨받은 직후부터 사업을 시작해 1백여 개 납품업체로부터 1백90억원대의 월드컵 관련상품을 납품받고도 제때 결제를 해주지 않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회계감사를 맡고 있는 A회계법인은 코오롱TNS가 휘장사업권을 따내자 월드컵 수익사업으로 6천억원에 달하는 매출에 순수익 8백억원이 예상되는 ‘우량회사’로 평가했다.그러자 코오롱TNS는 조직위의 ‘공신력’과 회계법인의 ‘과대평가’를 담보로 7백억원에 달하는 기업어음(CP)을 발행한 것. 그리고 지난 7월25일 코오롱TNS는 부도를 냈다. 이에 따라 S저축은행과 D생명 등 CP를 인수한 제2금융권까지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됐다.한편 제2금융권과 납품업체 채권단이 코오롱TNS측에 채권양도신청을 하자 코오롱TNS측은 이를 거부한 채 ‘파산신청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모든 것을 떠나, 조직위가 FIFA에 보낸 영문공문서가 한글로 번역돼 코오롱TNS측에 그대로 전달된 것만 보더라도 서로 짜고 했거나 특혜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면서 “검찰은 조직위와 업체간의 비리가능성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해서 진실을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또 다른 한 채권단 관계자는 “조직위가 정말로 코오롱TNS라는 회사에 대해 파악하지 못해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사기꾼들에게 정부와 조직위가 놀아난 꼴”이라고 비판했다.
조직위측은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무척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국내사업 실무책임을 맡았던 한 관계자는 “코오롱그룹 계열사고 경험이 풍부하다는 회사측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은 것은 문제가 있었다”고 잘못을 시인했다.
이 관계자는 또 “코오롱TNS는 엄연한 사기업인데 조직위 공문서가 어떻게 전달됐는지 모르겠다”며 “조직위의 공문서가 외부로 유출된 것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그렇다고 뾰족한 대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관계자는 “권한도 법적 책임도 없다”며 “하지만 도덕적으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대책을 못세웠다”고 내부상황을 전했다.
엄상현 기자 gangpe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