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맞선 자리에서 만났던 A는 그나마 귀여운 편에 속했다. 당시 마흔 살이었던 A는 IT 회사에 다니는 샐러리맨이었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장남이었던 그는 한눈에 봐도 곱게 자란 티가 났다. 성격도 쾌활했고, 말도 잘했다. 그런데 오 맙소사. 말끝마다 그가 “저희 아빠가요~,” “아빠랑 낚시를 갔는데요~”라며 ‘아빠, 아빠’할 때마다 왠지 모를 거부감이 솟구쳤다. 적어도 그 나이면 ‘아빠’보다는 ‘아버지’가 더 맞는 게 아닌가 싶었고, 또 맞선 자리에서 그렇게 아빠랑 무엇을 했고, 또 뭘 할 건지 시시콜콜 늘어놓는 게 어울리나 싶었다.
소개팅으로 만났던 B는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중의사였다. 3남 1녀 중 차남이었던 B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못 벗어난 탓에 성격이 있는 대로 비뚤어진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3급 고위공무원이었다. 당시 언뜻 들은 바에 따르면 엄격하고 가부장적인 전형적인 공무원 스타일이었다(오죽하면 늦잠을 자는 아들의 얼굴에 바가지로 물을 부으면서 진노했을까).
이런 아버지를 어렵게 여겨서였는지, 아니면 무한 존경을 해서 그랬는지, 그것도 아니면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스럽고 못마땅해서였는지, B는 깊은 열등의식에 빠져 있었다. B의 말투에서 나는 그의 아버지의 말투를 읽었고, 행동에서 그의 아버지의 모습을 읽었다. 일례로 그는 광화문 중앙정부청사 주변에서 길을 잘못 들어 역주행하던 내게 “어허~여기가 감히 어디라고”라며 꾸지람을 했고, 조금이라도 늦잠을 자면 “사람이 그렇게 게을러서 되겠느냐”며 화를 냈다.
또한 B는 밖에서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시하거나 소홀히 대하는 사람들을 참지 못했다. 식당이나 백화점을 가면 늘 시비가 붙게 마련이었고, 걸핏 하면 “여기 책임자 나오라고 해!”라거나 “소비자보호단체에 고발해버리겠다”며 으름장을 놓곤 했다.
그런 B를 보면서 나는 그가 집안에서 아버지에게 당했던 것을 밖에서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무의식적으로 아버지 흉내를 내면서 감정적 해소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일전에 언급했던 행정고시 출신의 공무원이었던 C도 빼놓을 수 없다. 나이 마흔이 넘은 그의 휴대전화는 밤 11시만 되면 띠리링 울리곤 했다. 지방에서 떨어져 살고 있던 아버지가 아들이 어디서 뭘 하고 있나 염려(또는 감시)하는 마음으로 매일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이런 ‘파파보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 아버지가 바로 그 아들이고, 또 그 아들이 바로 그 아버지다.” 즉, 누군가를 만나려면 먼저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체크할 것. 아무렴.
김태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