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국 씨
배산임수형의 탁월한 입지, 사생활 보장, 강남 및 시내 중심가로의 접근성 등 주거지로서 거의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엔빌리지 인근 부동산업자는 “여기는 대부분 투자가 아닌 거주 목적으로 들어온다. 그만큼 살기가 좋다는 것”이라며 “서울에서 한강 조망권이 가장 뛰어난 곳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얼마 전 유엔빌리지는 전두환 씨 미납 추징금 환수 과정에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전 씨 조카 이재홍 씨가 보유했던 유엔빌리지 내 땅의 실소유주가 전 씨 장남 재국 씨라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 씨는 검찰 조사에서 “문제가 된 한남동 땅은 재국 씨 지시로 1990년대 초 구매한 것이고, 나는 명의만 빌려 줬다”고 진술했다. 이 씨는 1991년 전 씨로부터 돈을 받아 땅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고, 지난 2011년 51억 원에 팔았다. 검찰은 이 씨 땅을 사실상 전 씨의 은닉 재산으로 보고 8월 19일 압류 조치했다.
그런데 유엔빌리지엔 전 씨 일가가 보유하고 있는 땅이 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것도 검찰이 압류한 이 씨의 땅과 바로 근접한 곳에서. 재국 씨 부인 정도경 씨는 지난 2001년 한남동 11-×××를 비롯한 네 필지의 땅을 지인 5명과 함께 공동으로 구입했다. 정 씨는 총 899㎡(약 271평) 중 153㎡(46평)을 갖고 있다. 부동산업자들에 따르면 유엔빌리지 내 토지는 3.3㎡(1평)당 3000만~4000만 원대의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정 씨가 최대 18억 원대의 부동산을 갖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이곳엔 최고급빌라가 세워져 있는 상태다.
정 씨가 보유하고 있는 토지 등기부를 살펴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땅을 매매할 당시 정 씨의 주소가 서울 종로구 평창동 116-11로 돼 있다는 점이다. 해당 지번엔 2층짜리 주택이 자리 잡고 있는데 소유주는 전 씨 비자금 관리인 중 한 명으로 의심받고 있는 손삼수 씨다.
정 씨가 손 씨 보유의 건물을 주소지로 신고했다는 것은 평창동 부동산 역시 전 씨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론으로 연결된다. 손 씨는 전 씨가 보안사령관일 때 부관이었고, 대통령 재임 때는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다. 손 씨는 지난 2000년 전 씨가 타고 다니던 벤츠 승용차가 추징금 징수를 위해 경매에 넘겨졌을 때 감정가보다 비싸게 사갔던 인물이기도 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 맏며느리 정도경 씨가 보유한 것으로 확인된 서울시 한남동 유엔빌리지 내 토지 위에는 최고급 빌라가 들어서 있다. 유엔빌리지는 강북 최고의 부촌 중 한 곳이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정도경 씨는 재국 씨가 보유하고 있는 재산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에서도 정 씨를 추징금 환수를 위한 주요 인물로 꼽고 있다. 정 씨는 재국 씨가 운영하고 있는 시공사 지분 5.32%와 연천 일대의 땅을 갖고 있다. 정 씨는 또한 이재홍 씨가 지난 1992년 전 씨 비자금으로 세웠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C 사 대표이사로 등재된 적이 있다.
최근엔 정 씨가 남편 재국 씨와 함께 해외에 비밀 계좌를 만들어 운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정당국 주변에선 정 씨 재산만 수백억 원에 달할 것이란 얘기가 나돌고 있다. 이처럼 정 씨가 전 씨 비자금을 기반으로 하는 재국 씨의 재산 형성에 깊숙이 관련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한남동 땅 역시 그 자금원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전 씨 비자금이 땅을 구입하는 데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전 씨 일가의 새로운 재산이 드러나면서 추징금 환수 작업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현재 자진해서 추징금을 내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진 전 씨 측은 1672억 전액을 납부하기는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전 씨 측의 한 관계자는 “세금 문제 등을 감안하면 실제로 처분해야 하는 재산은 2000억 원을 넘겨야 한다”며 “전 씨와 자녀들이 십시일반 낸다 해도 그만한 돈을 마련하기는 어렵다. 검찰 쪽에도 이러한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개된 것 이외에 전 씨가 숨겨놓고 있는 재산들이 추가로 나올 경우 이러한 입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29만 원밖에 없다”는 말로 국민들의 공분을 산 바 있는 전 씨를 향한 비난도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검찰 역시 단호한 모습이다. 서울중앙지검 ‘전두환 일가 미납추징금 특별 환수팀(팀장 김형준 부장검사)’ 관계자는 “추징금 전액을 징수하겠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 전 씨 측이 아직 구체적인 납부 계획은 제출하지 않았지만 액수를 놓고 ‘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돈이 없어 내지 못한다는 말을 하고 있지만 감춰두고 있는 게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은닉 재산 추적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전 씨가 추징금을 모두 내면 일가의 범죄 혐의는 봐줄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에 대해서도 “추징금 환수와 전 씨 자녀들의 불법 행위는 별개다. 처벌 수위나 수사 범위 등은 조절이 가능하겠지만 아예 없었던 걸로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