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어쩐 일인지 자진납부 가능성이 제기되기 시작한 이달 초부터 무기명채권에 대한 소식은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자진납부 목록이 완납에는 턱없이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제기되고서야 검찰은 “무기명채권 추적 등을 통해 부족분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씨 일가의 금융자산에 대한 실체 역시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검찰은 부인 이순자 씨 명의의 30억 원대 개인연금보험만 압류했을 뿐 다른 현금자산은 전혀 밝혀내지 못했다. 심지어 이순자 씨의 개인보험은 자진납부 명단에서도 제외됐다. 당장 검찰이 손에 쥘 수 있는 금융자산은 사돈 이희상 동아원 회장이 분납하기로 한 275억 원뿐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전 씨 일가와 검찰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만약 숨겨둔 부동산이 있다고 해도 당분간 매매를 하는 등의 행위는 못하지 않겠느냐. 전 씨 일가로서는 부동산보단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금융자산을 쥐고 있는 게 득이 될 거다. 부동산으로 자진납부를 하는 대신 금융자산은 지켜주는 쪽으로 검찰과 입을 맞췄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전 씨 일가의 불법혐의를 규명하는 것도 오롯이 검찰의 몫이 됐다. 경기도 오산 땅을 매매하는 과정에서 다운계약서를 작성해 양도소득세 60억 원을 포탈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처남 이창석 씨뿐만 아니라 전 씨의 자녀들도 여러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차남 재용 씨는 이 씨와 공범으로 지목돼 지난 3일에 피의자 신분으로 장시간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장남 재국 씨도 해외 비자금 은닉 및 역외탈세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망에 올라있다. 검찰은 재국 씨가 그동안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에 예치한 170만 달러(18억 4300만 원)의 존재를 확인하고 출처와 사용처를 조사해왔다. 또한 2004년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삼남 재만 씨도 미국에서 운영 중인 1000억 원대 와인 양조장 와이너리를 전 씨의 비자금으로 조성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미국의 호화주택 역시 자금출처가 불분명해 검찰은 미 당국과 협조해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뿐만 아니라 조카 이재홍 씨도 전 씨 일가의 차명재산 관리인으로 지목받아 검찰의 수사를 받았으며 며느리 박상아 씨와 그의 어머니 윤 아무개 씨 등도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의 부름을 받았다. 두 사람은 미국 애틀랜타와 로스앤젤레스에서 구입한 주택 등 해외 부동산에 전 씨 비자금이 유입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자금 출처 등을 조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3년과 2005년 재용 씨는 아내 박상아 씨의 명의로 미국에 고급 저택 구입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모 윤 씨 앞으로 명의 이전시킨 바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