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한일 경주마 교류전에서 일본의 토센아처(3번)가 한국의 와츠빌리지(7번)을 제치고 1등으로 결승선에 들어오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경주마의 전력이 처음 알려졌을 무렵엔 이 정도 전력이라면 한국경주마들이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일본이 한국의 수준을 너무 우습게 본 것 아니냐면서 한국 대표마들이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흥분하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 경주마들이 속속 도착해 훈련을 하면서 분위기는 금세 바뀌었다. 새벽훈련장에서 뛰는 모습을 본 전문가들은 일본의 절대 우세를 점치는 쪽으로 돌아섰다. 특히 우승후보로 꼽히는 빅걸리버뿐만 아니라 한물 간 마필로 분석된 토센아처가 새벽훈련시 3F타임을 35초대로 끊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토센아처와 빅걸리버의 우승다툼으로 꼽는 전문가들도 많았다. 말하자면 한국경주마는 들러리일 뿐이라는 얘기. 그래서 그런지 경주 현장에서도 경주마들의 모습도 일본말들이 더 씩씩하고 당당해 보였다.
경주는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그림으로 시작됐다. 선행은 와츠빌리지가 나설 것으로 예상됐지만 34팀의 푸른미소가 터프윈의 작전을 돕기 위해 결사적인 선행작전을 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일본 마필 중 순발력이 가장 좋은 파이널스코어의 선행을 견제하기 위해 34팀이 양동작전을 펼 것이라는 예측. 또 그것이 푸른미소한테는 더 어울리는 작전이기도 했다.
경주 초반은 예상대로 푸른미소와 와츠빌리지의 선행경합으로 내달았다. ‘한국말들끼리 너무 심하게 비비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무렵 와츠빌리지가 제어를 하면서 두 마필은 속도를 조금 낮추면서 안정세로 돌아서 3코너까지 내달렸고, 그 뒤를 동반자의기적, 터프윈, 파이널스코어가 따라붙었다. 3번 토센아처는 뒤에서 세 번째로 달리고 있었고, 선수와 호흡 불일치로 최근 세 번 연속 고배를 마신 인디언블루가 선수교체가 맞아떨어졌음인지 중위권에 가담해 선전하고 있었다.
4코너를 돌면서 파이널스코어가 선두권 뒤에 바짝 들이대면서 관람대는 일순간 탄성이 일었고 그때부터 가슴 죄는 질주가 시작됐다. 결승선이 시작되자 가장 앞서 달리던 푸른미소가 서서히 뒤로 밀려났고, 와츠빌리지가 앞으로 뛰쳐나왔다. 파이널스코어가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우승후보 빅걸리버도 야금야금 올라왔다. 그 뒤를 시드니주얼리와 터프윈, 인디언블루가 따르고, 토센아처는 아직도 중후미에서 뛰고 있었다.
골인지점이 다가오자 와츠빌리지는 더욱 힘을 내 선두를 지켰고, 빅걸리버는 더 이상 거리를 좁히지 못했고, 파이널스코어는 힘이 다해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경주가 그대로 굳혀지는가 싶었던 바로 그때 맹렬하게 대시하는 두 마리가 눈에 띄었다. 인디언블루(3세)와 토센아처(9세)였다. 당일 경주에서 최연소마와 최연장마였다. 그 중 토센아처가 골인 직전에 더욱 힘을 내면서 생고무줄 같은 탄력으로 가장 앞서가던 와츠빌리지마저 단숨에 제압해버렸다. 경마장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최종결과는 1위가 토센아처, 2위가 와츠빌리지, 3위가 인디언블루, 4위가 터프윈, 5위가 11번 빅걸리버. 11 대 3의 한일전은 내용은 박빙이었지만 승리는 일본의 몫이었다.
되새겨볼 마필은 터프윈이다. 경주 초반 출발을 잘해 생각보다 일찍 앞선에 붙었다가 페이스가 너무 빠른 것으로 오판해 잠깐 동안 늦추는 모양새를 보였는데, 그 바람에 조금 뒤로 밀렸고 재차 따라잡으며 막판까지 분전했지만 4위에 그쳤다. 그냥 그 페이스대로 뛰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단거리 경주라 그냥 기세싸움을 벌였다면 다른 결과도 가능했을 것이라는 얘기. 실제로 중반 페이스가 생각보다는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장거리만 출전해 느린 페이스에 익숙한 터프윈이 끝까지 대시하는 그런 작전을 잘 소화해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대표마의 위상에 흠집이 생긴 탓에 이런 분석도 나오는 것으로 생각된다.
김시용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