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재·보선이 확정된 지역은 김형태 전 무소속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한 경북 포항남·울릉과 지난 8월 25일 폐암으로 별세한 고희선 새누리당 의원의 지역구 경기도 화성갑 두 곳뿐이다. 당초 10여 곳이 해당될 것으로 점쳐졌지만 대법원 판결이 불투명해지면서 3~5곳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10월 30일 재·보선 지역구에 포함되기 위해선 최소한 한 달 전인 9월 30일까지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는 대법원 판결이 있어야 한다. 대법원 공판 일정이 9월 26일로 잡혀있어 이날 선고에 따라 최종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초미니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여야는 물러설 수 없다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비록 의석수는 적어도 박근혜 정부 중간평가라는 의미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내년 지방선거의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통상 재·보선은 여당에 불리하다. 그런데 이번에 재·보선이 확정된 포항남·울릉과 화성갑 모두 새누리당 텃밭이다. 거기에 대형 공안 사건이 터지면서 보수층이 집결해 투표율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며 “민주당이 어려운 싸움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거물 서청원의 귀환
재보선 공천 신청을 한 서청원 전 대표(오른쪽)가 국회에 입성할 경우 김무성 의원(왼쪽)의 독주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사진은 2008년 열린 친박연대, 친박무소속연대 연석회의.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또한 서 전 대표는 공심위원장이기도 한 홍문종 사무총장과 서울 모처에서 비공개 회동을 통해 재·보선 출마를 위한 물밑 조율을 마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당초 서 전 대표는 인천 또는 충남 지역 출마를 검토했으나 대법원 판결이 미뤄지면서 결국 화성갑으로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결국 서 전 대표는 공천 마감 날인 9월 16일 신청을 했다. 화성갑엔 서 전 대표 이외에도 김성회 전 의원과 고희선 전 의원 아들 고준호 씨도 공천 신청을 했다.
서 전 대표가 재·보선에서 승리해 국회에 입성할 경우 김무성 의원을 정점으로 하는 새누리당 권력 지형에 지각변동이 일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김 의원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건 정치권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친박 원로 좌장 서 전 대표가 등장할 경우 김 의원 독주는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김 의원을 따르는 친박 세력 상당수가 이탈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김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 ‘서청원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서 전 대표가 출사표를 던지자 김 의원 측 세력은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내년 5월 치러질 전당대회에서 대표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김 의원으로서는 당내에 적지 않은 지분을 갖고 있는 서 전 대표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김 의원과 가까운 한 의원은 “서 전 대표가 당선되면 6선인데 대표보다는 국회의장을 노리지 않겠느냐”면서도 “서 전 대표 출마에 ‘박심’이 작용했다면 김 의원 입장에서는 그 의도를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를 접한 서 전 대표 측의 한 관계자는 “우리의 목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이다. 여기에 누가 이견을 달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서 전 대표가 국회에 들어가려하는 것도 박 대통령을 돕기 위해서”라며 다소 모호한 입장을 내놨다.
# 구인난 안철수, 진짜 불참할까.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10월 재·보선과 관련해 측근들에게 전달한 메시지다. 선거 결과에 따라 신당 창당 작업과 지방선거의 프레임이 바뀔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안 의원의 한 측근은 “안 의원이 이번 선거를 자신의 시험무대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적극적”이라며 “안 의원이 국회 입성 후 존재감이 미미했지만 재·보선을 통해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얼마 전 기자들에게 “국회에서 일부가 과잉 대표되고, 많은 분들이 과소 대표되는 문제의 해결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걸 바로 잡는 관점에서 (재·보선에서)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소수 국민을 대표하는 다수의 정치인들 대신, 다수 국민을 대표하는 소수의 정치인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러한 발언은 안 의원이 재·보선을 계기로 저평가된 자신의 정치력 논란을 해소하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일까. 안 의원은 정중동 행보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안 의원은 9월 들어 부산(1일), 인천(5일), 수원(8일)을 잇달아 찾으며 세몰이에 나섰다. 모두 재·보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남아있는 곳이다. 특히 안 의원은 수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재·보선이 열리는 곳이 여러 곳 있지만 경기도는 특히 중요하기 때문에 적합한 분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밝혀 재·보선에 공을 들이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안 의원은 9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재보선 불참 가능성을 시사했다. 안 의원은 “재보선 지역이 2~3곳으로 정치적 의미가 축소된다면 참여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안 의원은 “지방선거에 집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정치권에서는 다른 이유를 찾고 있다. 안 의원이 구인난을 겪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이다.
당초 안 의원은 재·보선에 출마할 인재 영입에 ‘올인’했지만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안 의원 측근은 “예전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해 같으면 안철수라는 이름 하나로 모여 들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제의를 받은 상당수가 머뭇거리고 있다”고 털어놨다. 또한 안 의원이 독자적으로 재·보선을 치르겠다고 강조하긴 했지만 ‘야권연대’의 불씨가 살아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안 의원의 재보선 불참 발언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비난 여론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기류는 안 의원 진영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안 의원의 또 다른 한 측근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사전에 전혀 논의가 없었다. 선거구가 줄어들었다고 참여하지 않는 게 나부터도 납득이 안 가는데 국민들은 어떻겠느냐”고 되물었다. 정치권에서도 ‘재보선이 치러지는 지역이 한나라당에 유리한 곳이라 이길 자신이 없으니 그런 것 아니냐’며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처럼 안팎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안 의원이 재보선에 전격 참여할 가능성을 배제해선 안 된다는 관측도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이 경우 10월 재·보선은 안 의원 정치 행보의 ‘터닝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올 연말 또는 내년 초로 계획하고 있는 신당 창당과 맞물려 있는 까닭에서다. 안 의원이 재·보선에서 지난해와 같은 신드롬을 일으킬 경우 ‘안철수 신당’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내년 6월 지방선거로까지 이어져 안 의원 대권 가도에 플러스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안 의원이 재·보선에서 미미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신당창당을 포함한 향후 정치 행보에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재·보선 결과에 따라 안철수 의원이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의 전철을 밟을지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이석기 사태’ 변수, 악재 속 민주당은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의원이 9월 4일 국회 본관 앞에서 국정원을 규탄하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민주당은 이 의원과 최대한 거리를 두면서 국정원 개혁 문제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공안정국 조성을 강조해 ‘색깔론’에 부정적인 유권자들을 공략한다는 전략도 세웠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9월 5일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이석기 사건을 신종 매카시즘으로 몰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며 “종북 몰이의 정치공세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이번 재·보선이 의석수가 적다는 점에서 철저하게 인물 위주의 선거 운동을 펴야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석기 의원과 관련해 ‘민주당 책임론’을 부각시키겠다는 복안이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이번 재·보선의 판이 축소된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목소리까지 들린다. ‘재·보선은 여권의 무덤’이라는 정치권 속설에 비춰보면 의외지만 그만큼 현재의 상황이 새누리당에 유리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새누리당의 한 초선 의원은 사석에서 “10곳이 열리더라도 호남 지역을 제외하곤 싹쓸이할 수 있는 분위기”라며 “이석기 사태를 지방선거까지 끌고 갈 필요가 있다는 게 당 지도부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막판 변수는 남아있다. 이석기 의원에 대한 국정원 수사가 지지부진할 경우 역풍이 불 수 있는 것. 새누리당 몇몇 의원들이 이번 사태에서 한 발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수도권의 경우 공안 정국이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반론도 적지 않다. 또한 통합진보당이 재·보선 전 지역구에 후보를 내기로 한 것 역시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관심거리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