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대란으로 문제가 됐던 발전 관련 공기업들도 줄줄이 수장 자리가 비어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지난 6월 전력거래소를 방문해 긴급전력수급대책상황실을 둘러보는 모습. 임준선 기자
하지만 정권이 바뀐 지 6개월이 넘었지만 새로운 공공기관장들에 대한 인선은 끝없이 늦어지고 있다. 국정철학을 언급했던 박 대통령의 발언이나, 나가라고 밀어내던 부처들의 압박이 무색할 정도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새로운 기관장을 공개 모집한다는 공고를 낸 공공기관은 총 46곳에 달한다.
하지만 이 가운데 새로운 기관장이 임명된 곳은 17곳에 불과하다. 기관장이 새로 자리에 앉은 기관들도 공모를 내고 새로운 기관장이 올 때까지 2∼3개월을 소요한 곳이 수두룩할 정도로 인선 자체가 늦어졌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5월 16일 공개 모집 공고가 나갔지만 신임 원장이 자리를 앉은 때는 8월 7일이었다. 3개월 가까이 지난 뒤에야 이일형 G20(주요20개국) 국제협력대사가 임명된 것이다. 통일연구원장 자리도 5월 27일 공모에 들어갔지만 전성훈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이 신임 원장에 임명된 것은 8월 9일이었다.
공공기관 중 이런 연구기관들은 기관장 임명이 늦어져도 정치적 논란이 있을 뿐이지만 실제 경영이 이뤄지는 공공기관들의 경우 수장 임명이 늦어져 골머리를 앓은 곳이 많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경우 사장 공모가 4월 30일에 나갔지만 정창수 전 국토해양부 1차관이 임명된 것은 6월 4일이었고, 가스공사 사장은 공모 공고(5월 13일)이 나간 지 두 달 만인 7월 23일에 장석효 가스공사 자원사업본부장이 승진 임명됐다. 관련 공무원이나 내부 인사를 사장에 임명하면서도 2∼3개월을 소모하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이런 공공기관들은 기관장이 새롭게 임명되면서 분위기를 다잡고 있지만 아직도 기관장을 찾지 못해 공전하는 공공기관도 부지기수다. 한국거래소 이사장 자리는 3개월째 공석이다. 한국수력원자력과 남동발전, 서부발전, 대한석탄공사, 한국석유관리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한국전력기술 등 여름철 전력대란으로 문제가 됐던 발전 관련 공기업들은 줄줄이 수장 자리가 비어있는 상태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정권 초기에 오는 사장은 정권 실세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이들이 많아 눈도장을 찍히려는 직원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사장이 오지 않거나 기존 사장이 자리를 지키면 아무래도 직원들은 일할 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에서 전력이 문제라는 말은 많이 하면서, 실제 전력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전력 관련 공기업 수장 임명을 미적거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철도공사와 한국산업단지공단, 한국공항공사 등 국가 기반 산업을 맡고 있는 공기업 수장 자리도 대거 비어 있다. 이런 사정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대구역에서는 열차 추돌사고가 나면서 기관장 공백에 따른 공직기강 해이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공공기관 사퇴를 간접적으로 언급했음에도 후임을 찾지 못해 임기가 만료된 뒤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도 많다.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이나 신영철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등은 7월에 임기가 완료됐지만 여전히 기관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문제는 올해 임기가 끝나는 기관장들이 줄지어 있다는 점이다. 김영호 대한지적공사 사장의 임기가 9월 16일 끝나는 것을 비롯해, 장영철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장도수 남동발전 사장 등 26명의 기관장들이 올해 임기 만료를 기다리고 있다. 앞서 살폈듯 전례를 감안하면 이들 후임이 정해지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특히 박 대통령 대선 캠프에 몸 담았던 이들 사이에서는 공공기관장 임명이 늦어지면서 논공행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는 후문이다.
사정이 이렇지만 청와대는 지난 5∼6일 G20 회의에서 한국이 선진국과 신흥국간 교두보 역할을 하면서 위기 극복의 구심점에 선다는 야심찬(?) 계획에만 매달렸다. G20 회의가 힘이 빠지고 있는 현실이나 우리나라가 마이크를 쥔 의장국도 아니라는 점에서 현실성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국내 경제나 국민 경제와 밀접한 공공기관들의 수장 자리는 비어놓은 채 외부에서 대접받는 외교에만 매달리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