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슈퍼에서 최근 내부 비리가 발생해 복수의 직원들이 징계면직된 사실이 밝혀졌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해당 매장의 한 협력업체 직원은 “그 롯데슈퍼 직원은 협력업체에 좋은 자리를 내줄 테니 개인적으로 제품을 달라고 한 다음, 이 제품들을 도매상들에게 현금 장사를 하는 수법을 썼다”며 “광주에서만 네 곳의 매장에서 이 같은 일이 발생해 비리를 저지른 해당 직원들은 변상 조치 후 해고됐으며 광주·호남 지역 총책임자도 바뀌었다”고 전했다. 이번에 비리를 저지른 해당 직원들은 이 수법을 통해 개인당 3000만 원 이상 현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마트나 SSM의 경우 매장 면적이 넓고 품목 수도 광범위해 어떤 위치의 매대에, 어떻게 제품을 진열하는가 하는 문제는 판매와 직결되는 중요한 부분이다. 유통업체에 내방할 때부터 소비자가 직접 특정 브랜드를 구입할 의사를 갖고 있지 않는 한 잘 보이는 위치에 보기 좋게 진열돼 있는 제품에 먼저 손이 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유통업체는 제품 진열 매대와 해당 제품 매출의 인과관계를 이용해 협력업체들에 소위 ‘자리 장사’를 하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최근 이런 악습이 자제되고 있는 분위기지만, 오랫동안 고수돼 온 이 같은 영업 방식은 오히려 암암리에 더 횡행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또 유통업체들은 통상적으로 판촉비 명목으로 현물을 선호한다. 이렇게 받은 현물은 정기 재고조사 시 각 매장의 ‘로스(Loss)’를 메우는 데 쓰인다. ‘로스’란 말 그대로 도난 등으로 발생한 제품의 분실을 의미하는 말로, 유통업체에서는 본사로부터 정기 감사 등이 실시돼 재고 상태를 보고해야 할 때 물품에 상관없이 재고의 금액을 맞추는 데 그동안 협력업체로부터 받은 현물들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재고 손실을 납품업체에 전가하는 전형적인 ‘갑질’인 셈이다.
결국 협력업체로부터 제품을 정기적으로 상납 받아 도매상에 현금과 바꿔치기 한 수법을 쓴 이 아무개 씨 등은, 롯데슈퍼 입장에서 볼 때 회사가 챙겨야 할 재산을 사적으로 유용한 셈이다. ‘을’인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회사가 챙기는 것 또한 비정상적인 관행으로 비칠 수 있다. 롯데슈퍼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 대해 “광주의 매장들에서 4명의 직원이 개인적으로 자행한 ‘간 큰 사건’이 발생했다”며 “인사위원회를 열어 당사자 소명을 듣고 당사자들이 잘못을 인정해 사규에 의해 징계면직했다”고 확인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롯데슈퍼의 판촉비 빼돌리기 사건이 광주뿐만 아니라 전라북도 지역과 수도권 지역에서도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롯데슈퍼 협력업체 관계자는 “애초에 이번 사건은 서울·경기 지역 내부 감사에서 최초 발각돼 전국으로 감사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광주에서도 추가로 적발됐는데 광주에서 발생한 건의 경우 금액이 조금 더 컸을 뿐”이라며 “청과, 축산, 가공식품 등 매장의 여러 영업담당 직원들 중 전반적인 업무 영역이 넓고 현금화하기 쉬운 품목이 많은 가공식품 담당들이 이번에 적잖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롯데슈퍼는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정부의 월 2회 휴무 등 영업규제에 이어 최근 국세청의 강도 높은 세무조사가 실시되는 등 잇따른 악재 속에서 이 같은 내부비리가 발생하자, 서둘러 이번 사건을 수습해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전국적으로 매장 인사를 단행했다. 대폭적인 인사이동을 통해 협력업체들과의 유착관계를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그러나 롯데슈퍼 관계자는 “인사는 늘 있는 것이고, 시점도 정해진 것이 아니지만 1년에 한 번 정도는 정기 인사도 있다”며 “이번에도 본사를 포함해 전국 단위의 점포에서 인사가 있었지만, 사건 수습을 통한 분위기 쇄신 차원 인사가 아닌 단순한 정기 인사로 보면 된다”고 반박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롯데슈퍼의 직원 징계면직이 광주 지역에서만 집중된 점을 ‘빅마트’ 출신 인사들에 대한 물갈이 수순이라고 해석하고 있기도 하다. 롯데마트는 지난 2007년 광주 지역 향토 슈퍼마켓인 빅마트를 인수해 롯데슈퍼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빅마트 직원들의 고용도 그대로 승계한 바 있다.
앞서의 협력업체 관계자는 “롯데가 빅마트를 인수하며 고용승계를 하긴 했지만 빅마트 출신들은 알게 모르게 서자 취급을 받았던 게 사실”이라며 “과거 빅마트는 실적 띄우기만 급급해 협력업체들에 과도한 판촉비를 요구해 온 것이 공공연한 사실인데, 롯데슈퍼가 이런 구태를 노리고 이번 기회에 빅마트 출신들의 힘을 빼기 위해 이번 사건에 접근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의 이런 관측은 최근 <일요신문>(1099호)이 단독 보도한 ‘롯데마트 대규모 용역 계약 해지 논란’에서도 지적한 ‘롯데마트가 과거 GS마트 출신들에 대해 인사 불이익을 주는 방법으로 자연 도태를 유도하고 있다’는 내용과 맞물려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롯데슈퍼 관계자는 “빅마트를 인수한 게 지난 2007년이고, 그동안 인사 교류를 통해 빅마트 출신들은 광주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로 퍼져 있다”며 이 같은 해석을 일축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