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 전 교수는 “권은희 수사과장은 ‘경찰 수사권이 외압을 받고 있다’고 판단되자 나름의 소신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지난 국정원사건 청문회는 마치 전쟁 같았다. 새누리당, 서울경찰청 증인, 국정원 측 증인 모두 ‘반 권은희 연합군’인 양 똘똘 뭉쳐 권 과장 등에게 가차 없는 비난을 퍼부어댔다. 이들로서는 조직보호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본 거다. 전쟁 시 인도주의자나 양심을 지키려는 자들을 위해 대포를 살살 쏘는 경우가 있던가.”
—권은희 송파서 수사과장이 정치적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난 그렇게 생각 안한다. 만약 권 과장이 정치적이었다면 최초 출동했을 때 민주당 측 요구대로 바로 (김하영 국정원 직원을) 체포하고 노트북을 압수했을 거다. 그런데 그렇게 안했다. 덕분에 수사 당시엔 ‘권 과장이 여당 쪽 사람이 아니냐’는 오해까지 나왔다. 경찰 출신으로서 봤을 때 권 과장은 ‘경찰 수사권이 외압을 받고 국민적 기대에 반하는 방향으로 악용됐다’고 판단되자 나름의 소신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표 전 교수의 주장대로 실제로 권 과장과 1~2년 이상 함께 업무를 본 경험이 있는 일선 경찰들은 권은희 과장이 평소 법절차를 준수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전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동료 경찰은 “권 과장이 정치인이 되고 싶어서 폭로했다는 말을 듣고 실소가 나왔다. 권 과장은 전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면서 “정치를 할 만큼 사교적인 스타일이 아니었던 데다가 경찰로서 자부심도 상당했다. 특히 업무를 볼 때 교과서처럼 꼼꼼하게 절차를 지키는 걸 중요시했다. 어쩔 땐 융통성이 없어서 같이 일하면 좀 피곤하긴 했지만 도덕적으로 흠집이 없으니 내심 존경스런 마음도 들었다”고 말했다. 권 과장의 또 다른 동료도 “권 과장이 그럴 줄 알았다. 권 과장은 8년 전 수사과장으로 부임했을 당시부터 지방청에서 무리하거나 부당한 지시를 했을 때 내가 알기론 단 한 번도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고 한다”며 “자신이 조금이라도 법절차를 위반했다는 주변의 지적을 받는 걸 아주 싫어했다. 아마도 법조인 출신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권 과장은 사시 43회 출신으로 2004년부터 충북 청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2005년 경찰공무원(경정) 특별채용에서 8.9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최초의 변호사 출신 여성 경찰관이어서 더욱 주목받았다).
—이번 청문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무엇이었나.
“‘문재인이 마음속에 있죠?’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이 권 수사과장에게 던졌던 질문이 단연 압권이었다.”
—권 과장한테 (문 의원에게) 사랑 고백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 같았다.
“(웃음) 어찌나 질문이 황당한지 우스갯소리지만 그렇게 보였다는 분들도 있더라. 여하튼 권 과장이 피의자도 아니고 직권 남용의 피해자로 나왔는데 양심의 자유를 짓밟는 그런 질문을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할 줄 누가 알았겠나. 질문 자체가 얼마나 미개해보이던지 그 순간 공포마저 느꼈다. 엄연히 헌법에 나와 있는 비밀투표의 자유를 훼손하는 질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이게 다 문희상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이 권 과장을 지칭해 ‘광주의 딸’이라는 바보 같은 발언을 해서 이 사단이 난 게 아닌가. (문 전 비대위원장이) 참 생각 없고 무식하고 전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권 과장이 소신 발언을 할 때마다 새누리당 측이 ‘호남이라서 그래’라는 식으로 엮어버릴 수 있도록 단초를 제공했다. 권 과장은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에 폭로한 게 아니다. 공무원의 양심으로 일선 경찰을 위해 궁극적으로는 국민을 위해 양심 발언을 한 것이다. 그런 진실성이 문 전 비대위원장과 새누리당에 의해 훼손돼버렸다.”
—국정원 ‘김(하영) 직원’이 흐느껴 울 때 무슨 생각이 들었나.
“‘아, 연기를 하고 있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국정원 측으로부터 일종의 지시를 받은 것 같다. 그 예로 김 직원은 사건 최초부터 오피스텔에서 ‘오빠’를 부르는 등 남성인 가족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약한 20대 여성의 모습을 의식적으로 보여 왔다. 이런 걸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그 때 최초 진입해서 증거를 확보하고 (김 직원을) 체포 구속했어야 했는데….”
—많이 화가 난 것 같다.
“그렇다. 철창 안에 있어야 할 자가 어떻게 감히 국민이 보는 청문회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나.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국민의 녹을 받고 특수요원 교육을 받은 국정원 직원이 감히 ‘여자’임을 내세워서 동정심을 자극하려 했다는 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여성으로서 동정만 받고 싶었으면 국정원에 들어오지 말았어야지. 또 김 직원의 그런 태도는 앞으로 국정원 직원을 꿈꾸는 후배 여성들의 앞길까지 막을 수 있는 것이었다.”
—대북심리전이 그래도 필요하지 않겠나.
“청문회 내내 여당이나 국정원 증인 측은 문제의 댓글이 ‘대북심리전’의 일환으로 작성됐다는 식으로 ‘방탄’ 변호를 했다. 심리전은 원래 군에서 쓰는 말이다. 국정원 본연의 임무도 아니거니와 검찰 수사 결과를 보면 대부분의 댓글이 안보 관련성으로 이뤄진 것도 아니었다. 사이버 심리전이 정말 필요하다면 ‘우리민족끼리’처럼 북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이트에서 역공을 해야지. 거대 포털도 아니고 ‘오유’(오늘의 유머)에서 그게 뭐 하는 짓인가(웃음).”
표 전 교수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국정원의 한 직원은 “심리전담부서는 원래 국정원 내부에서 위상이 전혀 없었던 곳이다. 이 부서 하나 때문에 국정원이 ‘X망신’을 당하고 있다”며 “청문회에서 국정원 2차장이 ‘북한이 사이버전단을 뿌려서 댓글을 달았다’는 내용의 주장을 하던데 같이 보던 동료들과 코웃음을 쳤다. 쉽게 말해 과거 국정원 정예요원들이 야산에서 ‘삐라’(북한의 선전지)를 주우러 다니는 걸 봤는가. 댓글로 대북심리전을 한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